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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따라 고사리 꺾으러 나선 개교기념일 |
게슴츠레 산자락엔 옅은 구름이 걸려있다. 벌써 사흘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날이 이어졌다. 그땐 마을에서 백아산 *몰랭이 방아찧는 것까지 보였다지만 날씨가 이런 대서야 전봇대 하나 거리 지척도 분간하기 힘든 시야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엄마 나도 따라가면 안돼?" "한꾼에 가자꾸나." "세째야 밥 묵고 *핵꾜 댕겨오니라와." "*벤또 싸 놓으셨제라우?" "그려." "아, 글고 뭐시냐 쇠죽 서너 바가지 퍼주고 가그라." "알았어라우. 근디 엄니 납부금 내라급디다." 형은 어디로 가느냐고 여쭙지 않았다. 때는 올챙이 앞다리가 나온 지 오래라 꼬리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뒷다리 나와 조막 만한 개구리가 폴짝폴짝 뛰며 풀씨 따먹겠다고 야단이다. 두 분을 따라 산으로 갔다. 동생은 혼자서 놀 수 있으니 큰댁 할머니께 놀러 가면 되었다. 안개는 아니었다. 화창한 날 아침에나 날이 좋다고 자욱하게 끼었다가 대가리 벗겨지게 따가운 날에나 안개가 낀다. 는개가 자욱 흩날리는 신새벽이었다. 열흘쯤 전 짜서 걸어둔 새 꼴 망태기 두 개에 점심거리를 챙겨서 나간다. 먹을 거라고 해봐야 별 게 아니다. 반찬은 딱 한가지고 밥 두 그릇과 내 도시락 한 통에 김장철에 무 뿌리 쫙쫙 쪼개 소금만 듬뿍 넣고 고춧가루에 살짝 묻혀 버무려 놓아 여름까지 상할 까닭이 전혀 없는 소금보다 더 짠 "바게지" 한 뭉치다. 아직 굵은 소금이 살아있기도 하다. 여기에 양푼 두 개에 각각 담아 밥이 담긴 쪽이 포개지게 그릇을 서로 맞대서 보자기를 질끈 매 흘러나오지 않게 한데다 달랑 숟가락만 세 개 넣어 다시 겉을 보자기로 싸맨 것이다. 정말이지 시장이 반찬이지만 산에선 먹을 만하고 간편하기까지 하다. 아침 잠을 가까스로 물리고 두 분은 도롱이에 새마을 모자 하나씩 눌러쓰고 새로 짠 누런 망태기를 매고 나는 자그마한 망태기를 따로 맸다. 달음질로 들판을 가로질러 갔다. 방향으로 보아 틀림없이 상제봉 쪽으로 가는 모양이다. 학교 가지 않는 날 몇 번 따라가 봐서 안다.
숨을 고르고 산으로 접어들자 구름이 다가왔다. 산새가 비 피하느라 요리조리 움직일 뿐 반기지는 않는다. 들판보다 조금 늦게 겨울잠에서 깬 산자락은 소나무 꽃필 무렵이다. 방죽 물에 노랗게 둥둥 뜬 건 분명 송화(松花) 가루가 밤새 흘러내린 것일 게다. 몇 걸음 옮기자 풀에 엉긴 빗물에 허리깨까지 젖고 만다. 진분홍 산철쭉만 몇 개 남아 있을 뿐 개나리, 참꽃, 벚꽃은 지고 잎이 더 무성하다. 밤나무만 아직 철모르고 버티고 있지 위아래로 졸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연한 빛을 띠고 잎과 꽃이 동시에 피고 있었다. 쭉 이어진 소나무 밭이 나오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비껴간다. 소나무나 잣나무 밑에는 가시 많은 노간주나무, 청미래넝쿨이 산다. 어찌나 제 영역을 잘 보전하는지 다른 생물이 자랄 공간을 결코 열어주지 않는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매한가지로 잎이 무성하여 그 아래엔 그늘만 지는 게 한가지 이유고 송진이 타 수종의 침입을 막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다. 소나무보다 몇 년 일찍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면 모를까 웬만해선 이들 침엽수 아래엔 수목이 자라기 힘들다. 취나물도 보이지 않았다. "엄마 꼬사리 보이요." "그냥 냅두고 후딱 가자." 괜히 묘 가에 난 몇 개 난 걸 탐내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상제봉 아래 고사리밭을 통째로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고 만다고 하셨다.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었다. 산등성이를 따라 한 고개 넘고 또 한 고개를 넘었다. 등성이엔 연분홍 고산 철쭉이 뽀얗게 피어서 반긴다. "꿩 꿩!" 저 멀리서 짧은 장끼 울음소리가 적막한 산을 잠시 깨워줄 뿐 부연 구름 속에 든 사람 숨소리와 발소리 빼곤 괴괴한 침묵이 흐른다. 이 땐 잔뜩 물기 머금은 나뭇가지가 "툭!" 부러져 떨어지는 소리도 사람 애간장을 졸아들게 하는데 무리가 없을 성싶었다.
