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옥은 술집에 들러 고향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얼큰하
게 취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동안 낯이 익었다고 수영이가
상옥에게로 달려왔다.
"아빠! 어디 갔다 와?"
그러나 수영이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저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으련만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상옥은 못
본 척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슨 애 아범이 제 자식 귀한 줄을 모르누
어머니가 수영이를 안고 들어오며 하는 말이다
"아범, 수영이 한번 안아 보게. 애가 얼마나 실한지 이젠 내가
안아 주기엔 힘이 들어."
어머니는 상옥에게 수영이를 안겨 주었다. 상옥은 엉겁결에 수
영이를 받아 안았다 그래, 너야 무슨 죄가 있겠니? 모두가 어른
들의 이기심으로 이렇게 된 것을 어린 애들이 한없이 불쌍
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너의 친아버지는 과연 누구란 말이냐?
상옥이가 집에 돌아온 지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나갔다. 며칠 지
나면 진달래꽃이 활짝 펴 앞동산을 빨갛게 물들일 것이다 상옥은
하는 일 없이 집에만 눌러 있으니 괜한 공상만 떠오르고 짜증만
났다. 게다가 수영 엄마를 볼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틀렸다. 추잡
하고 더럽다. 이제 또 집을 나설 때가 되었나 보다. 그런데 이제
또 집을 나가겠다고 하면 어머니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말썽 없이 집을 떠날 수가 있을까? 이 궁리 저 궁리 하면서
신문을 뒤적이는데 선원 모집 광고가 눈에 뜨였다.
'그래, 이 추잡하고 더러운 육지를 떠나 버리자:
상옥은 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상옥은 다음날 새벽 어머니 앞으
로 한 통의 편지를 남기고 또다시 집을 나서고 말았다.
어머님 또 한 번의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불초 소자 끓어오르는 가슴을 억제할 수 없어
이렇게 또 떠납니다.
언젠가는 소자의 참마음을 아실 날이 있을 것입니다.
어머님 빠른 시일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소자의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다만 어머님의 건강하심만을 앙원합니다.
상옥은 이렇게 편지 한 장만을 써 놓고 새벽 바람에 또다시 정
처없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 버렸다. 인천에 도착한 상옥은 신문에
서 오려 온 전화번호로 소재를 확인하여 찾아가 보았다. 그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상옥도 그들 틈에
끼여 수속을 마치고 신체검사도 마쳤다. 합격자 발표는신원조회
가 끝나는 3일 후에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불합격되고 겨우 17명
만이 최종적으로 합격되었다. 운이 좋았는지 상옥도 그 17명 가
운데 끼여 있었다.
상옥이 승선할 배는 원양어선이었다. 인간 김상옥이 이젠 육지
를 떠나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의 방랑자가 되어 떠나 가고 있
었다. 상옥이 승선한 배는 힘찬 뱃고동 소리를 울리며 출항했다.
그로부터 1980년 5월 27일까지의 선상 생활에서 상옥은 너무도
많은 시련과 고통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환희와 감격의 눈물도 흘
렸다. 태산같이 밀려와 뱃전을 후려치는 악마와도 같은 폭풍우와
싸워야 했고 바다를 송두리째 뒤집어 버릴 것 같은 해일(海濫)이
몰려왔다가 순간적으로 잠잠해질 때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
다.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인하며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성스럽
고 위대한가도 뼈져리게 느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희비가 교차하
는 선상 생활이었다.
상옥은 4년여의 선상 생활을 마치고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고향
으로 돌아오면서 상옥은 많은 생각을 했다. 수영이와 수현이, 그
아이들이 누구의 씨앗이든 자신의 호적에 입적되어 있는 자신의
자식들이 아니겠는가. 이제 와서 시비를 가려 본들 무엇하겠는가.
자신이 덮어 두면 모두가 그만인 것을
사실을 밝혀 아픈 상처만
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냥 그대로 인정해 버리고 눈감아 주
리라 다짐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가닥의 희망
어머니는 상옥을 끌어안고 목놓아 대성통곡을 했다.
