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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글(스크랩)모음 스크랩 월출산[ 月出山 ] , 주말 산행지로 생각해보다.
김항섭 추천 1 조회 49 14.10.29 06:4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월출산은 놀랍다. 드넓은 나주평야와 그 주변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산세 속에 나른하게 잦아들던 사람들은 영암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다가드는 감청색 바위산에 놀란 눈을 뜬다. 사방 백리에 큰 산이라고는 없는 들판에 마치 설악산을 떼어다 놓은 듯한 장대한 돌산이 서 있는 것이다.

월출산

월출산1988년 우리나라에서 열아홉번째로 지정된 가장 작은 국립공원이지만 천황봉·구정봉·미왕재 등에서 펼쳐지는 절경은 호남의 금강산이라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월출산은 금강산이나 설악산처럼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리산과 무등산 같은 남도의 큰 산들이 모두 둥그스름한 흙산인 데 비하면 기이하게 느껴질 만큼 색다르다. 가장 높은 천황봉(809m)과 구정봉, 도갑봉 등 높은 바위 봉우리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늘어서서 병풍 모양을 이루고, 그 갈피갈피에 온갖 형상의 바위와 절벽들이 가득 찼다. 병풍의 북쪽은 영암땅이고 남쪽은 강진에 속한다. 대체로 영암 쪽이 더욱 날카롭고 가파르며 강진 쪽에는 흙기가 조금 있다.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세가 비슷하다고 해서 남한의 금강산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남원 지리산, 장흥 천관산, 부안 변산, 정읍 내장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혀 왔다. 1988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 세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 바위들의 기운으로 산 아래 고을에 큰 인물이 난다고 하여 중국 사람들이 몰래 와서 바위들을 밀어 떨어뜨렸는데, 그중 한 바위가 도로 기어올라갔다. 그 신령스러운 바위가 있는 곳이라 하여 산 아래 고을을 영암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예 월출산 전체가 한 덩어리의 신령스러운 바위로 보이기도 한다.


월출산은 조선 시대의 이름이고 신라 때는 월나산(), 고려 때는 월생산()이라고 불렀다. 이름에서도 연상되듯, 이 산의 바위 봉우리들 사이로 떠오르는 달이 아름다울 것은 보지 않은 사람도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날카로운 능선 위에 뜬 둥근 달, 그 사무치는 아름다움을 한번 본 사람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고들 한다. 김시습은 이 산을 두고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고 노래했다.

가장 높은 천황봉에 오르면 북서쪽으로 나주평야가 잔잔하게 펼쳐지고 북동쪽 멀리에는 지리산으로 달리는 산줄기가 아득히 이어지며 서쪽으로는 목포 앞바다와 영암 읍내가 보인다. 천황봉에서 바라다 보디는 겹겹의 산줄기 위로 해가 뜨는 모습, 번쩍이는 강줄기 너머로 남해와 서해에 흩어진 섬들, 서해의 일몰, 그리고 산 서쪽 아래 구림마을에서 보는 달돋이는 월출산이 자랑하는 장면들이다.


또 천황봉에서는 삼국 시대 이래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빌며 하늘에 제를 지낸 천제단이 있다고 전해져 왔는데, 1994년 목포대학 박물관이 벌인 발굴조사에서 실제로 제사용 그릇이나 기와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천제는 고조선의 소도제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등에서 비롯하여 조선의 원구단 의례로 이러진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의례로, 『삼국사기』에는 신라 선덕왕 때부터 전국 50군데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어디에서도 실체는 발견되지 않았었다. 천황봉 천제단 자리에서는 통일신라 때의 토제 향로 뚜껑과 토우, 고려 시대의 녹청자 접시와 청자 탁잔대, 조선조의 백자 접시와 명문이 새겨진 암키와 등 각 시대의 유물이 차례로 나와서 그간 문헌이나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천제단의 존재가 처음으로 증명되었다.


영암 쪽 산자락에는 도선의 전설이 얽힌 구림마을과 도갑사, 왕인과 관련된 성기동·책굴·돌정고개 등이 있고 강진 쪽에는 월남사터와 무위사가 있다. 또 구정봉 정상 가까이에 있는 한 바위에는 거대한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구정봉은 꼭대기에 샘이 아홉 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아홉 개의 샘이란 오랜 세월 동안 화강암이 물에 삭아서 가마솥처럼 파인 바위 웅덩이들로, 큰 것은 지름이 3m에 깊이가 50㎝나 된다.

