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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이야기◈ 스크랩 사진여행 [양주/장흥] 도봉산 관음봉 중턱, 다시 가고픈 암자, 오봉산 석굴암
길손旅客 추천 3 조회 560 13.09.26 05:45 댓글 8
게시글 본문내용

숨은 보석, 우이령 길 위에 자리한 이상향,

오봉산 석굴암(五峰山 石窟庵)’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교현리 산1 / 종무소 031-826-3573

 

군사보호구역,

41년만에 풀리고 나니

이제는 우이령길 보호구역으로,

석굴암은 여전히 찾기 어려운 절집입니다.

그만큼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의 풍경이 있습니다.

그 품에 소박하게 앉은 절집, 석굴암입니다.

    

 석굴암과 오봉

 

 

양주 장흥,

조선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원래의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땅입니다.

장흥(長興)’ 오래도록 길이 흥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지명은 대부분 정치적인 색을 가지고 있지요. 전남 장흥의 경우는 고려17대 인종의 비 공예태후 임씨(恭睿太后 任氏, 1109~1183)’의 고향이기에 장흥으로 고쳐 부른 것과 같은 이치겠습니다.

양주 장흥땅에는 7일만에 폐출 된 비운의 왕비로 조선11대왕 중종의 정비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 1487~1557)’의 고향이자, 그녀가 잠든 온릉(溫陵)’이 있는 땅이며, 영의정이었던 신씨의 아버지 신수근( 所閒堂 愼守勤, 1450~1506)’을 몰아내고 중종반정에 앞장 서고 자신이 영의정에 올랐던 인재 성희안(仁齎 成希顔, 1461~1513)’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정치적인 색이 짙은 이름입니다. 그러한 모습은 지금도 이어져 석굴암을 찾아가는 길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석굴암 가는길,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울창한 수림이 가득합니다. 멀리 오봉이 보입니다.

 

 

도봉산 오봉자락 관음봉 중턱에 자리한 절집, 석굴암입니다.

절집의 연혁은 신라 문무왕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고찰이지만, 한국전쟁으로 모두 소실 되었으나 초안스님의 불사로 석굴암이 복원 되었지요. 그러나 1968년 김신조 무장간첩 침투조의 루트로 알려지면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 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였고, 41년 만에 개방을 하기에 이릅니다. 더하여 현재는 우이령길탐방로가 개통이 되어 많은 분들이 숨겨두었던 북한산의 속살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석굴암 '일주문(一柱門)'

 

 

그러나, 41년 만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것 같은 절집은 다시 입구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자연보호를 들어 절집으로 향하는 차량을 저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신도증이 있으면 들어설 수 있으나 그마저도 없는 일반인들은 4km, 꼬박 40분 이상을 걸어야 합니다. 결국 사전 정보 없이 석굴암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돌아 설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석굴암에 연락하여 차량운행을 부탁한다거나, 절집 가는 차량을 만나 동승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이 있다면 우이령길에 포장도로를 하려 했다는 것을 막은 것입니다. 불교계와 환경단체들이 서울의 DMZ이자 자연계의 국보와 같은 곳에 서명 및 반대운동을 벌여 아스팔트 포장은 현재 유보중입니다.

결국 우이령 탐방로는 개통이 되었으나, 여전히 석굴암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북한산의 능선에 숨은 천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습니다.

 

    

 석굴암 윤장대(輪藏臺)’

201110월에 오봉 도일스님이 조성 한 것입니다.

윤장대는 절집에서 경전을 놓은 공간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불경입니다.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합니다. 수레바퀴가 때와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굴러가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느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자리에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석굴암 가는 길은,

39번 국도상의 고현 우이령길 입구’, ‘오봉산 휴게소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휴게소에서 약 500m를 오르면 탐방지원센터를 만나게 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자리에는 군부대의 초소가 있었던 곳으로 신분증 확인 등의 엄격한 검사가 이루어지는 곳이었으나 군 초소는 지원센터의 뒤 100m지점으로 이동하여 자리합니다. 현재는 탐방지원센터에서 신도증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량의 통행이 허락 됩니다. 그리고 4km를 거슬러 오릅니다.

일반인들의 발길이 없던 쳔혜의 자연을 그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걷는 길은 넓어 편안합니다. 의외로 궁금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사람이 드나들 수 없었다면서 비록 비포장 길이라 하지만 꽤 넓은 길이 존재하는 이유는 일대가 모두 군사훈련지역으로 유격장입니다. 군 차량의 통행과 군사훈련의 목적으로 만들어져 다져진 길입니다. 실제 절집을 오르는 동안 유격훈련장체력단련장을 만나게 됩니다.

