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오고 5년 만에 치매에 걸리신 시어머니 홀로 5년간 병실에서 누워 잠자고 대소변 받아내고 병시중들다 보니 남편 품에 단 한 번도 잠들어 보지 못했지요 그래도 평생 이 짓 해도 살아만 계셔준다면 할 수 있었던 것은 치매 걸리시기 전 오 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의 길을 따라 고불고불 늙으신 어머니 내 생전 그렇게 선하고 지혜롭고 어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삶은 언제나 겸손히 무릎을 꿇고 자식 앞에 연탄재 되어버린 전 생애가 가족뿐이었을 시어머니 양지쪽에 햇볕만 쬐다 가는 인생들이야 알 수 없지만 휘젓고 또 휘저어도 손에 아무것도 잡힐 것 없는 제 친정은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집 나간 엄마 상습절도에 유치장을 제 집으로 아는 오빠 그 밑에서 매를 맞고 울며 자란 저를 공주님처럼 받들어 주신 분이 저의 시어머니십니다 부모 정 모르고 자란 저는 아파트 처분하고 어머니댁으로 들어가서 셋이 살게 되는 날 남편은 말했습니다 평생 자식들에게 언성 한번 높이신 적 없는 어머니가 과부로 사시며 부엌에 떨군 눈물 덕분에 황량하고 딱딱한 집에 어둠은 가고 새벽이 온 거라고요 남의 집 귀한 딸 그냥 데려올 수 없다며 2천만 원짜리 통장을 내어주시며 이 돈으로 혼수 마련해 오너라 하시던 그런 시어머니는 거실에 한가로움을 앉혀놓고 간혹 불빛 고운 창가에 앉아 신랑이랑 셋이서 소주잔 기울이며 삼겹살 구워 먹다 평소 속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이라 지난 세월 덮어 두다 보니 서러움에 술주정하는 며느리를 “얼메나 무서벗노... 얼메나 서러벗노...” 꼭 안아주시며 나보다 더 서럽게 같이 울어주시던 그런 시어머니였습니다 피곤해 설거지 쌓아놓고 자고 놨더니 새벽에 제가 깰까 숨죽여 설거지 다 해놓으신 걸 보고선 "다음부턴 제가 할 테니 어머닌 하지 마셔요" 라고 하면 "니가 왜 하노 니 남편 시켜라" 하시며 나갔다 들오실 땐 제 먹으라고 까만 비닐봉지에 군것질거리 매번 사오셔서 “공주야 엄마 왔다” 하시며 제가 무슨 그리 귀한 몸이라고 일 시키기 아까워 벌벌 떠시던 그런 시어머니께서 어느날 치매에 걸려 누워 계십니다 “할머니는 누가 제일 좋아요?” 라고 물으면 “막내딸이 하나 있는데 난 그 딸이 최고다” 어머니 기억 속엔 제가 딸이라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마음속엔 제가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니라 서로의 살 속에 뿌리내려진 자신이 낳은 딸이었다는 걸... "니가 제일 아픈 손가락이데이" 하시던 그 말씀이 진짜였다는 걸 하루는 제 손을 꼭 잡으시고는 만 원짜리 한 장을 손에 쥐여주시며 “꼭 맛있는 것 사 먹어라“ 라고 하시곤 병실 자리에 돌아 누워 잠을 청하신 게 어머니의 살아생전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이 어머니가 먼길 가신지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시장 보러 가 널리고 널린 까만 비닐봉지를 보니 가난한 당신이 생각나 눈물이 납니다 오늘도 어머니가 제 손에 쥐여주시던 만 원짜리 한 장을 베개 밑에 놓고 이 밤도 잠듭니다 꿈에서라도 뵙게 되면 “사랑한다고.” “ 감사했다고” 꼭 말해 드리려고요 바람처럼 가여운 내 어머니 세월이 가도 어머니의 사랑과 그리움이 “무뎌지질 않길” “잊어버리지 않길” 이 밤 바래봅니다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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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며느리 밥풀꽃은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하지요
어릴적 엄마 말 안들면 엄마를 데려 갈거라면서 새엄마가 밥을 굶겨 몰래 밥티 두 알 먹다 들켜 놀래 죽어 묻었는데 다음해 그곳에 핀 꽃이 며느라밥풀 꽃이라 하셨지요
제 나이 7살정도 되었을때 얘기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