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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내일 화요일(9/3)은 저희가 소속된 교단 노회의 시찰회 정기 모임 일정으로 인해 '21세기 두란노서원' 등을 중심으로 한 페이스북과 홈페이지와 유튜브 상의 게시 및 공유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참 죄송스럽고 미리 양해를 구하며..
혹 여러 이유로 그와 유사한 내용들이 필요한 분들은 페이스북('양범주' 검색), 홈페이지(Daum검색에서 '행복카페교회' 들어가서 '리바이벌 센터' 게시판), 유튜브('양범주목사의 두란노서원' 검색)에 대략 2년 정도 분량이 잘 보관되어 있고 그 누구든, 그 어디서든, 그 어느 부분이든 편하게 이용하실 수 있게 되어 있으니 활용 및 참조해 주시길 원하고 부탁드리며, 다시 한 번 양해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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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본문은 ‘삼삼삼 기도운동’ 등과 같은 기도의 권면이나 열심이나 운동 등에 있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구절 중 하나이고, 아주 큰 소망과 도전과 능력과 열매들이 되는 요절임은 분명합니다..
실상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밤낮 구하고 부르짖으며 수시로 의지하고 간구하면서 기도에 힘써야 함은 물론 실제로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기도의 제목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임은 확실하지만 그와 유사하게는 이단, 사이비들도 얼마든지 그런 모양들로 그들 나름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기도들에 있어서는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바리새인들이 거의 최고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잘 통찰해 보면 하나님으로 인한 실제적인 열납과 응답과 역사들이 나타나며 생생하게 누리고 예비되며 성취케 되는 기도와 간구들이 되기 위해서는 맹목적인 기도나 기복적인 간구가 아닌 제대로 알고 사모하면서 구하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영적인 원리나 이치들, 성경적인 상황과 배경들 등을 잘 이해하고 분별하면서 기도하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필요하고 실제적이며 중요합니다..
특히 아래 본문이 있는 예레미야서는 죄악으로 인한 애통과 심판들의 경고와 계시들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선지서들 중 하나이고, 실제로 예레미야는 다윗 왕의 계보를 잇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남 유다가 오랜 경고와 예고의 말씀대로 반복되고 갈수록 더 심각해진 죄악들로 인해 정말 바벨론에 의해 비참하게 패망케 되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자들이 죽임 당하게 되고, 그 가운데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의 남은 자들이 이방 땅으로 처참하게 포로되어 가는 것을 그 한가운데에서, 게다가 바로 앞에서 두 눈으로 생생히 지켜보며 온 몸으로 체감했던 선지자인 것이고, 그 상황이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우며 비참했는지는 예레미야 애가에 상세하게 잘 기록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래 본문인 소위 ‘삼삼삼’ 구절을 위시해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모든 응답과 회복과 구원의 약속들은 반드시 전제와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죄악들이 아닌 말씀에서의 기도와 소원들, 곧 죄와 세속과 불신앙들 등을 숨기고 반복하는 거짓되고 병든 것과 같은 왜곡된 신앙에서의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정욕적이고 기복적인 기도와 소원들이 아니라 원론적으로는 그와 반대로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어떤 식으로든 붙잡고 의지하며 각성하고 자복하면서 그 어떠한 상황들에서도, 얼마만큼이든지 간에 오직 말씀으로 돌이키며 몸부림치고, 다른 그 무엇보다 우선해서 말씀대로 믿고 말씀 그대로 갈망하며 가까이하고 결단하는 등과 같은 진정 말씀으로 살고 죽자고 하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말씀의 신앙에서의 부르짖음인 것이며, 사실은 기도에 있어서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직 말씀, 말씀의 신앙이 전적으로 중요하고 응답 받기에 합당한 믿음에 완전히 직결되는 것이며, 사실상 단 한 순간이라도 별개일 수 있거나 분리될 수 있는 자체부터가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리면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신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말씀이 아닌 죄악들과 벗하고 반복하면서 무조건 ‘주여 주여’하며 아무리 부르짖는다 한들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있어서 응답과 구원의 역사들은커녕 외식과 위선의 깊이만 더해지는 것이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진노와 가증스러움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며..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러한 백성들에 있어서는 더욱 사랑하셔서 라도 아비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시간까지 그러한 기도의 제목들 그대로의 응답과 승리와 복들 등은 막으시는 대신 하루 바삐 먼저 죄악들을 멈추고 각성하며 참회하고 제대로 된 믿음으로 온전히 돌이킬 수 있게 되도록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들 등 같은 징계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이고, 그러한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최선의 응답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게다가 그렇게 감추고 반복하는 죄악들의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얼마든지 더욱 심각해지고 처참하기까지 한 징계들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도들,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역사하시는 제대로 된 기도들, 특히 사람이 못하고 세상이 짐작도 못할 하늘의 힘과 은혜들로 생생하고 풍성하게 응답하시고 경험케 하시며 예비하시는 기도들은 원론적으로는 가장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각성하면서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구하고 싸우는 자들, 실상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에 서며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몸부림치고 결단하는 자들의 기도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이 깨어 있는 신앙인 것이자 응답에 합당한 신앙인 것이며, 그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에 따라 말씀대로의 모든 약속과 역사와 복들을 말씀 그대로 받게 되고 경험하는 신앙인 것이고, 무엇보다 근원적으로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다 실행하시고 모두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그러한 모든 이치와 원리와 실제들은 지극히 당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아래 본문의 ‘삼삼삼’ 구절과 그 뒤의 내용들에 있어서의 약속들도 가장 가깝고도 직접적으로는 당시에 죄악들을 반복하고 갈수록 더 사악해져 감으로 인해 곧이어 철저하게 진멸 당하게 되는 그 땅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닌..