초소를 지나고 넓은 공터의 군사차량 회차 지점을 지나고 우측으로 급격히 꺾여 오르는 경사를 올라 숨 가쁘게 10여분 오르고 나면 절집의 주차장입니다.

 

    

 석굴암 풍경

 

 

석굴암의 창건은 정확한 기록이 없어 전해지지 않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로, ‘양주군청 역사탐방 자료집에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 또는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합니다. 고려시대에는 나옹화상이 왕사로 3년간 수행하였다고도 전해지는 곳입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기록이 전해지는데,

세종25(1443), 무학대사의 제자 설암 관익대사가 중수하면서 석굴에 지장보살과 나한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 후 단종3(1455)에는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위임하였을 때 단종을 위한 원당으로 삼아 3년간 천일기도를 드리고 거금을 시주하는등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1440~1521)’의 원찰이 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계속하여 중수를 거듭하다가 1920년대 계월스님이 주지로 계시면서 동암선사와 함께 도반 정진하였고, 백범김구선생을 도와 석굴암에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석굴암은 폐허가 되어 옛 모습을 잃었습니다.

 

 

석굴암 대웅전(大雄殿)’

정면 3,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5년에 초안스님이 중수한 건물입니다.

석굴암의 주 법당으로 장방형의 화강암을 바른층쌓기한 높은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 건물 외부는 전면에 2분합의 꽃살창호를 두고 삼면을 내벽으로 마감한 모습으로 내벽에는 관음보살도와 문수동자상이 단청되어 있으며, 어칸에는 1970년 우봉(又峰)스님이 쓴 대웅전 편액과 주련4기가 걸려 있습니다.

건물 내부는 불단 위로 도일스님이 조성한 목조석가여래좌상과 관음, 지장보살이 삼존상을 이루고 있으며, 영단에 조선후기 설암당 관익스님이 조성한 석조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불화로는 1998년에 회주 초안, 주지 도일, 그리고 금어 박갑철(朴甲鐵)이 조성한 석가모니후불탱과 1991년에 금어 김용희(金容熙)가 조성한 신중탱이 있습니다. 이외 불구로는 높이 100, 구경 56의 범종이 있으며, 어칸 평방에 '오봉산석굴암대웅전중건기(1975)', '오봉산석굴암석굴중수기(1964)', '오봉산석굴암축대공사(1971)'의 현판 3기가 걸렸습니다.

 

 

 

1953515, 초안(超安)’스님이 은사인 동암선사의 원력을 이어 복원불사를 시작합니다.

법당은 완전히 타버렸고, 석굴에는 불상들과 목판들이 뒹굴고 있었습니다. 이에 초안스님은 경내에 임시로 초막을 짓고 불상을 수습하면서 기슭일대의 전사자들을 수습하여 화장해 주었습니다. 이듬해부터는 스님의 모친 조삼매심보살일광심보살이 불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았지요. 산 중턱의 위치에 있어 나무 한 사이, 기와 한 장들을 일일이 십리를 걸어 날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불사는 신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1954년에 석굴을 중수하였고, 1957년에는 대웅전, 삼성각을 신축하면서 전기시설 진입로 확장보수등의 불사를 이룩하게 됩니다.

 

석굴암 범종각(梵鐘閣)’

나한전 우측에 자리한 정면1, 측면1칸의 사모지붕건물입니다. 초안스님이 1980년대 신축한 것으로, 원형초석 위로 굵은 두리기둥을 세워 평방 위로 다포를 얹은 모습으로, 어칸에 우봉스님이 쓴 편액과 주련 5기가 걸려 있습니다. 또 사면은 벽체가 개방된 모습으로, 외면에 창살이 둘러져 있으며, 건물 내부에는 1984년에 조성된 높이 200, 구경 128의 대형범종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그러던 1998년 초안스님이 입적하면서 지금의 오봉도일(五峰度一)’스님이 은사의 법맥과 유업을 이어가고자 두문불출하여 제2중창 불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로서 중부지방 제일의 나한기도도량을 위한 불사로 지금의 모습을 이루었으며, 앞으로도 불사는 물론이고 복지사업의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2007년부터 10월이면 석굴암 단풍 음악제를 개최하면서 이웃돕기 쌀 바자회등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석굴암 나한전(羅漢殿)’

석굴암이 나한기도도량으로 기반을 마련한 곳으로, 1964년에 중창주인 초안스님이 중수한 것으로, 1960년대에는 이 석굴에 초안스님과 모친 조삼매심보살 등 3명이 들어서면 공간이 없을 정도로 작은 석굴이었지만 도일스님이 다시 중수하여 넓은 공간이 되었습니다.