백아산 상봉이 바라보이는 양지바른 등성이 쪽으로 고사리대가 한두 개 보인다. 그렇게 산을 기어올랐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한마디도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늘 그러던 것처럼 말이다. 가욋돈을 만져볼 절호의 기회라 묵묵히 일만 하면 된다. 그 지점부터 보이는 족족 꺾어 넣으면서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게 오늘 할 일이다. 참나무 잎은 겨우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봄비를 서너 참은 맞아야 잎자루를 포기하고 땅에 내준다. 그 후 떨어진 잎이나 고사리대, 마른풀도 넉넉히 비를 뒤집어쓰고 땅에 밀착하여 썩어갈 준비를 하는 게 자연의 이치다. 꼿꼿이 서있던 고사리대도 축 늘어져 흐물흐물 난잡하게 널려 있다. 그 사이사이로 빼꼼 구부러진 할미꽃대처럼 하얀 밀가루 바르고 아직 고개를 덜 쳐든 것이 고사리다. 앙증맞은 고사리는 다소 붉고 검다. 어제 오후까지는 기척도 없다가 이리 쏙쏙 솟아 오른 것을 보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세상 구경나온 식물들에겐 추적추적 하염없이 내리는 비만큼 좋은 영양제도 없으리라. 대개 양치식물인 고사리나 고비 따위는 꽉 찬 숲 그늘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키 재기하듯 올망졸망한 활엽수가 하늘로 향하는 틈을 열어 놓은 곳이 적지다. 나무키가 2∼3미터면 족하다. 채 잎이 하늘을 덮기 전에 고사리가 먼저 고개를 내밀면 아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니 불난 곳이 최고였다. 이태나 재작년 불난 자리는 어김없이 고사리 밭이 되었으니 고사리 꺾을 때가 되면 기억을 더듬어 이잡듯 뒤지고 다닌다. 횡재란 게 별것이던가. 인적 물적 능력을 총동원하여 자료수집과 면밀한 정보분석 후 기밀을 유지하여 적절한 때 민첩하게 대응하면 횡재수가 따른다. 마냥 홍시 떨어지길 기다려보았자 침만 마를 뿐이지 않던가. 아버지는 그런데는 탁월했다. 그쪽으로는 누구도 따를 자가 없었다. 오늘 어머니를 따라 그 먼 데까지 헉헉거리며 좋아하는 술을 팽개치고 나오신 건 며칠 간 가족들한테 잃었던 인심을 단번에 회복하려는 심사도 들어 있었다. 몇 걸음 더 옮기자 하늘이 빤히 보이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가녀린 것 몇 개 꺾어 담아 익숙해질 때가 되었다. 군데군데 한 뼘 길이나 되는 고사리도 보인다. 약간 비탈진 곳에 발을 헛디딘 어머니는 그만 움푹 팬 곳에 고꾸라지고 말았다. "윽!" "엄마 왜근다요?"
