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추사(秋史)의 부작란도(不作蘭圖)는 국보180호인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와
쌍벽을 이루는 화제작으로 세인에 회자(膾炙)되고 있습니다.
이 부작란도(不作蘭圖)의 한시는 너무 난해(難解)하여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추사 김정희가 불심(佛心) 에 바탕을 둔 한시로 유명합니다.
김정희의 세한도와 부작란도는 문인화(文人畵)의 정수(精髓)를 보여주는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에 이름만 기억해도 의미가 있어 소개드립니다
문인화(文人畵)란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층 사람들이 틈틈이 취미로 그린 그림으로 명(明)나라 때
동기창(董其昌)이 제창한 남종화(南宗畵) 라는 특유의 그림 양식입니다.
위의 한시에서 추사는 20년동안 난(蘭)을 그리지 않다가 우연히 하늘의 본성(本性)을 그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성(本性)이란 사람이나 사물의 본바탕을 말합니다.
본바탕이란 손질이 가지 않은 처음 만든 그대로의 근본이 되는 본체(本體)를
를 말합니다.
동양철학의 본성(本性)에 대한 기본적인 의미는 중용(中庸) 제1장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입니다.
“하늘이 명(命)하는 것을 일컬어 성(性)이라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뜻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특별한 정의를 하지 않고 “성(性)이란 것은
하늘이 명령해서 인간이란 존재에게 부여한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더 왈가왈부할 몫이 아니라고 못 박은 의미도 있습니다.
추사는 하늘의 본성을 그렸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본성은 천성(天性)입니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은 천성이 착해서” 라는 말은 본래 타고난 성격이나
성품인 바탕을 말합니다.
추사가 난(蘭) 한폭을 20년 만에 그리면서 하늘의 본성을 말하는 것은 불교의 선(禪)의 의미를 깊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선(禪)이란 간단히 말해서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생각하여 깊은 경지의 깨달음을 얻는 수행(修行)행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보는 바와 같이 못생긴 지푸라기 같은 난잎 10개를
그리다 만 것 같은 그림입니다.
사군자중의 하나인 난(蘭)을 그리는 법도를 완전히 벗어난 그림입니다.
난처럼 보이게 하는 형체 묘사나 기교 따위는애초 관심 없다는 인상을
주는 그림입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즉흥적이고 수정이 불가한 붓 터치 한번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후리핸드(Free Hand-기구를 쓰지 않은 수작업)로 그려진
것을 감안할 때 수백 수천장을 그려서 하나 나올까 말까한 난(蘭) 그림입니다.
이 그리다 만 것 같이 느껴지는 난 잎이 주는 정리되지 않은 여백(餘白)의
짜임과 선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자주 많이 그린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불교의 선(禪) 수행(修行)인 돈오돈수(頓悟頓修-갑자기 깨달음)
와 같은 의미를 갖게 합니다.
이런 자신의 무아지경 속에 붓가는대로 그린 그림의 화제(畵題-그림 제목)를
스스로 유마힐의 불이선(不二禪)이라 하였습니다.
위의 한시를 보면 자기 그림에 이토록 지극한 자화자찬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부작난도는 괴팍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입니다.
빈 공간이 많은 보통 난초 그림과는 달리 삼면으로 빽빽하게 그림에 대한 설명의 글이 네 개나 붙어 있습니다.
또한 난초는 못생긴 잡초 같습니다.
난초그림의 특유의 부드럽고 흐르는 듯한 곡선미와는 담을 쌓았습니다.
전통 난초 그림에서는 잎이 꺾이고 구부러지는 변화가 반복되는 전절(轉折),
잎새의 폭이 풍성하고 가늘어지는 변화가 반복되는 비수(肥瘦)의 리듬감을
중시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난(蘭) 그림법을 사실상 무시하였습니다.
잎은 끊어지거나 마구 떨고 있습니다. 그냥 힘주어 찍 그은 것 같은 이
전위적(前衛的) 화법(畵法)의 설명을 첫 그림제목인 오른쪽의 두 번째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추사는 후대인들이 그림을 보고 황당함을 미리 꿰꿇어보는 듯 이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초서와 예서의 기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한마디로 서예 쓰듯 난초를 그렸다는 말입니다.
자세히 보면 그림에 붙은 글씨들은 대부분의 획은 굵은 뼈대만 짙은 먹으로 살리고 다른 획들은 슬근슬근 써서 괴이하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글씨법으로 난초를 그렸으니 난초의 그림 자체보다 그림을 그린
추사라는 인물의 사상을 더 기억하게 만듭니다.