    

 초안스님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에는 석굴 내부에 나반존자와 지장보살, 그리고 수구성취다라니경(隨求成就陀羅尼經)목판이 있었으나, 지장보살은 삼성각으로, 여래좌상은 대웅전으로 이안되어, 현재는 나한전에는 나반존자상과 자그마한 석조나한상 4구가 나반존자 주위를 협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석조나한상은 앉은키 60, 무릅폭 40의 소형불상으로 설암당 관익스님이 18세기 경기도 지역에서 활동한 한봉당(漢峰堂) 창엽(?曄)과 금곡당(金谷堂) 영환(永煥)스님을 모셔 조성한 것입니다.

 

 

 

석굴암은 숨은 보석과도 같은 풍경입니다.

다섯의 오봉이 절집의 뒤로 우뚝 솟아있는 절집은 오봉산을 남산으로 하여 골짜기에 처를 마련하여 지어진 작은 암자입니다. 산지가람의 형태로 높은 축대를 쌓아 대중방과 공양간이 자리하고 돌아 오르면 윤장대,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절집의 경내입니다. 대웅전이 서고 종무소인법당이 섭니다. 인법당 앞 좁은 길을 지나 산길을 따라 오르면 근래에 공개 된 마애약사여래불(磨崖藥師如來佛)’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종무소의 위로 범종각이 그 앞터에 석굴전 나한전입니다. 나한전과 범종각 사이의 급한 계단의 위로 삼층석탑삼성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굴암 삼성각(三聖閣)’

석굴암에서 가장 놓은 곳에 자리한 정면 3, 측면 1칸의 팔작건물로, 북한산 능선을 바라보며 서향하고 있습니다.

자연암반을 기단 삼아 원형초석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 전면에 1, 4분합의 띠살문을 단장하고, 삼면에 비천상을 단청하였으며, 건물 내부는 후벽에 맞닿은 불단 위로 설암당 관익스님이 조성한 석조지장보살좌상을 봉안하였고, 1985년 주지 도일승님이 조성한 후불탱으로, 중앙에 약사, 그리고 칠성, 산신탱을 모셨습니다.

 

 

마치 경사 급한 산골마을처럼 자리한 가람들입니다.

급한 경사 그대로의 터에 전각을 세워 고양땅과 장흥땅을 바라보고 서향하여 서있습니다. 과거에는 나한전 석굴과 인법당만이 있던 작은 암자였으나 이제는 어엿한 가람을 가진 절집이 되어 있습니다

 

    

삼성각에서 바라본 풍경

 

석굴암은 나한(羅漢)을 대상으로 합니다.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수행의 적인 모든 번뇌에게 항복을 받아 없앤다.’살적(殺賊)’, 모든 번뇌를 끓고 도덕을 갖추었기에 공양을 받을 만하다.’라는 뜻의 응공(應供)’, 진리에 상응하여 변하지 않는다.’라는 뜻의 응진(應眞)’이라고도 합니다.

영험함이 뛰어나다고 하는 석굴암 나한기도도량은 지극정성으로 기도 정진하면 빠른 시간에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반면 계율을 어기거나 몸가짐이 부정하여 소홀히 하면 엄한 과보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느 절집이든 그러한 영험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봉산 석굴암은 꼭 불자가 아니더라도 전각을 바라보는 풍경, 전각이 들어 선 자리, 전각에서 바라보이는 풍경만으로도 무엇인가 이룰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공간입니다.

나오는 길,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음을 느끼고 온 석굴암입니다.

 

 

 

 

석굴암 약사여래마애불(藥師如來磨崖佛)’

20119월에 개방한 마애불입니다.

종무소의 옆 스님방을 지나 산길 따라 올라 만날 수 있는 마애불로 회주 초안스님이 10여년 전에 조성하셨습니다. 몇 년 전 석굴암을 찾았을 때는 그 존재를 알지 못하였으나 이번에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10년 내에 공개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였습니다.

원만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은 모습, 시원스런 북한산의 풍광을 넉넉하게 바라보고 계십니다.

    

 

 

※자료출처 : 전통사찰관광종합정보 (www.koreatemple.net )와 함께 합니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www.gilso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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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9.26 09:40

    첫댓글 이곳에도 석굴암이있군요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09.27 05:55

    경주 석굴암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름은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석굴암이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의정부에도 한곳이 있고, 석모도 보문사도 예전에는 석굴암으로 불렸습니다.

  • 13.09.26 14:53

    와~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09.27 05:56

    감사합니다.
    기분좋은 가을날 되시길요~^^

  • 13.09.27 19:46

    가보고 싶은 곳이네요. 잘 보았읍니다.~~

  • 작성자 13.10.01 10:39

    의외로 풍경이 참 멋진곳입니다.
    가을날 한번 다시 찾아 가을 모습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 13.09.28 01:29

    가보고 싶습니다
    사진과 설명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10.01 10:40

    걷기에도 좋고 풍경도 좋은 곳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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