- 11월 15일 –
“업(業)을 푸는 방법”
[오늘의 명상]
너(대상)는 나의 그림자요
나는 너의 거울이네.
내가 만약 너를 미워한다면
너는 내 마음의 미운 그림자이기 때문.
[덧붙임]
업(業)이란 불교 최대 최고의 내용으로서,
학문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이론을 내포하고 있으나,
오늘은 이를 차치하고,
두가지의 간단한 줄기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 업은 짓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은만큼 응보(應報)를 받게 된다.
업인업과(業因業果-원인에 의한 결과),
자업자득(自業自得-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이다.
눈,귀,코,혀,몸,생각(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의
육근(六根)을 통하여 마음속에 업으로 내장되어 있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을 상대하게 되는데,
이 모든 대상을 육경(六境-색,소리,향기,맛,촉감,기억)이라 한다.
한마디로 나의 육근을 통하여 상대하는 모든 것은
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나타난 것이므로,
좋던 싫던 모두가 내 업의 화현(化現)인 것이다.
즉, 나의 업 속에 좋은 것이 있으면 좋은 것이 나타나고,
나쁜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나타나며,
행복한 업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이 나타나고,
불행한 업을 가지고 있으면 불행이 나타나니,
내 마음속에 없는 것은 육근(六根)으로
감지할 수도 없고 나타날 수도 없다.
전생으로부터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내용이
내 마음의 업에 저장되었다가 인과(因果)의
순서에 따라 나타나게 되는 것이니,
결국 나의 육근으로 감지되는 것
모두가 나의 업(業)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식(唯識)에서는 물을 볼 때도
각자의 업에 따라 네 가지로 구분되는 것이니,
사람은 물로 보지만
물고기는 공기로 생각할 수도 있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천상 중생은 수정으로 본다 하여,
이를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 한다.
둘째, 업의 본질이 있다.
중생, 특히 사람은 감정으로 살아간다.
감정은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행복과 불행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말한다.
평소에 있어서 하늘이 맑으면 대개 기분이 좋지만,
날씨가 뜨겁거나 비가 오지 않아 가물 때는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듯이,
육근으로 감지되는 똑 같은 대상이라 할지라도
따라 마냥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인과의 업에 의해
똑 같은 질량으로 번갈아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이야말로 업의 본질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중생과 달리 업 자체가 없으므로,
좋고 나쁜 것이 없고, 희로애락이 없으니,
그 어떤 대상이 나타나더라도 마음의
감정이 일어나지 않으니,
이를 자비(慈悲)라 일컫는다.
대자대비(大慈大悲)란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절대 평등을 말하는 것으로서,
즉 무분별심(無分別心)이요,
적멸(寂滅)의 마음이다.
좋다라는 업의 마음이 생기면,
곧바로 나쁜 것이 나타나서 이 둘의 감정을
똑 같이 겪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분별심(分別心)이라 한다.
이는 전생과 금생, 내생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므로,
바로 육도윤회(六道輪廻-천상,인간,수라,지옥,아귀,축생)의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세상을 지배하는 전륜성왕도, 절대 권력도, 재벌도,
빌 게이츠도, 분별의 마음인 업을 갖고 있는 한,
고통과 괴로움을 면할 수 없으니,
과연 마음의 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업을 다스리는
최고의 수단일 지니,
지금, 바로, 우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진우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