참으로 심각하게 힘들고 어려우며 두려운 상황과 현실들 속에서도 모든 것들을 걸고 목숨까지도 걸면서 처절하게 말씀대로 행하며 말씀 그대로 외쳤던 예레미야 선지자를 향하시고 통하신 약속이면서 훗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죄악과 진노들에서 돌아서서 각성하고 자복하며, 오직 말씀대로 주님께로 나아가는 신실한 말씀의 백성들로 다시 서고 단련되며 준비케 되었을 때를 위한 약속이자 계시인 것이며, 모든 응답과 회복들, 진정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의 예비하심이자 실제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직접적, 실질적으로는 죄악들을 아파하고 슬퍼하며 끝까지 말씀으로 살고 죽고자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선포했던 예레미야를 위한 약속이면서 통한 약속인 것이자 계시인 것이고 예비인 것이며, 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바벨론 땅으로 포로되어 간지 대략 70년 전후로 해서 그러한 바벨론 포로 생활 후 어느 정도는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으로 훈련받고 단련되며 정케 되고 준비되어져서 예루살렘으로 포로 귀환케 되는 남은 자들을 위한 약속이자 예비하심인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모든 시대와 나라들을 뛰어 넘어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 믿음으로 참예케 된 백성들, 참으로 더 이상 죄악과 어둠들의 편에 서기 보다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케 되어 하나님의 것, 곧 말씀이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뒤바뀐 자들, 다시 말해 좀 더 정확하게는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는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서도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며 의지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서 죄, 세속들과는 피 흘리기까지 싸우며, 다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말씀의 신앙, 참으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몸부림치는 말씀의 백성들을 위해 온전히 약속된 은혜이자 신실한 응답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근본적으로는 복음의 능력들인 것이고, 또한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의 실제, 실체와 본질적으로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본질적, 원론적인 면에서 모든 기도 응답의 전제와 관건은 죄가 아니라 말씀인 것이고, 그 한가운데에는 죄악들에서의 자복과 돌이킴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그렇기에 오직 한 분 결국 구주 예수님만이 절대적인 길과 방법인 것인데 사실상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돌이킬 수 있으며 그 무엇보다 주야로 더욱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면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정말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죄가 아닌, 곧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으로 인한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직접적, 경험적으로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고 본질적으로는 온전히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됨이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모든 기도의 응답들에 있어 전제인 것일 뿐만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더 이상의 죄와 세속과 불신앙들이 아닌 날마다 말씀으로 살고 죽고자 하는 그런 말씀의 신앙이 뜨거울수록 더욱 기도의 응답과 역사들이, 곧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실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한 기도의 응답과 역사들이 생생하고 강렬할 수밖에 없는 것이면서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약속되고 예비된 말씀 그대로의 모든 역사와 누림들의 실질적인 통로와 방법이 기도인 것으로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인한 모든 응답과 회복들, 온갖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인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생생함과 강력함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그와 같은 모든 사실과 이치들마다 그 누구보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들과 그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인 지금 이 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에 있어서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으로..
특히 지금 우리들이 벗하며 반복하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죄악들에 있어서의 각성과 자복들, 참회와 갱신들에 대해 자각하고 돌이키며 갈망하고 결단하며 실행함과 함께 하는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자리들, 사역의 현장들에서의 모든 기도와 결단들에 있어서, 그 가운데 예비된 그 응답과 역사들의 실제와 경험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자 기준이고 관건인 것이며, 특히 모든 응답과 역전들 등에 있어서의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야 말로 중요한 원리이고 실질적인 열쇠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2일(월)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