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뒤지면 아주 오래 전에 만들어진, 아주 색다른 영화들을 찾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고바야시 마사키 감독이 1964년 연출한 영화 '괴담'(怪談 Kwaidan)은 3시간 3분 분량인 데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는 작품인데 카카오 TV에서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찾은 개인적 이유가 있다. 오는 6일 시작하는 영어 원서 읽기 모임의 첫 교재로 채택된 것이 그리스계 아일랜드 작가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1850~1904)의 원작 'Kwaidan'(1904)이다.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온라인에서 찾다가 영화를 발견한 것이었다. 헌은 메이지 유신으로 거듭나던 일본의 문화와 문학을 서구에 소개한 첫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121년 전 출간된 그의 원작을 61년 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을 안방에서 온전하게 즐길 수 있다니 세상 참...
영화 '괴담'을 소개하는 블로그 글 너댓 편을 봤는데 모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은 물론, 헌이 원작자란 사실조차 언급하지 않아 놀라웠다. 사실 이 블로그 글들은 원작자를 고이즈미 야쿠모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헌은 시마네현 마쓰에의 사무라이 집안 여인과 결혼해 일본에 귀화하며 일본 이름을 얻었다.
더블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헌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잠시 교육을 받은 뒤 열아홉 살에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 정착했다. 육체노동을 전전하다 경제 주간잡지 '트레이드 리스트'에서 근무했다. 그 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와 '신시내티 커머셜' 기자로 일하며 도시 흑인들의 생활 등 당시 백인들이 마뜩치 않아 할 법한 학술논문이나 산문시를 기고했다. 이 도시에서 일하는 동안 프랑스 작가 테오필 고티에의 단편집 '클레오파트라의 하룻밤'(1882)과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사후 출간)을 번역했다. 1877년 '신시내티 커머셜' 청탁으로 루이지애나 정치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뉴올리언스에 갔다가 눌러 앉았다.
외국 작품의 번안물로 '낯선 문학 번안집'(Stray Leaves from Strange Literature 1884), '중국의 도깨비'(Some Chinese Ghosts 1887)을 펴냈다. 그의 논문은 불교와 이슬람교, 프랑스 문학과 러시아 문학을 넘나들었고, 신문과 잡지에 실은 논설도 과학에서 러시아와 프랑스의 반유대주의에 이르기까지 주제가 다양했다. 평생을 지적 탐구와 호기심, 다른 문화의 엿봄으로 살았다고 지나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해일 속에서 혼자 살아 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모험소설 '치타'(Chita 1889)도 있다.
1887~89년 '하퍼스 매거진' 특파원으로 서인도 제도에 파견됐는데 이 때의 경험은 '프랑스령 서인도 제도에서 보낸 2년'(1890), 노예반란을 다룬 독창적인 소설 '요우마'(Youma 1890)의 토대가 됐다. 1890년 '하퍼스 매거진' 특파원으로 일본에 갔다가 곧 이 잡지와 관계를 끊고 일본 북부 이즈모(出雲)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곳에서 고이즈미 세쓰코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그 뒤 '애틀랜틱 먼슬리'에 일본에 대한 글을 싣기 시작해 미국의 여러 신문에 기사를 동시에 게재했다. 일본인에 대해 갖고 있던 호감이 고스란히 투영된 이 글들은 나중에 '낯선 일본인들 '(Glimpses of Unfamiliar Japan 1894) 두 권으로 엮여졌다.
1891년 구마모토(熊本) 현립대학으로 옮겨 3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1895년 일본에 귀화해 아내 성을 따라 일본 이름으로 개명했다. 1896년부터 1903년까지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뛰어난 글들을 많이 발표했다. '외래문물과 회고'(Exotics and Retrospective 1898), '영적인 나라 일본에서'(In Ghostly Japan 1899), '허상들'(Shadowings 1900), '일본 논집'(A Japanese Miscellany 1901)은 일본의 관습과 종교, 문학을 서구에 알린 중요한 저작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원작 '가이단'은 초자연적인 내용의 단편들과 하이쿠(俳句)를 번역한 작품들을 모았다. 일본인 아내와 마쓰에 마을 사람들이 들려준 환상적이고 무서운 이야기들에 본인의 창작 능력을 가미했을 것이다. 아울러 같은 해 출간된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인가'(Japan, an Attempt at an Interpretation)는 뉴욕주 코넬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준비한 원고를 모아 출판했는데 정작 본인은 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904년 9월 26일 도쿄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달리해 도쿄 도시마 지구 조쉬가야 묘지에 묻혔다. 유작이며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위 책은 그 전까지의 이상화된 일본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메이지 시대 일본을 사랑해 귀화한 그는 도쿄제국대학에서 갑자기 해고되는 비운을 맞았다. 대학 당국은 일본 국민들이 근대 문학의 시조로 존경해 마지 않는 나쓰메 소세키가 유학에서 돌아와 채용해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본뜻과 겉으로 드러난 뜻이 다른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일본몽을 접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괴담'에는 네 편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물려 있다. 원작 '가이단'에서는 두 편이 뽑혔다. '설녀'(Yukionna)와 '귀 없는 호이치'(Miminashi Hōichi no Hanashi)이다. 영화 순서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에피소드다. 첫 에피소드 '흑발'(Kurokami)은 헌의 '허상들' 중 'The Reconciliation'과 'The Corpse Rider' 두 편을 하나로 합친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에피소드 '찻잔 속'(Chawan no Naka)은 헌의 'Kottō: Being Japanese Curios, with Sundry Cobwebs"(1902)에서 가져왔다.
블로거들은 '귀 없는 호이치'가 가장 재미있었다는 데 견해가 일치됐는데 동자승 호이치는 앞을 못 보는데 공교롭게 헌 역시 왼쪽 눈을 다쳐 거의 시력을 잃었다. 아내와 함께 촬영한 사진을 보면 신체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얼굴 오른쪽을 카메라로 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른 눈으로만 봐야 해 글을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마쓰에의 라프카디오 헌 기념관에는 그가 썼던 특수 제작 안경과 독서대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 여행사가 헌이 살았던 가옥과 기념관을 엮어 관광하는 패키지 상품을 광고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것은 그가 일찍이 무술 유도에 눈을 뜬 뒤 주짓수를 즐겨 수련했다는 점이었다.
'귀 없는 호이치' 편에는 온몸에 경전을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앞을 못 보는 호이치가 왜 귀까지 잃는지 설명한다. 지난해 한국 영화 '파묘'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영화 '듄'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따라서 '귀 없는 호이치'의 이 장면은 원조인 셈이다.
마지막 '찻잔 속' 편은 메이지 시대를 사는 작가가 200여년 전 사무라이에게 일어난 기이한 일을 쓰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하고, 출판업자가 새해 인사 차 들렀다가 그의 죽음을 확인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코믹한데 나중에 갑자기 그로데스크해지며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칸영화제 특별 심사위원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거의 모두 세트장에서 촬영했는데 시각적 이미지가 빼어나다. 담대하다 싶고 연출력에 거칠 것이 없다. 일본 영화 전성기의 자신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래 물렸으니 꼭 한 번 감상할 것을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