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천 변에서 바라본 강릉 시가
1시 방향에 우뚝 솟은 시청사가 강릉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남대천 둔치는 강릉단오제가 열리는 곳이다. 왼편에 단오문화관과 단오공원이 보인다. <이다일기자>
강릉은 예부터 많은 선비와 시인, 묵객들이 천하제일의 경치를 읊었던 곳이다. 인구의 70~80%가 관광 수입으로 먹고살 정도로 자연 환경이 빼어나고 문화적 자원도 풍부하다.
왜 강릉일까. 이 질문은 매우 오묘하다. ‘아름다운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국토 순례를 시작하면서 하고많은 지역 가운데서 강릉을 출발점으로 택한 까닭부터가 그럴 것이다. 우선 정동진을 비롯해 100여리에 걸쳐 펼쳐진 강릉 해안의 새해 해돋이를 보면서 대장정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대한민국 한해의 아침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 가운데 하나가 강릉이니까. 하지만 그것만이 답은 아니다.
천하제일을 표방한 두 가지 랜드마크
강릉시 서편에는 대관령이 병풍처럼 펼쳐져 영동과 영서를 가르고 있다. 대관령휴게소에서 동쪽으로 옛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대관령옛길과 만나는 지점에 반정 전망대가 나타난다. 강릉 시가지와 동해가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강릉의 랜드마크 가운데 하나인 시 청사가 보인다. 강릉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지상 18층)인 시청 입구에 한자로 ‘제일강릉(第一江陵)’이라고 새긴 큰 표석이 서 있다.
다시 방향을 북으로 돌려 6km 정도 가면 강릉시의 또 하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경포호를 만난다. 예까지 왔으면 호반 서쪽 작은 언덕에 자리 잡은 경포대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이곳에 들어서면 ‘제일강산(第一江山)’이라는 현판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제일산’은 송나라 4대 명필 가운데 한 사람인 미불(米芾)의 필체이고, ‘강’자는 조선 후기 서예가 윤순(尹淳)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제일강산’ ‘제일강릉’ ‘아침이 제일 먼저 시작되는 곳’. 이처럼 강릉은 제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또 이를 지향한다. ‘제일’이라는 말에는 으뜸이라거나 첫 번째, 그리고 고유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강릉에는 이런 ‘제일’이 많다.
송나라 명필이 쓴 ‘제일강산’ 현판
서거정이 ‘강릉 경치가 천하제일’(江陵山水甲天下)이라고 한 데서 따온 말로서, 평양 연광정의 것과 똑같은 필체이다. 경포대에는 수많은 명사들의 기문 시판이 걸려 있다. <이다일기자>
강릉단오제에 대한 중국인들의 오해
매년 음력 4월 5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리는 강릉단오제는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전국적으로 1200개 가까운 지역 축제의 원조 격이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정식 명칭은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등재됐을 때 중국인의 혐한감정의 빌미가 되기도 했지만, 이는 순전히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세계무형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는 대관령 서낭신에게 제사지내는 강릉 고유의 축제이지 단오라는 명절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흥술 단오문화관장에 따르면 지난 11월 리우쿠이리(劉魁立) 중국민속학회장이 강릉을 방문한 뒤 이런 오해를 말끔히 풀었다고 한다. 강릉시는 2010년 열리는 제1회 세계무형유산축제를 유치하기도 했다. 강릉단오제는 이제 외국인들도 함께 하는 세계적인 축제가 된 것이다. 이밖에도 강릉에서는 매년 해돋이축제, 율곡제, 허균·허난설헌문화제, 망월제, 소금강 청학제, 강릉사천하평답교놀이, 여름바다예술제 등 8개의 지역 축제와 35개의 마을 축제가 열린다.
유교의 본향에서도 깜짝 놀란 강릉향교
화부산 자락 교동에 위치한 강릉향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 되고 크며,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향교로 꼽힌다. 강릉을 ‘교육도시’로 만든 교육의 발상지이기도 한 강릉향교는 강릉 사람의 기질과 문화적 특질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만하다. 얼마 전 중국 산둥성(山東省)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는 경악했다고 한다. 공자의 본향에도 없는 중국 성현들의 위패가 고스란히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강릉향교에는 대성전과 동·서무에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 총 136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지금도 매년 두 차례 이들을 제사하는 석전제가 열린다. 광복 이후 성균관에서 동·서무의 위패를 대성전에 함께 모시거나 철거하도록 했는데, 강릉향교만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문향(文鄕)·예향(禮鄕)으로서 강릉의 자존심과 완고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성전에는 화성(畵聖)이라는 칭호를 받은 당나라 화가 오도자(吳道子)가 그렸다는 공자의 진영도 봉안돼 있다.
향현사 원래 터에는 황영조체육관이…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유교 유산
강릉향교에는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 136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문묘대성전의 공자 위패. 뒤에 봉안된 것이 당나라 화성 오도자가 그렸다는 공자의 진영이다. <이다일기자>
강릉이 문풍(文風)과 예속(禮俗)에서도 ‘제일’임은 역사적으로 걸출한 인물과 많은 효열(孝烈)이 배출된 데서도 알 수 있다. 올해로 예정된 5만원권 지폐가 발행되면 강릉은 세계에서 유일한 ‘모자화폐 인물’의 고향이 된다. 165개국에서 통용되는 1600여종의 화폐 가운데 어머니와 아들이 나란히 모델로 선정된 예는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처음이다. 죽헌동 오죽헌에서 이들 모자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강릉시는 5만원권 지폐 발행에 맞춰 대대적인 축하 이벤트를 열 계획이다.
