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2일 대통령실 비서실장에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용산 참모진뿐만이 아니라 내각·당·야당·언론·시민사회 등 모든 부분에 원만한 소통을 하면서 잘 직무를 수행해주실 거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간 국민적 상식과 동떨어진 인식과 행태로 논란을 빚은 전력에 비춰, 이런 기대와는 거리가 먼 인선이라는 평가다.
윤 대통령과 ‘고향 친구’ 사이라고 강조해온 원조 친윤인 정 실장이 과연 윤 대통령에게 얼마나 민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를 의구심이 든다. 국민의힘 안에서도 “우리 당이 무너지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주도한 정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한다는 건 지난 2년처럼 일방통행을 고집하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는 지적이 나왔다.
윤 대통령은 '내로남불'로 일관한 민주당 정권 5년에 염증을 느낀 민심 덕분에 반사이익을 누리며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가 보인 모습은 기대를 밑돌아도 한참 밑돌았다. 국민과 소통하겠다면서 굳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해 놓고는 정작 '불통' 소리를 듣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올해 들어 24차례나 민생토론회를 개최하고 유튜브 생중계를 한 윤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불통이라고 느끼는 것은 언제나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장황하게 하고 듣기 불편한 말에는 귀를 닫아버리는 일방통행 모습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항의한다고 굳이 '입틀막'까지 하며 끌어내던 광경은 이러한 불통 이미지를 대표하는 장면이다.
스스로 소통의 상징처럼 내보이던 출근길 도어스테핑이 잇따른 설화 때문에 중단된 이후로 대통령과의 쌍방향 소통은 끊겨버렸다. 신년 기자회견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 백'에 관한 질문이 나올까 겁나서 KBS와의 단독 대담으로 대체할 정도였다. 윤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것은 대통령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예스맨'들이고, 바른 소리를 하는 정치인들은 배제되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용산에 모여서 국정을 운영하니,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둔감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친하지 못했고, 민주주의를 불편해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나타냈다. 평생 검사로 지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시끄러운 과정을 싫어했고 검찰총장 시절 모습대로, 상명하복 원칙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사회는 진즉 다원화되고 복잡해져 섬세한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는데, 대통령은 구시대의 단순하고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국정을 운영하니 퇴행적 성격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권력이 귀를 닫아버리고 불통이 돼 권위주의 시대의 리더십으로 되돌아간 모습은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었다.
대통령의 이런 부정적 평가를 최소화하려면, 정 실장 자신부터 현 국면에서 새롭게 요구되는 비서실장의 책무를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전처럼 ‘윤심 전위대’나 방패막이 노릇에 그친다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비상한 각오로 가감 없는 민심 전달, 야당과의 협치 도모 등 대통령의 제1참모로서 할 말과 할 일을 다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