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덕도로 건너가
낮이 점차 길어져 퇴근 후 두어 시간 여유가 있다. 오월 첫째 목요일 일과를 마치고 산책을 나섰다. 연사정류소로 나가 칠천도로 가는 35번을 기다렸다. 고현을 출발해 각지로 흩어지는 노선버스는 두 가지 종류다. 일자형으로 종점까지 왕복하는 노선과 원을 그리면서 일주하는 노선으로 나뉜다. 일자형이 많으나 원을 그리는 노선은 연하해안과 구영해안과 칠천도와 가조도다.
거제도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거제도에 딸린 유인도는 열 개로 칠천도, 가조도, 산달도, 고개도, 화도, 이수도, 지심도, 내도, 외도, 황덕도다. 이들 가운데 절반은 내 발자국을 남겼다. 주로 거제에 서부지역인 둔덕과 사등에 위치한 섬들은 가보지 못했다. 칠천도는 고현에서 북쪽으로 진동만 내해에 뜬 섬이다. 칠천도 섬에서 딸린 유인도로 황덕도가 있더이다.
황덕도를 찾기 위해 칠천도 가는 35번 버스를 탔다. 앞서 나열한 섬들 가운데 칠천도와 가조도와 산달도에 연도교가 놓여졌다. 뭍에서 섬을 연결하면 연륙교고 섬에서 섬으로 잇는 다리는 연도교로 불리었다. 하청 실전삼거리에서 칠천도 장곶으로는 연도교가 놓여졌다. 옥계와 연구를 지나 대곡은 황덕도로 가는 길목이다. 칠천도에 딸린 섬이 황덕도인데 거기도 연도교가 놓였다.
연초삼거리에서 다공리를 거쳐 덕치를 넘었다. 덕치는 우리말로 ‘한재’로도 부를 수 있는 큰 고개다. 섬 거제에서 높고 크다면 얼마나 높고 크겠는가만 연초면과 하청면의 경계를 이룬다. 자동찻길이 뚫리기 전 그곳의 펑퍼짐한 산자락을 넘는 고개가 지역민들에겐 힘들었지 싶었다. 덕치를 넘으면 곧바로 하청 면소재지는 벼농사를 짓는 일모작 지대로 여름농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가대교가 개통되기 전 진해 속천항에서 하청 실전항으로 카페리가 운행된 적 있었다. 그 실전항 가까이 칠천도다리가 놓여졌다. 칠천도 장곶에서 시계 방향으로 돌아 옥계를 지났다. 정유재란의 뼈아픈 칠천량해전을 잊지 않으려는 기념공원이 있는 곳이다. 칠천도출장소와 보건진료소를 지나 금곡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연구를 지나 대곡에서 내려 황덕도 연도교를 향해 갔다.
작은 섬이 시야에 들어오고 호수와 같이 잔잔한 진동만 바다였다. 멀리 서쪽으로는 가조도도 옥녀봉이 봉긋했다. 황덕도를 건너기 전 대곡항에는 어로작업을 나지지 않은 작은 배가 몇 척 보였다. 황덕도는 워낙 작은 섬인지라 교량은 1차선으로 된 아치형이었다. 다리에서 오른쪽을 보니 아스라이 진해 시가지가 드러났다. 안민고개 산등선 장복산과 불모산 정상 송신탑이 보였다.
황덕도다리를 건너 오른편 해안 산책로를 따라 가니 주민이 네댓 가구 사는 마을이 나왔다. 인가가 끝난 곳의 교회는 내가 여태 본 교회 가운데 가장 작았다. 방파제를 겸한 모롱이를 돌아가니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마을이 빤히 보였다. 산책로 끝에서 가파른 비탈을 올랐다. 난간이나 로프가 없어 조심조심 오르니 산봉우리에는 태양광 발전으로 불을 밝히는 무인등대가 나타났다.
등대로 오가는 사람이 없는지 길을 마을과 연결되는 길은 묵혀졌고 예전 경작지인 듯 묵정밭도 보였다. 칡덩굴이 덮쳐 생육에 지장을 받은 유자나무도 보였다. 찔레꽃이 피어 향기로웠고 높이 자란 오동나무에선 보라색 꽃이 피어 기품이 있었다. 가시덤불과 숲을 헤쳐 나가다가 고라니를 한 마리 만났다. 녀석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에서 나는 한갓 외부에서 들어간 불법 침입자였다.
산언덕 숲을 지나 남향으로 내려가니 작은 동네가 나왔다. 농어촌은 어디나 그렇듯 인적이 없었다. 포구 방파제엔 바깥에서 온 낚시꾼이 전갱이를 낚았다. 마을회관을 지나 황덕도다리 밑으로 가니 폐교된 분교장 터는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다리를 건너 대곡으로 나가다 뒤를 돌아보니 황덕도와 진동만은 저녁놀이 물들어 갔다. 두 시간 간격으로 섬을 일주하는 버스를 타고 나왔다. 20.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