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중지시켜놓았던 휴대폰도
의료보험도 다시 복구하고 병원갈 준비를 마쳤습니다.
오랜만에 형제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모두들 세월을 마주한 흔적들이 얼굴에 담겨있지만
고장이 자주나는 낡은 기계처럼
아픈다리, 허리를 주무르시는 엄마 아버지의 얼굴은
더 깊은 주름이 확연합니다.
그래도 함께 모이니 고맙고 고마운 자리입니다.
밤낮이 뒤바뀌니 일찍 누워도 금새 눈이 떠집니다.
내일은 주교님께 귀국인사를 드리고
한국에서의 삶을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23,12)
* *
오늘 저 나직한 지붕 아래서
코와 눈매가 닮은 식구들이 모여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얼마나 따뜻한가
늘 만져서 반짝이는 찻잔, 잘 닦은 마룻바닥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소리 내는 창문 안에서
이제 스무 해를 함께 산 부부가 식탁에 앉아
안나 카레리나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누가 긴 휘파람으로 불어왔는지, 커튼 안까지 달려온 별빛으로
이마까지 덮은 아들의 머리카락 수를 헬 수 있는
밤은 얼마나 아늑한가
시금치와 배추 반 단의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의 전화번호를
마음으로 외는 시간이란 얼마나 넉넉한가
흙이 묻어도 정겨운, 함께 놓이면 그것이 곧 가족이고 식구인
네 켤레의 신발
- 네 켤레의 신발 / 이기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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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