"이 사람아! 이게 몇 해 만인가? 어떻게 그렇게도 무심하였는가?
아범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어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네
어머니는 상옥의 머리를 쓰다듬어 보고 얼굴도 만져 보고 손목
도 잡아 보았다.
상옥의 귀향을 기뻐하는 어머니와 가족들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상옥은 그 순간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을 떠나지 않
으리라는 결심을 했다.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고
싶었다. 예측할 수 없었던 마음의 변화였다.
"어머님, 이제 안심하십시오. 모든 것을 잊고 돌아왔습니다. 이
제 다시는 어머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아범! 그 말이 진정인가? 믿어도 되는가?"
"예, 안심하십시오."
4년이라는 세월은 상옥의 집안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학교를 마치고 결혼하여 울산에 살고 있었고, 그
밑의 동생들도 차례로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있
었다. 저것들이 언제 자라 사람 구실을 할까 싶었는데 이제 모두
자라 오히려 상옥의 걱정을 해주는 것이 얼마나 대견한지 몰랐다.
수영이는 초등학교 3학년, 수현이는 1학년이 되어 있었다.
그날 밤 상옥은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와 마주 앉았다. 참으로
끈질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4년 전 집에 돌아와서 도 단 한
번의 잠자리도 없었는데 그 후 4년의 긴 세월마저도 견디어 준
여자였다.
솔직히 상옥은 아내 스스로 집을 나가 주길 바랐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녀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어머니 모시고 아이들 기르며 큰 말썽 없이 견디어 준 것이 다행
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니와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는 데도 꽤
나 바지런하였는지 어머니와 동생들은 아내를 좋아하고 있었다.
"나 없는 동안 어머님 잘 모셔 주고 동생들 잘 돌보아준 거 고
맙게 생각하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심하게 대한 것도 사
과하오. 이제는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
아내는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저 눈물
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기자 상옥의 머리는 또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상옥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니야, 이젠 그런 생각 안 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래, 이제 지난날은 모두 잊어 버리자.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것을 다짐했다. 그날부터 상옥의 가
정은 그런 대로 행복한 웃음을 되찾은 듯이 보였다.
상옥의 지난 10년의 세월은 배를 깎는 시련과 아픔의 세월이었
다 그러나 그 아픔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수빈의 소식을 아직
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을 말자 해도 자꾸만 고
개를 쳐드는 아이들의 핏줄에 대한 의문이 상옥의 숨을 막히게
하고 있었다.
조상을 속이고 남편과 동생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는 저 가증
스러운 여자와 한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소
름이 끼치는 것이었다. 그건 상옥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내면의 고
통이었다.
그러나 상옥은 그러한 마음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매
사에 더욱 열심히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기왕에 속아 주는 것 철
저하게 속아 주자는 심산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정을 붙이려 노력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차츰 아이들과 정이 들었다. 그런데 두 아이
의 노는 모습과 성격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수영이는 상옥의 어릴 적 성격을 닮은 것 같은데 수현이는 어
딘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아무튼 상옥은 기왕에 동생들이 서
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 수영이도 서울로 전학을 시켜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수영이만 옮겨 줄 수는 없으니 수현이
도 함께 보내기로 마음먹고 어머니와 의논을 했다.
"어머님께 의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뭔가? 또 집을 떠나겠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서울에 집을 한 채 마련하고 싶습니다"
'서울에 집을?"
"동생들이 통학하기에도 힘이 들고 수영이, 수현이도 서울 학교
로 보내고 싶습니다. "
"그래, 그런 거라면 생각 잘했네. 아범 뜻대로 하게나."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원, 고맙긴 뭐가 고마운가. 이 재산이 다 누구 것인가? 이제
집안 일 자네가 알아서 결정하게나. 난 이제 늙었어."
