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 맥주회사 간부들을 만나 일본 맥주가 맛있는 이유를 물었다.
몇 가지를 말했는데 하나가 뜻밖이었다.
일본 맥주 역시 옛날엔 맛없기로 유명했다가 100년 전 큰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1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중국 조차지 칭다오를 일본이 점령했다.
독일은 그곳에 큰 맥주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 공장을 일본이 접수해 선진 맥주 공법을 홀랑 베꼈다고 했다.
이 공장을 차지한 회사가 다이닛폰 맥주였다.
지금 아사히와 삿포르 맥주의 전신이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하면서 이 공장은 중국에 넘어갔고 거기서 생산한 것이 양꼬치와
궁합이 맞는다는 칭다오 맥주다.
다이닛폰 맥주는 일본이 강번하던 조선애도 공장을 만들었다.
이 공장이 해방 후 한국인에게 넘어가 지금의 하이트 맥주가 됐다.
오비맥주 역시 일본 기린 맥주의 조선 공장에서 출발했다.
둘 다 칭다오 점령 후 세웠기에 독일 공법이 적용됐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중국보다 훨씬 박한 평가를 받고 있으니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어느 영국 기자가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꼬집었다.
대동강 맥주는 16년 전 생겼다.
처조카에게 삐띡히게 굴었다가 사형당한 장성택이 김정일 지시를 받고 만들었다고 한다.
짧은 역사에도 좋은 맥주를 빚는 바결이 뭘까.
대동강 물맛도 좋지만 있지만 영국 양조장을 통째로 들여온 덕분이다.
'어셔'라는 회사의 양조장 문짝과 바딕 타일, 변기 뚜껑까지 싹 쓸어왔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맥주 맛은 단순한 듯하지만 아주 미묘하다.
축적된 노하우와 전통이 필요하다.
뜻밖의 나라가 맛있는 맥주는 칭다오처럼 대개 식민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자부하는 빈탕 백주도 지배국이던 네델란드가 하이네켄 맥주의 공법을 들여다 생산했다.
물론 전통만으론 안 된다.
맥주 시장은 삭람들 미감이 조금만 바뀌어도 일거에 뒤집히기 때문에 끝없는 혁신이 필요하다.
일본 맥주의 오늘날 30년 넘게 업체들이 맛을 놓고 경쟁한 '드라이 전쟁'의 산물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 맥주가 뒤떨어진 이유를 정리해 발표했다.
시설. 유통망 규제, 종가세 세금, 가격 결정 구조를 꼽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빠졌다.
혁신 노력이다.
엄혹한 독재 왕국의 대동강 맥주, 술에 완고한 이슬람 국가의 빈탕 맥주가 설마 적은 규제와 많은 자유 덕분에 맛있을까.
한국 맥주 업계는 폭탄주용 맥주에 만족하다 이 지경이 됐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새로운 맛 개발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