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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참맛을 경험하라 (겔6)
찬송 :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성경 : 겔2:8-3:3절
오늘은 목회사관학교가 진행되는 날이어야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연기되어 금주까지 휴강을 하고 있다. 사관생도들과 강사님들을 뵙고 싶다. 아마 모두의 마음들이 비슷할 것이다. 주님, 이 모든 것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더욱 발전되고 성숙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오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본문에는 바벨론 강변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속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며 유다의 백성들을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백성,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라고 하시며 그들을 향해 에스겔을 보낸다 하시며 내가 이르는 말을 하라고 하셨다. 2:4절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에스겔의 나이가 제사장으로 사역을 할 수 있는 30살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바벨론 강변에 나타나 에스겔을 선지자로 부르신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 말라 하신 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신다. 8절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도대체 무엇을 먹으라는 것인가? 두루마리 책을 먹으라고 하시는데 그 안에는 이런 글이 써 있다고 한다. 10절
‘그가 그것을 내 앞에 펴시니 그 안팎에 글이 있는데 그 위에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더라.’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것이다. 즉 그 안에 기록된 말씀이 유다의 죄에 대한 심판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었던 것이다. 물론 에스겔 선지자의 말씀으로 보아 심판에 관한 말씀만이 기록된 것은 아닐 것이다. 에스겔은 훗날 회복에 관한 말씀까지 전파하고 있다.
아무튼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먼저 이 글을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상징적 표현을 통해 하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
선지자의 모습 첫 번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임을 알게 하신다. 선지자가 말씀을 먹지 않으면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말씀을 먹는다는 것을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두루마리 책을 입에 넣고 먹으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말씀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앞에 나오는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라는 말과 함께 이 뜻을 살펴보아야 한다. 분명 유다의 모든 백성들은 다 말씀을 들은 자들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외치고 계셨지만 패역한 족속들은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경계하시면서 너는 이 말씀을 먹어야 한다고 하신다. 여기 패역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이고 순종하기를 원치 않는 마음이다.
그러면 왜 당시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패역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 즉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율법적 믿음으로 바벨론에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란 것에 대해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때는 기도하며 대적을 물리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이때는 바벨론에 멸망한다고 하니 이 말씀을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이란 시간도 그렇다.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과 맞을 때 얼마든지 순종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각과 다를 때 이것을 순종하며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렇게 인간은 패역한 백성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하나님을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여야 하지만 인간의 죄성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패역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며 단순히 듣고 말하라고 하지 않고 이것을 먹으라고 한다. 책을 어떻게 먹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신다. 3:1절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두루마리를 먹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은 선뜻 이것을 먹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친히 두루마리를 먹이신다. 2절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말씀은 귀로 듣는 것인데 입으로 먹으라니 ... 왜 이런 퍼포먼스를 통해 에스겔 선지자를 부르시고 계신 것일까?
유다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것이다. 말씀을 귀로 들은 자가 아니라 그것을 먹고 소화시킨 자가 되라는 것이다. 참된 신앙은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먹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의 참 맛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3절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당시 유다의 백성들이 패역한 족속이 된 것은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벨론에 항복하면 자신의 인생이 끝날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말씀의 참맛을 알지 못하기에 두려워 말씀을 버렸던 것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말씀을 버린다. 귀로만 들으며 자신에게 맞으면 순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려버린다. 말씀을 먹지 못한다. 두루마리를 먹듯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말씀을 먹어야 그 말씀의 참맛 꿀 같은 맛을 경험하게 되는데 말이다.
문득 열대 과일로 유명한 두리안이 생각난다.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나는 특히나 향이 많고 냄새가 고약한 것을 잘 먹지 못한다. 그런데 두리안은 냄새가 매우 고약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참고 먹으면 그 맛이 정말 좋아서 과일의 왕이라고 한다. 먹어야 맛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어떤 말씀을 주셔도 먹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선지자로 에스겔을 부르시면서 유다의 패역함을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며 또한 에스겔 선지자에게도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그것이 참으로 유다를 위해 맛이 좋은 말씀인 줄 믿고 전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아멘.
목사의 자리에서 때로 두리안처럼 고약한 냄새가 나는 말씀을 전해야 할 때가 존재한다. 그때마다 갈등과 고민을 반복해 온 내 모습을 보게 하신다. 나는 말씀을 피해가지 않는다. 말씀을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묵상도 한 절도 쉬지 않고 다 하고 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늘 주시는 말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리고 두루마리를 받아 먹으라는 이 말씀이 큰 울림으로 내게 들려진다. 2020년 주님은 내게 많은 징조들을 보여주시고 계신다. 주님의 일하심을 느끼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어야 한다.
어떤 말씀이든지 내게 들려주신 말씀에 조금의 가감도 없이 받아먹고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종이 되라는 것이다. 아멘. 아멘. 아멘.
주님, 이 종으로 패역한 백성들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는 종이 되게 하소서. 어찌하든지 주님의 말씀앞에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뜻이라면 어떤 손해가 와도 받아먹는 종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말씀의 참맛을 알고 그 말씀을 어떤 백성에게도 담대히 전하는 종이 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