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니 빠지던 날
이하재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거나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면 된다는 말이 있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살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결코 실망하가나 좌절하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말이야 그렇지만 잇몸으로 이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음식물을 뜯고 씹는 이빨의 기능을 잇몸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치아의 건강은 여러 가지 복중에서도 으뜸이라고 했다. 신체의 어느 부분이라고 소중하지 않을까마는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동물의 특성상 건강한 치아야말로 최고의 복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흔히들 권력이나 어느 집단에서 영향력을 상실 했을 때 이빨 빠진 호랑이에 비유를 한다. 사냥을 하고 육식을 하는 호랑이에게 이빨이 빠진다는 것은 힘의 상실이고 곧 죽음을 의미한다. 사람이야 손도 있고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으니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으나 건강한 이빨과 잇몸을 어찌 비교할 수 있으랴. 문명의 발달은 의치로도 정상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하였으니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나는 체질도 약하거니와 관리도 소홀히 하여 일찍이 이빨을 뽑기 시작했다. 20대 초반부터 왼쪽 어금니에 충치가 있었으나 방치하였다. 결국 10여년을 버티다가 뽑았다. 어금니 하나 없다고 큰 불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여 그냥 지냈다. 오른쪽 어금니로 모든 음식을 씹었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더 빨리 망가지는 법이다. 30대 후반 나이에 왼쪽 어금니를 모두 들어내고 부분 의치를 하였다.
젊은 나이에 틀니를 하고 있다는 것이 창피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심하였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했던가. 친구들과 여행을 갔을 때 양치질을 하며 알려지게 됐다. 잠깐이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려지는 수치심을 느꼈다. 더 이상 망가지면 안 된다고 잇몸 약을 복용하였다.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잇몸은 주저앉고 이빨은 점점 길게 드러났다.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앞 아랫니를 모두 뽑았다. 틀니도 새로 맞추었다. 아래틀니는 구조상 움직임이 적어 사용하기에 큰 불편이 없다. 잇몸영양제를 복용하고 신경을 많이 썼지만 잇몸은 점점 약해져 이빨을 지탱하기에 한계점에 이르렀다. 뿌리가 드러나고 간신히 매달려 있던 앞 윗니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슬그머니 떨어져 나왔다. 음식을 끊어내는 앞니의 본래기능을 상실한지는 오래되었고 외관용으로만 소용되었던 앞니였다.
세면대의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초라했다. 입을 조금만 벌려도 구멍이 너무 크게 보였다. 아직 젊은데 손님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되나 말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어금니는 보이지도 않고 발음과는 상관도 없으니 사회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 깐 이빨 하나로 생활하는데 무슨 지장이 있을까마는 성격이 소심한 나는 세상을 다 산 듯 매우 우울하였고 창피하다는 생각에 타인과의 대화를 꺼려했었다. 호랑이도 이빨이 빠지면 이런 마음이었을까. 10년만 더 버티어 주기를 바랐었는데 앞 윗니를 더 붙잡아 둘 수 없게 되었다.
가까운 치과로 달려갔다. 우선 뻥 뚫린 공간을 숨기기 위해 틀니를 주문했다. 이제는 아래도 위도 틀니를 끼우고 살게 되었다. 위 앞니의 의치는 매우 불편하였다. 기사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아래로 쳐지고 빠져나와 음식과 뒤섞이는 바람에 당황했었다.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살게 마련이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견딜만하다. 양치질할 때 시간이 더 걸리고 음식을 먹을 때 조심스러웠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받아들이고 살 수밖에 없다. 나이에 비례하여 노화는 멈추지 않고 진행된다. 의치를 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가 될 때까지는 더디게 진행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았다.
택시손님 중에는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 있다. 가을이면 먹음직스런 과일을 주시며 먹어보라 하는 어머니들이 계시다. 서울에 사는 자식들에게 주려고 바리바리 싸온 것을 덜어 주신다. 고맙게 받지만 난처한 일이다. 잘 익은 사과를 덥석 물어 맛있게 씹어 먹으면 주시는 분도 기분이 좋을 텐데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사님! 고생하시는데 사과 하나 잡수어보세요.” 바짝 들이민 사과를 거절하기 곤란하다.
