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때 요단강 서편에서의 수많은 전쟁들에서 승리하고 핵심적인 땅들을 광범위하게 점령한 후에 이미 요단강 동편에서의 땅이 정해졌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들은 자신들의 남은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는데..
그러나 그때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그들이 단지 그곳의 요단 언덕 가에 큰 제단을 쌓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모든 지파들이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그들과 전쟁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아래 본문 뒤의 여호수아 22장 33절에서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처음에는 그들을 진멸시키려고 까지 했었는데..
실상 그들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함께 목숨 걸고 싸워왔던 전우들이요 피로 이어진 동족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까지 냉혹했고 강경했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 본문 이후인 여호수아 22장 28~29절에서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단적으로 말하면,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본뜻이 확인되고 오해가 완전히 풀리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아래 본문 당시만 해도 그러한 큰 제단을 쌓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 곧 죄악을 범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착오가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 당시의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정도로 죄악에 있어 민감했다는 것이고, 더군다나 자신과 같은 동족이자 목숨을 걸고 함께 전쟁들을 치렀던 이들에게까지 전쟁을 불사하고 심지어는 진멸시키려 했을 정도로 죄악을 경계했고 저항했으며 철저했다는 것이고..
참으로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하나님께서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서의 수많은 전쟁들에 있어 왜 그렇게까지 하나님의 방법들로 도우시고 앞서 가셔서 싸우시며,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승리들로 생생하고 강렬하게 진행하시고 예비하셨는지를 명료하게 알 수 있게 하는 지점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그러한 말씀을 거역하고 죄악을 범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과 가장 멀어지는 것이고 단절케 되는 것이며 진노에 빠지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반대로 그러한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치열해 지고 절실해 지며 뜨거워지는 것보다 더 하나님께 기쁨과 역사와 영광이 될 수 있는 다른 것은 있기 힘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바꾸어서 강조하면 그 위치와 역할 상 가나안 땅에서의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들에서의 하늘의 힘과 구원과 승리들 등을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시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게다가 그와 같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더 나아가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시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 곧 여러 모양의 응답과 이적과 승리와 성취들 등을 하나하나 모두 다 정말 누리게 하시고 생생하게 경험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심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죄악이라는 것이 아담과 하와 때에서부터, 물론 그 당시의 그들이 모든 인류에 있어 대표성과 시초성과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말씀을 어기는 단 한 번의 죄악으로 인해 그 자신들 뿐 아니라 모든 인류, 온 세상을 진노와 대가들, 가시덩굴과 엉겅퀴들로 점점 차고 넘치게 한 것일 뿐 아니라 영적으로는 사탄과 음부의 권세들,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했음을 상고할 때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우며 끔찍한 것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으로 사실은 그러한 죄악들은 그 자체로 그렇게나 무서울 정도로 악하고 위험하며 어떤 식으로든 징벌들이 따르는 것이지만 실상 그 이상으로 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고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재자이시며 선악 간 심판주이시고 전지전능하심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깨뜨리고 그와 함께 온갖 응답과 능력들, 복과 열매들이 막히게 된다는 실제인 것인데..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도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죄악들과 날마다 순간마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 사실상 죄악들에 있어서는 아무리 민감해 하고 저항하며 경계하고 치열하며 피 흘리기까지 싸운다고 한들 조금도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오히려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정도가 되기까지 하는 것이나 그렇지만 그 조차도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방법들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 누구라도,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고 하더라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며, 진정 그 어떤 상황과 여건들이 된다고 하더라도 또 다시 계속해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여호수아22:10~1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8월 31일(토)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