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있는 집(경기도 안산)에서 애마(자전거^^)타고
달리면 5분 거리에 있는 감골 도서관에 소설가 박완서 선생
님이 오늘 오셔서 오후 3시 부터 2시간 동안 좋은 말씀들을
들려 주셨습니다.
선생의 작품을 대부분 읽었던 터라 실제 인간적인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참 궁금해서 설레이며 기다렸었지요.
유명 연예인들을 먼 발치로 몇 번 본적이 있지만 유명 작가를
직접 보는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라 약간 흥분도 되었구요.
강의를 듣고 유명한 소설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써 그 분의 진솔
한 모습과 말씀이 제 가슴을 울려주었기에 그 감동을 카페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싶어 글을 올립니다.
올해 69세
사진에서 뵙던 인상은 수더분하고 서민적이며 좀더 솔직히
밝히자면 드러나는 뻐드렁니로 인해 무지 촌스럽다는 인상
이었는데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고우시더군요.
그리고 연세를 잊게 해 주는 낭랑한 음성이 참 듣기 좋았구요.
5남매를 낳아 키우며 40세 까지 전업주부로 살다가 갑자기
소설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아주 솔직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 자신의 삶이 심심하다는(여기서
심심의 의미는 심심풀이 땅콩의 심심이 아니다)불행감에
시달리게 되고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던 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고 마침 그 때 화가 박수근 선생의
초대 전시회가 열려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박수근 선생
의 숨겨진 일화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생각에(어려운
시대를 살아왔던 자신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체험을 증언하
고 싶기도 했고) 무작정 가족들 몰래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
고 합니다. 그 처녀작이 바로 [나목]이지요.
여성동아를 통해 등단했는데 당선 인터뷰에 글을 쓰게 된 동기를
'심심해서'라고 생각없이 밝혔다가 문학이 뭐 심심한 여자들 기
분풀이 하는 건줄 아느냐는 항의에 엄청 시달렸답니다.
그때만해도 언론의 위력을 전혀 몰랐던거지요.
또 다른 이유는 홀어머니에 대한 부채감이었답니다.
청상과부의 몸으로 삯바느질을 하면서 최고의 교육의 혜택
을 자신에게 주신(숙명여고,서울대 국문과)어머니께 시집가
서 잘 사는 것 이상의 뭔가를 보여드리고 인정 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고 그러려면 뭔가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하나는 남편에게 큰 소리도 치고 자신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비록 6.25로 인해 졸업은 못했으나 서울대 출신(남편분은
요샛말로 시원찮은 곳을 졸업하셨다는데)이라는 자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굉장히 잘 났다고 소리치며 사셨는데 살면
살수록 대단치 않은 학벌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모든 경제권
을 책임지고 이끌어가는 남편에 비해 돈 한 푼 실질적으로
벌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무능력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남편이 늦게 귀가하면 이 양반이 혹시 사고로라도 갑자기
죽으면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살까를 생각하니 아찔한 기분이
들어 나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사랑'은 둘째고 현실적으로 먹고 살 일이 더 두려웠다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글쓰면서 가장 괴로웠던 점은 현실을 생생히 살지 못하고
스스로 만들어 놓은 허구의 세계에 빠져 살았던 적이 많아
가족에게 많이 미안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 등단이 여성잡지 였던터라 그 뒤에도 10여년 간을 여성지
에서 만들어가는 이미지에 맞춰 살다 뒤늦게 그것이 '위선'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인터뷰를 해도 책상 앞에서가 아닌 장독대에서 장을 푸는 모습
이였고 실제로는 하지도 못하는 시어머니 쪽을 찌워드리는 모습
을 연출시키며 효부임을 부각시키는 등등...
만들어진 가공의 탈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고
하시더군요.
너무도 솔직한 자기고백에서 글과 됨됨이가 일치하는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부로써 해야 할 살림과 본인이 행복을 느끼는 글쓰기 사
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일이 너무 힘겨웠고 글쓰기 역시
예술의 한 분야인지라 반복한다고 익숙해 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쓰면 쓸수록 더 새롭고 어렵게 느껴져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이 진을 빼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긴 강의 마무리로 해 주신 말씀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큰 박수
로 경의를 표했습니다.
작가가 되어 가장 보람있는 일은
"아무리 높은 사람앞에 가도 결코 꿇리지 않고 밑바닥에 처한
인생을 만나도 스스로가 더 잘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꿇리지도 교만하지도 않는 이 느낌"이 글쓰기를 통해 얻은 최고
의 선물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성공한 사람에게도 인간적인 약점은 있게 마련이고 패배자라고
소외받는 사람들에게도 인간의 고귀함이 깃들여져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스스로를 비하하지도 그렇다고 필요 이상의 오만에 빠
지지도 말고 살아야 겠습니다.
박완서 선생님!
오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구상하고 계신 작품(젊은 세대의 욕구에 맞춰가는 세태에 영합하
는 작품 보다는 자신이 쓸 수 있는 작품을 쓰시겠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심) 잘 풀어나가시길 빌며 내내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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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 약력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숙명여고 졸업.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6·25로 학업 중단.
1970년 마흔살의 나이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
(裸木)』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
지 한국의 현대소설을 대표하는 빛나는 작품들을 발표해왔다.
한국문학작가상(1980)「그 가을의 사흘 동안」), 이상문학상
(1981 「엄마의 말뚝」),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
(1991), 중앙문화대상·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1997년에 대산문학상 등 수상.
창작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1976), 『창 밖은 봄』
(1977), 『배반의 여름』(1978), 『도둑맞은 가난』(1981),
엄마의 말뚝』(1982), 『서울 사람들』(1984), 『꽃을 찾아서』
(1986), 『저문 날의 삽화』(1991), 『나의 아름다운 이웃』
(1991), 『한 말씀만 하소서』(1994) 『너무도 쓸쓸한 당신』
(창작과비평사 1998)등.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1977), 『도시의 흉년』(1979),
『목마른 계절』(1978), 『욕망의 응달』(1979), 『살아있는 날
의 시작』(1980), 『오만과 몽상』(1982), 『서 있는 여자』
(1985),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 『그대 아직도 꿈꾸
고 있는가』(1989), 『미망(未忘)』(199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2) 등.
동화집 『마지막 임금님』(1979).
장편동화 『부숭이의 땅힘』(1994) 등.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1977),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1980), 『혼자 부르는 합창』(1977), 『살아있는 날의
소망』(1982),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1990)
어른노릇 사람노릇』(1998) 등과 기행문 『모독(冒瀆)』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