아닌게아니라 이제 상옥의 어머니도 많이 늙었다. 그토록 곱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저 깊은 주름살이 자신 때문에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니 상옥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상옥이 서울
에 집을 마련하겠다는 사실을 식구들에게 알리자 가족들 모두 좋
아했다. 특히 수영 엄마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그
녀의 기쁨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다.
서울에는 동생들과 아이들, 그리고 가정부 한 사람을 보내기로
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서울에 올라가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
겠다고 강하게 반발했으나 상옥은 한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상옥
이 아이들을 모두 서울로 보내기로 한 것은 가능한 한 그녀와 아
이들을 격리시켜 놓기 위한 속셈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음날 상옥은 집을 알아보기 위해 동생들과 함께 서울에 올라
갔다. 서울에 올라온 상옥은 이곳저곳으로 마땅한 집을 보러 다녔
다. 가능한 한 교통이 좋고 학교도 좋은 데로 고르려니 마음에 드
는 집이 흔치가 않았다. 하루 종일 복덕방을 전전해 보았지만 마
음에 드는 집이 없었다. 결국 그날은 마땅한 집을 찾지 못하고 하
룻밤을 서울에서 보내기로 했다. 시간도 이르고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 고교시절과 대학 때 절친했던 친구
에게 전화를 했다.
10월 중순의 쌀쌀한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상옥은 무교동 뒷골
목에 있는 송죽이라는 요정으로 향하고 있었다. 송죽에서 대학 친
구 종화를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상옥과 종화의 만남은 거의 7 8년 만이었다. 그들은 시간 가
는 줄도 모르고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며 모처럼만에 즐거운
밤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엔 웬일이냐?"
"네놈도 보고 싶고, 서울에 집 한 칸 마련하려고 왔다. "
"집은 왜?"
"동생들 통학하기도 불편하고 우리 애들 서울로 전학시키려고."
'그래? 그런데 내 생각에는 조금 더 있다가 집을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요즘 정국이 심상치 않거든 요즘 서울은 어쩐지 무시무
시해 ."
"그래?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어서 국내 사정을 잘 모르
고 있었는데 그렇게 심각해? 칼날 같은 검사께서도 무서운 게 있
냐? 아무튼 그건 내가 잘 생각해서 할 일이고. 오늘은 그냥 마시
고 취해 보자 나도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구."
두 사람은 얼큰히 술에 취했다.
"야! 임마, 김상옥! 너야말로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친구야. 집
나간 마누라 찾는다는 구실 하나로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나
몰라라 하고 네 하고픈 것 다하고 다니는 팔자 좋은 놈 아니니?
살롱마담 기둥서방에다 고물장수, 돌팔이 약장사로 주유천하(周遊
天下) 하더니, 이제는 한술 더 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는 원양어
선 어부라. 그거 정말 멋있다 이놈아! "
남 속타는 줄도 모르고 종화가 떠들어대었다. 술자리는 자정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자기 집에 가 한잔 더 하자는 종화를 간신히
택시에 태워 보내고 상옥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터덜터덜 종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뱃속까지 시원하게 했다
걷다가 걷는 게 싫어지면 아무 여관에나 들어가 하룻밤 묵으리라
생각했다.
상옥은 종묘 앞에 와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 여관이 이렇게 귀한가 싶어 상옥은 정신을 차리
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관을 찾아보았다. 취한 눈에 흐릿하게
보이는 아크릴 간판이 보였다
'야화장 여관
'야화장? 야화? 야화의 오선영?'
문득 부산 룸살롱 야화의 주인 오선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옥
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다. '야화
장 여관'이 분명하였다. 상옥은 10년이 훨씬 넘은 오선영과의 옛
추억을 회상하며 여관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 하나 주시오."
"어서 오세요. 술이 많이 취하셨네요."
상옥은 제대로 몸을 가눌 수 없어 벽에 몸을 기댄 채 '방 하나
주시오' 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상옥은 안내하는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섰다.
