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딸은 대학생이 되고도 아침에 알람보다는 아빠가 깨워주길 바란다. 내가 깨우면 이마나 볼에 꼭 뽀뽀를 해주는데도 그게 아직도 안 싫은가보다. 어느 날 문득 어릴 적부터 딸에게 해준 뽀뽀가 무수히 많구나 느꼈다. 눈에 안 보여서 못 느낄 뿐 자녀를 향한 주님의 굿모닝 뽀뽀도 그 못지않을 듯싶다.
2 사람마다 타고난 알량한 자존심은 거의 최상급의 육신적 본성이어서 한꺼번에 못 내려놓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뢰는 오랜 기도에 기도가 더해져서 겨우 한 꺼풀씩 벗겨진다. 그 자존심을 조금씩 벗고 나면 이전에 안 보이던 신음하는 세상이 보이고, 주의 손길을 내가 힘써 막고 있었던 것도 보인다.
3 주위 사람들이 행한 어떤 일에 대해 칭찬해줄 때 괜히 부풀려서 막연하게 과한 칭찬을 해주는 건 별로 덕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격려받을 만한지를 나만의 시각과 느낌을 살려 전하면서 칭찬해야 격이 맞다. 칭찬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니고 그 나름의 정성이 필요하다.
4 "지금은 쉽게 믿고 쉽게 신앙생활하려는 분위기가 많다." 한 선교사님의 평가가 내가 그동안 목회 현장에서 실감해오던 것과 비슷해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시대정신에 목회자들이 영합해선 안 된다. 넓은 길이 지금은 당장 좋아보여도 결국 빨리 거칠수록 좋은 길을 내내 미뤄둘 뿐이다.
5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목회자나 교회에 주로 의존하면 그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 교회나 목회자는 각 성도가 누려야 할 그 관계가 더 풍성하고 온전해지도록 돕는 통로인데 그것이 신앙의 목적인 양 주객전도되는 경우다. 교인 서로 간의 공동체적 교제도 이 관계에 주된 초점을 두어야 건강해진다.
6 어느 교회를 다니고 어떤 목회를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교회에서 각 목회자나 성도가 정말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져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데도 그 교회에 매여 있다면 그것은 신앙이나 하나님 나라보다 특정 교회나 목회를 우선하는 또 다른 우상 숭배요 자아 숭배다.
7 변증전도연구소 사역과 함께 목회의 길도 열어주셔서 나중에는 하나님께 하나의 길만 달라고 간구했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주님은 두 길이 다 나의 소명이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두 길이 양분되진 않았다. 무엇을 하든 한 길에서 양쪽 다 100퍼센트의 정성을 들여 한 주님을 섬기게 하셨다.
8 에너지 총량 불변의 법칙에 따라 내가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은 전적으로 목회만 하는 목회자에게서 받는 목양보다 덜 누릴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희생이 주의 나라를 위한 또 다른 헌신인 걸 깨닫게 된 성도들은 기도와 섬김으로 변증전도의 일을 나와 함께 감당하며 함께 받을 더 큰 상을 기대한다.
9 돌아보면 교회 개척의 과정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외적 환경보다 내적으로 나를 부인해야 하는 부단한 깎임이 더 시리도록 아팠다. 나의 교만과 자존심의 실체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고꾸라졌다. 그러나 주의 손길로 친히 나를 빚어주신 이 과정이야말로 내 목회의 가장 큰 성공이었다.
10 라비 재커라이어스의 내한 강연회에 갔다가 사전에 질문을 제출한 이들이 2630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이제 더 이상 경직된 전통이나 교리로만 눌러둘 수 없는 참해답에 대한 갈망이 피부로 느껴졌다. 변증목회가 필요해진 때다.
11 "종교들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피상적으로는 같아보인다."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내한 강연에서 인상깊게 전해준 말이다. 각 종교는 선하게 살자는 정도만 비슷할 뿐 구원의 내용과 방법에서 다 다르다. 종교들은 실상을 제대로 모를 때만 고상하게 비슷해보인다.
12 교회에서 변증적인 강해설교를 전한다. 본문 중심으로 신자가 신앙생활에 대해, 비신자가 기독교에 대해 던지는 질문들에 답하려 한다. 흥미롭게도 비신자들의 질문을 신자들도 동일하게 갖고 있다. 그 질문들 또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에 신선한 자극이 된다.
13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면서도 변증적인 설교를 할 수 있다. 말씀의 해석과 적용을 유추해낼 때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변증적인 방향을 택하면 된다. 일반적인 강해설교보다 변증적인 강해설교는 그래서 개개인의 삶에 더 절박하게 다가가기에 좋다.
14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에 세상이 다 들어 있다. 세상의 소식들, 내가 아는 사람들, 갖가지 일들이 거기서 저마다 내게 말을 걸어오고 활동을 요구한다. 세상과 소통하는 데 이만큼 생산적인 도구가 없다. 그러나 세상에 중독시키는 데도 이만 한 권력이 없다.
15 "거짓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마 24:11). 이단에만 거짓선지자가 있는 게 아니라 정통에도 많다. 그들은 심판을 경고하지 않고 세상에서 잘 될 거라며 안심시킨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괜히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들로 낙인찍힌다.
16 말세에 가장 두려운 일은 거짓선지자를 따르는 이들이 많다는 건데 그 추종자들이 이단에만 있지 않다. 참된 구원의 도를 모른 채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만 하면 구원받는 줄 아는 이들도 적지 않다. 때로 지극히 정통적으로 보이는 것들에 거짓의 함정이 많다.
17 "하나님, 전 하나님이 너무 좋아요. 왜 이렇게 좋죠?" 누군가가 이런 기도를 들으면 오그라들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기도를 드릴 때가 좋다. 그럴 때마다 내 몸과 마음 전부를 더더욱 깨끗하게 고이 싸서 주께 올려드리고 싶다. 사랑하면 거룩해진다.
18 "전 주님밖에 없어요. 제게 있는 것 다 주님께 드리고 싶은데 제가 가진 것이 없네요." 기도의 언어로는 이런 말도 통한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있어서다. 하나님은 이런 말을 듣고 "야, 말이 안 된다" 하시지 않고 가만히 들어주신다.
19 신문을 보다가 기도제목을 발견하면 스크랩해 골방에 두고 기도한다는 분이 있다. 세인들이 세태를 비판만 할 때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골방으로 가져가는 사람이다. 무엇을 놓고 기도하느냐를 내가 제한하지 않으면 골방의 열매가 열방과 사회 곳곳에서 맺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