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 번
동
녹번이라는
지명은 녹번현에서 유래되었다.
이 지역은
1949년 8월 1일 서울에 편입되어서
녹번리로
불리어 오다가 1950년 3월15일
서울특별시
동리이름 개정시 녹번동으로 바뀌었다.
동사무소의
변천은 1945년 4월 18일 주변의 응암동,
역촌동,
신사동과 함께 4개 법정동이 합하여
녹신
동사무소로 되었다가 1973년부터 독립되었다.
관내 옛
지명으로는 양천리(돌산리), 웃물골, 안정박골,
도살장터,
패일재, 산골고개 등이 있다.
불 광
동
불광이라는
지명은 글자 그대로 이 근처에 바위와 대소사찰이 많아
부처의
서광이 서려있다고 해서 이름지어진 것이다.
지금도
북한산 자락인 이곳에는 여러개의 사찰이 있다.
불광동은
1970년 5월 18일 불광1동과 불광2동이 분리되고 그후
인구가
증가하여 1985년9월1일에 불광 2동이 다시
불광 2동과
불광 3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관내 옛
지명으로는 독바위골, 수리봉, 돈노리,
연신내,
어수물터 새장골, 박석고개 등이 있다.
갈 현
동
갈현이라는
지명은 옛날의 갈고개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동국여지비고나
육전조례 같은 고서에서도 북부 성밖이었던
이 지역의
이름을 갈고개로 소개하고 있는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전하여
오는 말로는 이 일대에는 칡뿌리가 많아서
갓을 만드는
원료가 되어왔기 때문에 칡고개 또는
칡넝쿨고개로
불리어 왔고 또 이 근처에는
박석고개라고
불리웠던 곳도 있어서 구릉이 많았던 곳이다.
1989년
6월 1일 갈현동은 갈현1동과 갈현2동으로 분동되었다.
관내 옛
지명으로는 갈곡리, 온수리, 효경동, 좌월, 궁말, 버리고개등이 있다.
구 산 동
구산이라는
지명은 경기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뒷산의 모양에서
얻어진
것으로서 산이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옛 부터 그
아랫마을을 구산동이라고 불러 왔다고 전해오며
지금도
서오릉으로 넘아가는 언덕길에서 남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산에
거북모양이
남아있어 옛날의 정경을 되살려주고 있다.
행정동사무소로는
처음에 주위의 대조동, 불광동, 갈현동과 함께
대광동사무소에
속해 있었으나 점차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1973년부터는
갈현동과 함께 떨어져 나와 갈현 동사무소를 설치하였고
1975년
다시 분리되어 구산동사무소를 독립시켰다.
그러나
지역이 넓지 못해 갈현동 지역을 상당부분 끌어 들였고
12m도로와
능선을 경계로 하여 관할 구역을 삼고 있다.
대 조
동
대조라는
지명은 글자 그대로 옛날의 큰 대추나무골에서 유래되었다.
서울에는
옛날에 남산골, 다락골, 밤섬 등 구전으로 불리워 오던 것을
후에 한역을
해서 남산동, 누각동 혹은 율도라 했는데
대조동 역시
이 범주에 속하는 동이름 중의 하나다.
당시 이곳은
산골이었고 특히 대추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여 오며 근처에 갈고개, 박석고개 등이 있다.
관내 옛
지명으로는 대추마을이 있다.
응 암
동
응암이라는
지명은 옛날 왕의 일행이 궁중에서 나와
사냥터로
삼았던 큰바위가 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행정동으로는
처음으로 녹번동, 역촌동, 신사동까지 합해
녹신동
사무소 관내로 삼았으나 그후 주민이 늘어나
동사무소를
증설하기에 이르렀고
응암동은
따로 떨어져 나와 1동과 2동 사무소를 개설하였다.
그러나 지난
1975년 10월1일는에 3동사무소를 하나 더 늘여서
3개동으로
나누어 졌으며
1988년
7월 1일 응암2, 3, 4동으로 각각 분동하였다.
관내 옛
지명으로는 포수마을, 냉정골, 매바위, 눌뫼동네 등이 있다.
역 촌 동
역촌이라는
지명은 고려말기와 근세 조선초기 이 부근에
역이
있으므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역촌동은
1955년 행정동제가 실시될 때는 이웃의 녹번동,
응암동,
신사동과 함께 녹신동 관내였고, 그후
녹신동에서
분리되어 신사동과 함께 역촌동사무소로 설치했으나
1975년에는
다시 신사동 마저 독립 되었기때문에
역촌동사무소는
법정동계만 관할하게 되었다.
1985년
역촌동은 역촌1,2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관내 옛
지명으로는 마방촌(역말), 토정리 등이 있다.
신 사
동
신사라는
지명은 관내에 새 절이 있어서 생겨난 이름이나
언제
어느지점에 절이 있었는 지는 알 길이 없다.
1955년
이웃의 응암동, 역촌동, 녹번동과 함께
녹신동사무소를
설치하고 그 관할하에 있었으나
1973년
떨어져 나와 역촌동 과 함께 역촌동사무소로 되었으나
다시
1975년 인구의 증가로 신사동이 독립된 동사무소로 되었다.
그후
1989년 신사동은 다시 신사1동, 신사2동으로
각 각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관내 옛
지명으로는 풋나무골, 고태골등이 있다.
증 산
동
증산이라는
지명은 등에 업고 있는 산모양을 일컫는 것으로
비단산,
시루산 등 여러가지 뜻으로 통한다.
그것은
북한산의 줄기인 산이기 때문이다.
1955년
행정동사무소로 설치될 때에는 남가좌동과
북가좌동까지
합쳐서 증가동으로 사무실을 만들고
그
관할하에 두었는데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남가좌동은
떨어져 나가고 북가좌동사무소로 개칭되어
증산동,
북가좌동 둘만을 관할하게 되었고 그후
1975년
북가좌동은 서대문구로 편입되고 증산동만 남게 되었다.
관내 옛
지명으로는 분토골, 까치고개라는 이름이 있다.
수 색
동
수색이라는
지명은 이 일대가 한강하류로서 옛부터 물과
깊은 인연이
있던 곳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생리계,
수색계, 수암리계, 학암리계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워지다
수색리라고
불리워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55년
4월18일 행정동사무소가 설치될 때에는
타동은
지역과 인구가 마땅치 않아 합하거나 양분되기가 일쑤였지 만
수색동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수색동사무소 하나였다.
관내
옛지명으로는 까치고개가 있는데
앞에서
설명한 증산동 의 까치 고개와 같다.
진관내·외동
진관이라는
지명은 동리에
진관사라는
절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973년
서울에 편입되면서 진관동 하나를 두었으나
인구의
증가로 진관내·외동으로 분리 되었다.
옛
지명으로는 못자리골(못절터), 탑골, 삼천리골,
여기소,
마고정, 재각말, 잿말, 폭포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