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나는 아내와 함께 초등학교 5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던 두 딸을 데리고 농촌 마을에 터를 잡았다. 1000㎡의 텃밭에서 나오는 푸성귀가 우리 가족의 식탁을 채워주었다. 빨간 함석지붕, 창호지 문으로 된 낡은 농가주택에 살면서 토종닭을 키우고 텃밭에 채소를 가꿔 왔다. 그러면서 오염되지 않은 채 거칠게 자란 음식으로 우리의 식탁을 채우고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이원종 강릉대 교수(식품과학)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삶이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장수 마을의 노인들이다. 이 교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을 찾아가 100세 이상 노인들의 식생활을 직접 돌아보았다. 첫 번째 찾아간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인 에콰도르의 빌카밤바라는 곳이다. 이 마을은 해발 1500m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 가운데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한낮인데도 너무 조용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느긋해 보이고,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모두가 한 템포 느려 보인다.
이 마을의 최고령자인 106세의 아고스틴 할아버지 집을 찾았다. 그는 집 안에 있는 텃밭 사이를 직접 걸어 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할아버지의 부인은 이미 세상을 떠나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마당에는 레몬, 오렌지, 아보카도 등 과일 나무가 있어 수시로 신선한 과일을 따 먹는다. 106세라고 하기에는 너무 건강하다. 할아버지는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친절하고 다정다감하였다. 부인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가난하게 혼자 산다고 우울해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의 비결을 묻자, 텃밭을 일구며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찾아 간 곳은 중국의 바마 마을. 세계 5대 장수 마을 중 하나로 중국 남부의 난닝이라는 도시에서 300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 24만 명 중 100세 이상 노인이 86명이나 된다. 그중 최고령자는 110세 황부신 할아버지. 3층 정도의 계단을 올라가고서야 그의 집에 도달했다. 집은 낡았지만 풍경이 절경이다. 한 폭의 그림과 같은 나지막한 산이 바로 앞에 놓여있다. 그다지 높지도 울창하지도 않은 산. 산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 남쪽을 향하고 있어 따스한 기후. 장수하려면 매일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절경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앞을 바라보고 있으니 욕심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매일 3층 정도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온 동네를 돌아다니신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누워 있으면 일찍 죽는다”고 덧붙인다. 시종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아내와 다섯 명의 자녀는 모두 저세상으로 갔고 젊은 시절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된 아들을 돌보며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도 받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근심과 걱정을 다 떨쳐버리고 아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세 끼 밥을 해 주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것 같다. 인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 황 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커다란 선물이다.
프랑스 여성들의 평균 수명은 84세로 일본 여성의 85.6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 지금까지 공인된 세계 최장수 인물은 장 칼망이라는 프랑스 여성으로 122세까지 살았다. 프렌치패러독스. 프랑스 사람들이 육류 등 동물성 지방을 많이 섭취하는 데도 포도주를 많이 마셔 심장질환에 걸리는 사람이 적은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육류 위주의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100세 넘은 부부가 있다고 하여 그들이 살고 있는 엘리스라는 작은 마을을 찾았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양지바른 언덕 위에 있는 양로원이다. 노부부는 5년 전까지 20여 가구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 주택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이사했다.
아들과 딸이 시내에서 따로 살고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요즘에도 할머니와 함께 시내에 나가 슈퍼마켓에서 과일을 사 오기도 하고, 산책을 하고, 아침이면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가 신문을 가져온다. 고기를 좋아하는데도 어떻게 100세까지 건강하냐고 묻자 대답 대신 “와인 한 잔 마시자”며 냉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낸다. 적포도주가 몸에 좋다고 해서 매일 적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아니다. 5일에 한 병 정도를 마신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가족 모두가 장수하는 것으로 봐선 건강 비결이 유전적인 요인도 있지만 절제하는 노력 덕분으로 보인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와인을 적당하게 마시며, 쉬지 않고 운동한다는 점, 기억력을 유지하기 위한 글자 맞추기를 하는 등 쉬지 않는 노력이 돋보인다. 할아버지의 생활습관은 우리나라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음식이 거칠면 건강이 부드럽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 살다 보니 아껴 먹을 수밖에 없고 몸을 움직여 일을 해야만 먹을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 자신들이 재배한 곡물과 채소, 깊은 바다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자연 식품을 먹고 있다. 도정하지 않은 곡물, 과일과 채소 등 거친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식이섬유와 생리활성물질을 많이 섭취하고 있다.
그들의 삶을 살펴보면 배울 것이 많다. 그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나오는 음식을 먹고 있으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령임에도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적포도주가 몸에 좋다고 과음하지 않는다. 채식이 좋다고 야채와 과일만 먹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고기도 먹는다. 그러나 절대로 지나치게 먹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소박한 삶을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