월출산은 그 타오르는 불꽃 같은 능선으로 인해 영암은 물론이고 멀리 강진과 나주 등 어디에서 보더라도 눈에 띄며 풍경에 악센트를 준다. 봉우리 하나하나의 이름은 몰라도 좋다. 성미 깔끔한 사람의 처신처럼 빼어난 월출산의 자태는 사람들의 가슴에 선명한 점으로 남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출산 (답사여행의 길잡이 5 - 전남, 초판 1995, 23쇄 2010, 돌베개)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다. 소백산계()의 무등산 줄기에 속한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 천황봉()을 주봉으로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이라 불러왔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다. 도갑사()·무위사()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북쪽의 용추폭포(), 동쪽의 구절폭포(), 남쪽의 금릉경포대() 등이 절경을 이룬다.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 너비 0.6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출산 [靈岩月出山] (두산백과)

 

 

높이 809m. 소백산계에 속하는 해안산맥의 말단부에 높이 솟은 산체는 견고한 석영반암과 분암류로 구성되어 있어 수목이 잘 자랄 수 없는 급경사의 지형을 이룬다. 기암괴석이 많아 남국()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산의 최고봉은 천황봉()이며 남서쪽에 연이은 구정봉(, 743m) 능선을 경계로 북쪽은 영암군, 남쪽은 강진군이 된다. 구정봉 남쪽으로는 도갑산(, 376m)·월각산(, 456m) 등이 있으며 천황봉의 북쪽으로는 장군봉()·국사봉() 등이 연봉을 이룬다.

 

대체로 영암군에 속한 북쪽은 날카롭고 가파른 골산( : 돌산)이지만, 강진군에 속하는 남쪽의 산들은 비교적 산세가 완만한 육산( : 흙산)으로 되어 있다. 월출산은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신라 때에는 월나산(), 고려 때에는 월생산()이라 불렸다. 월출산은 그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예로부터 많은 시인들의 칭송을 들어왔다.

 

고려 명종 때의 시인 김극기()는 “월출산의 많은 기이한 모습을 실컷 들었거니, 그늘지며 개고 추위와 더위가 서로 알맞도다. 푸른 낭떠러지와 자색의 골짜기에는 만 떨기가 솟고 첩첩한 봉우리는 하늘을 뚫어 웅장하며 기이함을 자랑하누나.”라고 예찬하였다.

 

그리고 조선 세조 때의 시인이며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도 “남쪽 고을의 한 그림 가운데 산이 있으니, 달은 청천에서 뜨지 않고 이 산간에 오르더라.” 하고 노래하였다. 월출산은 수많은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모습이 보기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수석()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나쁘게 말하면 천하의 악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월출산은 옹골찬 모습의 암석미를 이루어 영암의 상징이자 자랑으로 1973년 3월 서남쪽 도갑산 지역을 합하여 월출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자연 및 문화경관을 보호하고 국민 보건·휴양 및 정서생활 향상을 위한 관광지로서의 개발 가능성이 인정되어 우리 나라 20번째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의 면적은 41.88㎢이며 공원 내에는 많은 문화재와 사적지가 있다. 천황봉의 정상 가까이에는 거대한 월출산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이 방형의 감실이 만들어진 큰 암벽 위에 조각되어 있고, 이의 동쪽 사면에는 구절폭포()가, 서쪽 사면에는 용추폭포()가 있다. 이밖에 칠지폭포·은천폭포·대동폭포 등도 유명하다.

 

이곳에는 유명한 사찰도 여럿 있는데, 특히 도갑사는 고려 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로, 도갑사해탈문(, 국보 제50호)·도갑사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도갑사도선수미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8호) 등이 있다.

 

또, 절의 입구에 있는 구림()마을은 도선국사의 어머니 최씨가 빨래터에서 떠내려오는 오이를 먹고 도선국사를 수태하였다는 전설과,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가지고 건너가 학문을 전하고 일본황실의 스승이 된 왕인()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적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지금도 도선국사와 관련된 최씨원·백의암, 왕인과 관련된 책굴·돌정고개·상대포() 등이 지명으로 남아 있다.

 

도갑산 남동쪽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는데 무위사극락전(국보 제13호)과 함께 극락전의 아미타삼존불과 관음보살상을 그린 벽화가 유명하다. 그 밖에 무위사선각대사편광탑비(보물 제607호)가 있다. 이 절의 동쪽 월남리의 월남사지()에는 월남사지모전석탑(보물 제298호)과 월남사지석비(보물 제313호)가 있다.

 

여기에서 월출산계곡으로 들어가면 금릉경포대()가 있다. 구정봉 정상 아래 미왕재에는 억새밭이 드넓게 이루어져 매년 가을 ‘월출산갈대제’가 열린다. 월출산은 호남의 5대 명산인 광주의 무등산(), 순천의 조계산() 등과 함께 솥의 세 발처럼 우뚝 솟아 있다.

 

이 월출산의 천황봉에서 중첩한 산줄기 위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일출과 황해를 진홍빛으로 물들이는 일몰 광경, 그리고 구림에서 바라보는 월출은 가히 호남 제일의 장관이다. 특산물로는 궁중진상품으로 이름났던 참빗과 산란기인 3∼5월에 잡은 숭어의 알, 별미 있는 세()발낙지·짱뚱어(망둥어) 요리가 있다. 이것은 아름다운 산세와 더불어 중요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출산 [月出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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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10.29 08:38

    첫댓글 좋습니다.............월출산=\\\=

  • 14.10.29 10:10

    멋지네요.^*^
    감사합니다.풍광 장광설
    하는듯 하네요.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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