'손님, 여기 숙박계 써 주시고 요금은 선불입니다. "
상옥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숙박계 써 달라는 여자의 목
소리가 처음 듣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아, 저 목소리
는 부산의 오선영 목소리가 분명하였다. 상옥은 정신이 번쩍 들었
다. 눈을크게 뜨고 숙박계를 들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바
라보았다.
"아니! 이 아저씨가 왜 이래?"
상옥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겁을 먹은 여자가 한 걸음 뒤로 물
러서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그 여자도 뭔가 이상했는지 물러서
던 걸음을 멈추고 상옥을 빤히 쳐다보았다. 순간, 그 여자의 눈빛
이 빛났다
"어머! 어머! 상옥이! 그래! 김상옥 아냐? 맞지, 김상옥?"
틀림없는 야화의 오선영이었고 틀림없는 김상옥이었다. 두 사람
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싸안았다. 세상 참 넓고도 좁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야?"
"누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서울에
선영은 눈물을 흘리며 상옥의 가슴을 쳤다.
상옥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반가움의 눈물이었다. 그
들은 한동안 아무 말토 하지 못한 채 그렇게 포옹하고 있었다
"누님 ! 얼굴 한번 봅시다. "
10년이 훨씬 넘었는데도 예쁘고 요염한 자태는 그대로였다. 옛
날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살이 좀
쪘다는 것 정도일까?
"저는 이렇게 많이 늙었는데, 누님은 옛날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결혼은 하셨습니까?"
선영은 상옥의 눈길을 피하며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결혼? 상옥이가 나 결혼하게 했어?"
"왜요? 제가 누님 결혼 못 하게 했어요?"
'못 하게 한 거나 마찬가지였지."
'우리가 헤어질 때 내가뭐라 했지? 상옥은 기억이나 해?"
'기억하지요. 수빈이를 찾거든 꼭 알려 달라고 말했지요"
'그래서 그렇게 감감 무소식이었어?"
'갈 수가없었지요. 아직도 수빈이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 바로 그거였었지! 난 그때 상옥이가 수빈 씨를 찾지 못하
면 틀림없이 나에게로 돌아오리라 믿었지. 그래서 1년, 2년 상옥
을 기다린 게 4년이 넝었어
"야화도 집어치우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상옥이가 돌아오면 어쩌
나 싶어서 그냥 두고 동래 오두막집도 그대로 두었어. 집으로 찾
아왔다가 헛걸음이라도 할까 봐서."
"기다림의 세월이 너무 길어지니까 이젠 아니구나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는데도 편지 한 장 없는 거로 보
아 벌써 수빈 씨를 찾아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하는 마음이 들더군
그래서 상옥을 단념하기로 했지. 그러다 보니 내 나이 서른
여덟에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애가 둘이나 딸린 사람과 결혼이
란 걸 하게 된 거야. 그런데 그것도 복이라고 3년 전에 교통사고
로 그 사람은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어. 사람은 참 좋았는데. 따
뜻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어. 그렇게 되니까 부산이 싫어지더라
구. 그래서 모든 걸 정리하고 작년에 서울로 올라와 이 여관을 시
작한 거야. 그런데 여기서 상옥이를 만나게 되다니 마치 꿈
을 꾸고 있는 것 같아
"누님 팔자나 내 팔자나 똑같이 기구하네요. 아무튼 본의
는 아니었지만 미안합니다. 저는 누님이 그렇게까지 저를 생각하
고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세월이 가면 모두 잊혀지겠지 생
각했는데 저로 인해 누님의 가슴이 그토록 아팠다니 정말 미안합
니다. 용서하십시오."
선영은 상옥의 가슴에 안긴 채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누님,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것은 하늘이 맺어 준 인
연인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지난날을 사죄하는 마음으로 누님을
도와 드리겠습니다. "
상옥이, 부담 가질 거 없어. 내가 기다리고 싶어 기다린
것 뿐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내가 있는 곳을 알았으니 가끔씩 들
러서 말 상대라도 해줘.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
그녀는 다시 10년 전의 선영으로 돌아가 상옥의 가슴으로 세차
게 밀고 들어왔다.
