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진의 맛있게 읽은 시]비망록 - 김경미.
비망록
ㅡ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 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 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他人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 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 보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잇몸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 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 시집『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실천문학사,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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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얼마 전 tvN‘인생술집’이란 프로에서 배우 손숙이 20대에 썼다는 시를 보면서 이 시가 생각났다. 작가 신경숙은 80년대 어느 날 새해 아침 이 시를 신문에서 읽었을 때 찔끔 눈물이 맺혔다고 했다. ‘청춘의 한 복판, 존재한다는 것이 그저 미안하고 송구했을 때, 아, 그래도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 함께 있구나’ 싶어 손을 뻗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여자의 감수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무슨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라고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그렇게 시작된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인데, 삼빡하면서도 불안한 스물네 살 즈음이 바로 그런 시기가 아닐까. 연애는 한번 쯤 박살나고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상처를 느끼기 시작한다.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어서 알을 깨는 고통을 맛보기 시작하는 지점인 것이다.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잇몸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극장 매점의 팝콘처럼 하얗고 가벼운 나비 같은 생’의 감촉은 차마 느끼지 못했다. 그리하여 쓸쓸함은 사람보다 더 깊고 오랜 무엇. 상처가 깊으면 깨달음도 깊다. 데미안을 다시 읽는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결코 쉬울 리 럾는 자기 자신에게 다가서고서야 무슨 일이든 닥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얼마 전, 고속버스 여행을 하는데 옆자리에 스물네 살쯤 되어 보이는 단정한 숙녀가 앉았다. 습관처럼 휴게소에서 산 호두과자 한 봉지를 혼자 우물우물 먹기가 여간 모양 빠지는 일 같지 않아 잠시 주저했다. 옆자리에 몇 개 건너볼까도 생각했으나 까닥하다간 주책바가지 이상한 노인네 취급받을까봐 그러지 못했다. 결국 가방에다 그냥 집어넣고 눈을 감았다. 내 20대엔 용기가 없었고 지금은 사회의 편견이 두려웠다. 이정록은 <더딘 사랑>에서 ‘돌부처는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고 했다.
언제나 내게 필요한 건 용기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래, 그 용기만 있다면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면 ‘쓰다만 편지인들 다시 못쓰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