미술사가 강관식 교수는 이 그림을 평하기를
“그림의 난초와 글씨는 바로 추사 자신이요 추사의 몸과 의식” 이라며
“그림이 곧 사람이요 사람이 곧 그림인 불이(不二)의 경계”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림의 이치가 곧 불교의 선(禪)과 통한다”고 했던 추사는 선(禪)과
그림의 일치(一致)의 경지를 불현 듯 일궈냈고 그 성취에 스스로
놀라워했던 셈입니다.
추사는 불문(佛門)에 입교(入敎)하지는 않았지만 일반인으로서는 드물게
불심(佛心)과 불교 지식(知識)이 깊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족계(具足戒)란 스님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비구(比丘)의 250계와 비구니(比丘尼)의 348계율을 말합니다.
이 한시의 핵심은 유마힐(維摩詰)의 불이선(不二禪)을 내포 하고 있습니다.
불교인이나 불경에 관심이 있는 분은 아시겠지만 유마힐(維摩詰)은 재가(在家)의 신도이지만 부처님의 청정(淸淨)한 계율을 받들어 행하고,
비록 세속에 살지만 세상사에 집착하지 않았다 합니다.
유마경에 기록하기를 어느 날 부처님이 비야리성에서 설법을 하는데
이 성의 장자인 유마거사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어 물어 보니
“병으로 누워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여러 제자들에게 병문안을 하고 오라고 하였지만 모두 핑계를 대고
가기를 싫어했습니다.
이유는 유마거사는 재가 신도이지만 진짜 부처님 제자들보다 더 불법을
잘 알아 웬만한 부처님 제자들은 항상 야단을 맡기 때문에 유마거사와
대화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문수보살이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유마거사의 병실로 문병을 한자리에서 나눈 대화가 불이선(不二禪)이라 합니다.
32명의 제자에게 유마거사가 불이선(不二禪)이 무엇인가를 묻자 제자들이
입으로 설명을 합니다.
문수보살은 최후로 유마거사에게
“우리들 32보살은 불이법문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밝혔는데,
이제는 유마거사 당신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거사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라고 질문하자
유마경에 “유마거사는 단지 침묵(沈黙)을 하였다”고 합니다.
침묵의 뜻은 불법(佛法)의 진실은 언어나 문자로 설명할 수도 없고, 마음으로
분별해서 알 수도 없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경지임을 침묵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침묵은 언어와 문자로 설명하는 이원적(二元的)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도 유마힐의 “침묵”에서 연유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불이선(不二禪)이라는 것은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입니다.
이이불이(二而不二) 즉 둘이면서 결코 둘이 아닌 하나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불이(不二)로 줄여 만든 말이 불이사상(不二思想)이라고 합니다.
태어나는 생(生)의 이치를 깨우치면 죽는 멸(滅)도 없는 것입니다.
깨끗함인 정(淨)을 깨우치면 더러움인 구(垢)도 없는 것입니다.
물질인 색(色)을 깨우치면 물질이 없는 공(空)도 없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상대적인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것입니다.
추사가 20년만에 난을 그리고 문을 닫고 곰곰이 생각하니 꼭 붓으로
난(蘭)을 그려야 난이 아니고 마음속으로 그려도 난이라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은 마지막 단계에서 진실로 사랑한다면 육체적인 섹스로
한 몸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에 있어서 섹스는 아름답고 숭고한 것입니다.
섹스 없이 말과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최고경지의 확인절차는 성(性)을 섞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진이와 서화담의 사랑이야기 일화중에서
“한 이불속에서 자면서도 서화담이 황진이를 취하지 않자”
다음날 아침에 그 연유를 묻자 서화담이 대답하기를
“반드시 네 몸속으로 들어가야 사랑이냐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너에게 들어갔느니라”
이것이 범인(凡人)의 최고 경지를 넘어선 불이선(不二禪)의 사랑입니다.
요즘에는 좀 뜸하지만 신토불이(身土不二)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약 15년 전 농협에서 우리나라 토종 농산물의 소비를 권장하기 위한
홍보 전략으로 널리 애용한 문구입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인간(身신)과 땅(土토)은
결코 둘(二)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말은 원래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에서 나온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말입니다.
“신토불이”라는 용어는 불이사상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을 연구하고
한글 논어(論語)를 출간한 한국철학의 대가(大家)이며 전 전남대학교 교수인
고(故) 이을호(李乙浩)선생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는 조선사람이니 조선의 시를 즐겨 짓겠다(我是朝鮮人 甘作朝鮮詩)”
는 다산의 말은, 비록 한문을 빌려 쓰지만 결코 중국적인 시가 아니라
조선적인 시를 써야 한다는 ‘신토불이’적 발언이었습니다.
불이(不二) 곧 하나 됨이란 둘 셋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라는 말은 다른 둘 셋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도 진실하지 아니하면 “하나”가 아닙니다.
진실한 다수는 곧 하나입니다.
유마거사의 불이선(不二禪)이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의 세상입니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