“맛있게 잘 익었네요. 운전 중이라서 이따가 먹을게요. 고맙습니다.”라며 받아놓고 슬그머니 다른 화제로 이어가곤 했다.
가끔은 껌을 주시는 분이 있다. 껌은 삼키지 않고 씹는 기호식품이다. 단물을 빨아먹으면 입안이 개운하다. 단물이 모두 빠진 뒤에도 아래윗니를 부딪쳐 씹으면 치아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는 기호품이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나누는 즐거움도 있다.
“껌을 씹으면 이빨건강에 좋아요.”
“예. 그렇겠네요. 고맙습니다.” 포장지를 벗기고 입안에 넣어 잘근잘근 씹었다. 틀니는 내 몸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껌은 강한 접착력으로 틀니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씹을수록 껌의 부피는 감소했고 뱉어내도 여전히 입안에 이물질이 있는 느낌이었다. 포장을 뜯지 않고 줄때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중에 먹겠다고 둘러대지만 껌을 발가벗겨 입에 넣으라고 하면 거절하지 못했다. 입에 넣었다가 금방 뱉을 수도 없고 오물오물 씹는 시늉을 하지만 껌은 껌이다. 손님이 내리시면 즉시 뱉어내는데 영업이 끝날 때까지 혀끝은 분주하게 껌을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나이를 먹을수록 부끄러운 마음은 감소가 되나보다. 나이 60이 넘고부터는 의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대놓고 자랑할 일은 아니나 숨기고 창피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손님이 껌이라도 주려고 하면 ‘죄송합니다. 의치를 해서요’ 라고 말한다. 거절을 한다고 미안한 일도 아니고 의치를 했다고 일부러 숨길 일도 아니다. 어느새 생긴 대로,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나이가 되었나보다.
벌써 15년 세월이 지나갔다. 입을 조금만 벌려도, 살짝 웃어도 보이는 앞니가 빠지던 날, 내 삶이 종착역으로 내닫고 있다는 서글픈 마음으로 몹시 우울했었다. 호랑이 답배피던 시절이라면 그랬을 것이다. 이가 빠지면 음식물의 섭취가 어려워지고 건강이 급속도로 약해져 생을 마감하게 되었을 게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이가 없어도 잇몸이 아닌 의치로 얼마든지 음식을 섭취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진짜보다 더 예쁜 하얀 이를 마음 놓고 드러낼 수도 있다. 그 날의 우울했던 마음을 걷어내고 활짝 웃어본다.
첫댓글 상대적으로 일찍 앞니가 나갔네요.
나도 여기저기 떼우다가 다음 달에는 한 군데 임플란트하기로 했어요~
제가 좀 부실합니다. 감사합니다
7살 정도때 그네를 타다 넘어지며 우측 앞니가 2/3가량 부서진후 군대 전역하고 나서야 덧씌워 아직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앞니 때문에 15년정도 제대로 웃지도 못했더니 표정이 밝지 못했었죠.. 지금은 방긋 웃지만요.. 앞니 참 소중한 존재입니다.
고생을 많이 하셨군요.강한 치아는 큰 복입니다. 이제는 부끄러워 하지 않고 웃으며 지냅니다.
치아에 관한 글이 흥미로웠습니다.그만큼 선생님의 글이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글이 시작되고 전개과정에서 저도 약한 이 때문에 치과에서 치료받은 적이
많았기에 몰입이 더 되었습니다.
요즘 의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선생님 맛있는 것 드시고 늘 건강하세요
우리들은 참 좋은 세상에 살고있습니다. 잇몸으로 우물우물 멀건 국물만 삼키다가 생을 마감하시던 앞선 세대를 생각하면 분명 좋은 세상입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뽁 중 으뜸인 치아 건강 실감하네요.
고기도 씹어야 제맛이죠. ㅎㅎ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오늘도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