"상옥은 모를 거야! 내가 상옥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얼
마나 사랑했는지 그 긴 세월 하루도 상옥을 잊어본 날이 없
었다는 걸 알기나 해?"
"상옥이! 믿기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상옥이가 첫사랑이었고 첫
남자였어 ! 상옥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지?"
상옥으로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때 선영은 자신의 입으로 서른둘이라 했다 그런데 서른둘이 되
도록 사랑 한번 해보지 않은 처녀의 몸이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
았던 것이다. 선영의 그 말이 진심이라면 상옥은 너무 무책임했던
것이 된다
"누님, 그게 정말이었습니까?"
'믿어 달라고는 하지 않겠어. 하지만 사실이야."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원했다. 10년 전의 상옥
과 선영이 되어 몸과 마음을 깊숙이 섞었다. 상옥은 10년 만의 재
회의 감격에 격렬한 정사를 끝내고 나른한 몸으로 일어나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상옥의 머릿속에서 지난 10여 년간의 추억들
이 영상이 되어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힘겨운 세월이었다
'상옥이, 수빈 씨 소식을 전혀 알지 못해?"
네!"
그때 조금만 더 부산에 있었더라면 찾을 수도 있었는
데
"왜요?'
"그러니까 상옥이 부산을 떠난 지 한 2년쯤 되었을 거야, 어느
날 야화에서 애들이 전화를 하는데 전화 내용에 상옥이 이름이
오르내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전화를 받았는데 어떤 여자가 상옥
을 찾더라구."
상옥은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을 치켜떴다. 숨이 꽉 막히는 것 같
았다.
' 그래서요?"
"왜 그러느냐 하니까, 나는 기억이 없는데 그 여자는 야화에 있
었던 미스 민이라면서 상옥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그러지 않겠
어?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했지. 상옥이가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
으니까 알 수가 없었잖아."
'그래서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짚이는 게 있더라고. 그래서 무슨 일이냐
고 물으니까 수빈 씨가 있는 곳을 알았는데 알려 줄 길이 없느냐
는 거야,"
'그래서요?"
"그래서 상옥이한테서 연락 오면 가르쳐 줄 테니 수빈 씨 주소
를 알려 달라니까, 수빈 씨가 경남 울산에 있는 방어진이라는 항
구에서 무슨 경양식집을 하고 있다는 거야."
"울산에서 경양식집을 상호가 뭐였는데요?"
"글쎄, 그게 말이야. 그 여자가 상호와 전화번호를 말해 주어서
메모를 해 두었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고 내가 서울로 이사를 하
는 바람에 지금은 울산 방어진이라는 것밖에는 기억할 수가 없
어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야? 그 후로 상옥이가 나한테 편지 한 장이
라도 했어?"
'그 후론 연락이 없었습니까?"
"그 후로 2 3번 전화가 왔었지만 상옥에게 알려 줄 수가 없었
어 ."
"내가 부산을 떠난 지 2년 후면 벌써 10년이 넘었군요."
"그렇게 되었지 아마
상옥의 가슴은 답답했다. 차라리 듣지 않은 것만 못했다 그러
나 마음이 바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울산 방어
진이라는 곳을 찾아가 보면 혹시 무슨 실마리가 잡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옥은 돌팔이 약장사를 따라다닐 때 울산 방어진
근처에 있는 일산 해수욕장에서 며칠 묵었던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울산에는 상옥의 매제가 살고 있었다.
첫댓글 보고 갑니다.........
또다시 방황을 해서는 안되는데.............
잘보고갑니다.
역마살이 낀 남자네요.
수영이 엄마가 참 불상한 여자 로군요.
잘보고갑니다
즐독하고갑니다~~~
즐감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