허균·허난설헌 남매와 더불어 강릉이 자랑하는 역사 인물은 최치운·최응현·박수량 등 12향현이다. 이들을 제향하는 향현사가 강릉향교 앞쪽에 있었는데, 1994년 황영조기념체육관에 터를 내주고 명륜고 뒤쪽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경로잔치가 열린 곳
강릉시 일대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祠)·당(堂)·재(齋)나 효열(孝烈)을 기리는 각(閣)·비(碑)·문(門) 등이 유달리 많이 눈에 띈다. 오죽헌 및 강릉시립박물관의 정항교 관장은 “35개소의 효열각(비), 12개소의 사, 3개소의 당, 55개소의 재가 한 고을에 있다는 것은 유례가 없는 것으로 단연 전국 으뜸”이라고 말한다. “고을 풍속에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있었는데, 좋은 날을 가려 명승지에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며 위로했다”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최초의 경로잔치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모산봉이 1m 높아진 까닭
용강동과 명주동 일대 강릉의 옛 관아터에 국보 제51호인 객사문이 있다. 고려시대 대표적인 건축물이자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가운데 배흘림 기둥이 제일 큰 것으로 유명하다. 그 남쪽에 강릉의 안산(案山)인 모산봉이 있다. 해발 104m이던 이 봉우리가 2005년 1m 높아졌다. 강릉시 10여 개 자생단체가 앞장서고 시민 10만 여명이 참여해 한줌씩 흙을 날라 쌓은 결과이다.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로 부임한 한급(韓汲)이 강릉에 큰 인물이 나는 것을 두려워 해 경포대를 방해정 뒷산에서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모산봉을 3자 3치(약 1m) 낮추었다는 일화에 근거해 이를 원래대로 되돌려놓은 것이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서 시기할 정도로 우수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점을 지적한 재미있는 사건이다.
세계 최대의 오디오 박물관도
최근 1m 높아진 강릉의 안산
조선 중종 때 강릉부사로 부임한 한급이 강릉에 인물이 많이 나는 것을 두려워 해 3자 3치 낮춘 것을 최근 시민들이 자발적 참여해 원상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신동호기자>
‘제일’을 표방하는 강릉의 자존심은 수려한 자연 경관과 역사적 유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포호 서쪽 저동에 위치한 참소리축음기박물관과 에디슨과학박물관도 ‘세계적’이다. 세계에서 단 한 대밖에 없다는 아메리칸포노그래프를 비롯해 소리, 빛, 영상과 관련된 진귀한 기계·장비 6500여 점과 10만 점에 이르는 음반, 수만 점의 기록 자료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오디오 박물관이기 때문이다. 국내외에서 연 40만 여명이 이곳을 다녀가지만 “전시 공간과 숙박 등 기반시설의 부족으로 수장품을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는 게 손성목 관장의 얘기다.
완고함이 가져다준 ‘제일강릉’의 미래는
강릉의 ‘제일답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완고함이라고 할 수 있다. 강릉단오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토속문화의 원형을 도시의 규모와 발전 속도에 비해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 강릉일 듯하다. 그래서 강릉에는 수많은 볼거리와 얘깃거리가 있다. 이를테면 강릉시 구석구석에는 지금도 성석(性石)과 성목(性木) 등 기자(祈子) 신앙과 관련한 유적과 설화가 남아 있어 향토사 연구가 최기순씨가 이를 조사해 책으로 내기도 했다.
21세기 강릉의 비전은 바로 이 강릉이 가진 ‘제일’들을 잘 상품화하는 것일 터이다. 이미 강릉은 연 1000만 명이 다녀가는 관광도시이다. 권혁문 강릉시 관광문화복지국장은 “강릉 시민의 70~80%가 관광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동안 강릉에서는 최근 가동된 강릉첨단과학산업단지에 앞서 두 개의 산업단지가 조성됐으나 활성화되지 못했고, 긴 해안선을 가졌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어항도 발달하지 않았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변화를 비교적 덜 겪었던 이런 여러 조건들이 오히려 강릉의 가능성을 넓혀주는 요소가 될 듯도 하다.
☞ [화보] ‘모자 화폐’의 고향 강릉
가는길
영동고속도로나 동해고속도로를 타면 강릉IC로 나와 시내로 진입할 수 있다. 서울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 기차는 서울 청량리역에서 하루 6번 운행하며 6시간 40분 걸린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수시로 출발한다.
연락처
강릉시 관광안내소 033-1300
강릉시청 관광개발과 033-640-5129
강릉시버스터미널 종합관광안내소 033-640-4414, 4531
강릉역 관광안내소 033-640-4533
맛집
초당동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동화가든(033-652-9885)에서 매일 새벽 직접 빚은 초당두부를 맛볼 수 있다. 강릉IC에서 경포대 방향 우측에 있는 삼교리동치미막국수(033-642-3935)에서는 메밀 90%의 막국수를 직접 뽑는다. 교동의 청정갯마을(033-642-6543)은 영동지방에만 있는 용곡지 추어탕 맛이 일품이다.
숙박
선교장(033-646-3270)에서는 전통문화 체험을 할 수 있다. 경포해변 포시즌관광호텔(033-655-9900)에서는 객실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시내 중심가에 묵으려면 임당동에 위치한 동아장(033-648-9011)이 편하다. 정동진 쪽에는 선크루즈리조트(033-610-7000)나 한기호텔(033-642-7512)을 권한다.
경향닷컴 신동호기자 hudy@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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