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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금융기관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짓는데 자금을 제공한다면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은 금융기관일까, 석탄화력발전소일까. 누가 정범이고 누가 공범인지, 아니면 둘이 공동정범을 형성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둘이 만나야 온실가스 배출은 현실이 된다는 사실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온실가스 배출의 출구라면 금융기관은 그 입구에 해당한다.
금융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엔진이라면 온실가스 배출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금융은 에너지원을 선정함에 있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함으로써 에너지 전환의 성패를 결정한다. “(화석연료) 투자를 멈추지 않으면 기후변화도 멈추지 않는다”(윤세중, 2023)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금융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많은 기후활동가가 자본주의와 거리를 두는 이념적 기반을 가진 탓인지도 모른다.
기후금융이란 기후변화의 원인인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기후변화의 영향에 적응하기 위해 동원된 금융을 말한다. 그것은 화석연료산업이나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파괴하는 사업에서 철수하는 금융을 포함한다. 특히 기후위기 해결에 역행하는 화석연료 투자는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물리적 리스크(자연재난)와 전환 리스크, 그리고 재무적 리스크를 동반하는 위험투자로 분류된다.
화석연료 투자와 관련하여 주목을 받는 것은 공적 금융이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부의 의지가 직접 표출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겠다는 ‘글래스고 기후협약’(Glasgow Climate Pact)을 채택한 것도 이같은 사정을 반영한다. 한국 정부는 서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대한 공적 금융의 투자 실태는 어떨까.
결코 자랑스럽지 않은 ‘오늘의 화석상’
지난해 12월 6일, 아랍 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에서 한국은 ‘오늘의 화석상’(Fossil of the Day Awards)을 받았다. 기후단체의 국제 연대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International)가 제정한 이 상은 “국제사회에서 기후협상의 진전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 나라”에 수여한다.
한국이 수상한 이유의 하나는 한국의 SK E&S가 오스트레일리아 바로사 가스전에 참여하여 탄소를 내뿜고 원주민의 권리를 침해하러 든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호주 북부 해안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탄소 폭탄을 터뜨리려 하고 있다”. 언뜻 보면 규제받지 않은 민간 재벌이 해외에서 지구 온난화를 부추기고 현지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양새로 보인다.
실상은 다르다. 공적 금융이 민간자본의 뒷배 노릇을 하면서 화석연료 투자를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사 가스전에는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가 약 9400억 원(6억 6천만 달러)을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이 가스 사업을 수행하려면 연간 543만 톤에 이르는 온실가스 배출을 차단하거나 상쇄해야 하며 그 비용만도 연간 2억 달러(최대 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한겨레신문, 2023.4.20.). 공적 금융이 좌초자산에 투자해 국민의 돈을 위험에 빠뜨리는 꼴이 날 수도 있다.
공적 금융이 민간자본을 앞세워 해외 화석연료 사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수출입은행과 중부발전은 인도네시아의 찌레본 석탄화력발전소(두산중공업, 햔대건설)에 투자하고 있다. 공기업이 대놓고 진출하기도 한다. 한전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와 9,10호기를, 그리고 베트남에서 붕앙2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다. 다들 KDI의 수익성 평가에서 마이너스로 평가된 사업들이다. 지난해 11월 미국의 기후환경단체인 오일체인지 인터내셔날(OCI)에 따르면 한국은 G20국가 가운데 일본 다음으로 많은 공적 금융을 해외 화석연료산업에 투자하고 있는 나라다. 2019~2021년 사이에는 약 8조 3820억 원을 투자했다.
그럼 국내에서는 어떨까? 우리나라는 석탄화력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있는 만큼 최소한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공적 금융투자는 중단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삼척에서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블루파워가 대표적이다.
삼척 블루파워는 포스코인터내셔널(29%), 포스코이앤씨(5%) 등을 주요 주주로 두고 있다. 하지만 54.53%의 지분은 KIAMCO 파워에너지 3호 펀드라는 인프라 펀드가 보유하고 있다. 이 펀드는 산업은행과 국민연금공단 등이 주도하며 정책금융공사와 우정사업본부도 참가하고 있다. 해외 화석연료 사업이 그렇듯이 국내 화석연료 사업 역시 공적 금융이 뒷받침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민연금은 2021년 5월, “탄소중립 사회 전환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라며 탈석탄 선언과 함께 석탄 채굴과 발전 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바뀐 것은 없었다. 석탄투자 제한기준을 정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투자 대상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주주활동도 미적거렸다. 그러는 새 국민연금의 석탄 관련 투자는 2021년의 12조 6500억 원에서 2023년에는 13조 원으로 늘었다(2023년 국정감사).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2023년 6월 기준으로 금융기관의 화석연료금융 자산은 118조 5000억 원. 이 가운데 공적 금융이 보유한 자산은 61조 8000억 원으로 60.8%에 이른다(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2023). 이처럼 국내의 화석연료 투자는 공적 금융이 주도하고 있으며 해외 화석연료 개발에도 공적 금융은 민간자본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10월, ‘신규 해외 석탄발전 공적 금융지원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해외 석탄발전 사업과 설비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공적 개발원조·수출금융·투자 등)을 중단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행을 위한 후속조치는 따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공적 금융의 역할은 그냥 눈앞의 이윤을 좇아 흘러갈 뿐이다. 당사국총회(COP28)에서 기후변화로 피해를 본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조성키로 한 ‘손실과 피해 기금’도 내지 않고 있다.
기후환경에 관한 한 지구는 하나의 세계다.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로컬하게 행동하자”(Think globally, Act locally)라는 말이 있다. 각자가 처한 공동체나 도시에서 지구의 건강을 생각하며 행동을 취하라는 말이다. 『생태의 시대』라는 책에서 라트카우(2023)는 이 말을 두고 “세계적으로 행동하는 양 꾸미며 그저 자국의 국익만 노리는 자세로 생각도 행동도 무시한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묻는다. 한국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다른 나라한테 떠맡기고 우리는 탄소를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배출하겠다는 글로벌 무임승차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이를 용인할까. 전환이 지연될수록 기후재난은 심해지고 전환에 필요한 자금은 늘어날 것이다. 세계적으로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온실가스에 대한 규제는 강해지고 있다. 기후재난이 한반도를 피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나 자동차, 철강과 같은 주력 수출상품들이 RE100이나 탄소국경조정세의 벽을 통과할 수 있을지,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요구하는 각종 정보 공시기준을 지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앞으로 10년간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겪을 세상도 달라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제6차 평가보고서의 핵심메시지다. 단기적 정책 대응의 시급성을 말하는 지점이다. 그 출발점의 하나가 금융, 특히 공적 금융의 역할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출처 : 나라 안팎 탄소 배출에 진심인 한국의 공적 금융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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