그런데 어머니 간담이 싸늘하고 소름이 끼친 데는 발갛고 날렵한 혀를 좌우로 날름거리며 뽈그족족한 뱀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어…." "어이, 왜 그려?" "직아부지 꽃뱜이요. 얼렁 와보싯쇼." "카만 있어봐잉." 나와 아버지는 망태를 내려놓고 발바닥에 부리나케 나뭇가지를 밀치고 뛰어갔다. "어디 어디?" "쩌그 있었는디라우." "어마 괜찮아?" 손으로 직접 가리키지 않았다. 속설에 손으로 가리키면 그 손가락이 표적이 되어 썩고 만다는 미신을 찰떡같이 믿고 살아온 당신이 아니던가. 그냥 입으로 두어 걸음 떨어진 곳을 향해 적시했을 뿐이다. "재숫대가리 없게 뭔 뱜이야 글씨. 인차 안 보이는구먼. 싹 잊더라고. 어디 다친 데는 없능가?" "까시 몇 개 찔린 것 말고는 괜찮구만이라우." "다행이여. 독이 오르지 않았다고 무시허면 안 된당께. 거년에 강리동 대식이 안사람도 꼬사리 껑끄다가 물려각고 죽을 뻔했지 않응가." 나는 긴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 뱀이 출몰했던 그 자리를 오랫동안 뚫어져라 쳐다봤다. 고사리 꺾다가 덥석 손을 넣었을 때 뱀에 물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기야 주위 살필 여유라도 있었겠는가마는 눈이 빠져라 쳐다보다 찾던 걸 발견하고 손부터 넣는 버릇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전남대병원으로 실려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아줌마들이 부지기수였다. 봄 뱀은 한두 마리만이 아니었다. 비가 쉼 없이 내리던 날 산에 간 사람들 이야기는 기가 질리게 하고도 남는다. 한가지는 개호랑이다. 삵쾡이쯤으로 짐작되는 개호랑이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사람을 농락하는 모습에 반은 혼절이나 가득 채운 고사리 망태기마저 버리고 "걸음아 나 살려라" 뛰는 통에 머리를 풀어헤친 몰골에 바지가 갈기갈기 찢겨져 미쳐서 돌아오는 누구누구 어머니 이야기가 수두룩하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는 뱀에 관한 보고다. 한창 재미를 붙여가며 고사리 꺾고 취나물을 뜯는데 옴팍한 곳에 몽기적거리는 덩어리가 있어 찬찬히 살펴보면 200마리가 넘는 뱀이 한 데 엉겨 꿈틀거리고 있더란다. 원체 그런 이야기가 많았던 터라 나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사실인 걸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왜 뱀은 그렇게 한 가마니가 넘게 뭉쳐있을까. 짐작컨대 겨울잠 잘 때 서로 체온을 보존하기 위해 한 군데 몰리다보니 뒤엉켜 그리된 것이리라. 그런데 당장 제들 생리 현상이나 해결하는 걸 보고 왜 그리 놀랐던 걸까? 그건 맘만 먹으면 언제든 서리서리 엉킨 타래를 풀고 온 산야로, 자신에게로 덮쳐 올 것이라는 지나친 걱정이 발동한 것 아니겠는가.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딱인 듯싶다.
하여튼 어머니는 오금이 달달 떨려 고사리고 취나물이고 캘 엄두가 나지 않은가 보다.
글쓴이 註
"직아부지 한술 뜨고 허십시다."
오른편으로 저수지가 보였다. 저수지는 두 내외에겐 쳐다보기도 싫은 존재다. 13년 전 나로서는 큰어머니가 큰집 막내누나를 낳던 가을에 저 지랄 같은 저수지를 막는데 돈 좀 벌어보겠다고 사람들이 들어가지 말라는 걸 한사코 우겨서 화를 당한 지긋지긋한 곳이다.
"어이 그만 내려가더라고."
중학생이던 형이 사립문에 들어선다.
글쓴이 註 |
고사리국에 온갖 나물반찬에 둘둘 비벼 먹었다 |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막걸리 한 되를 받아 오라 하셨다. 정지문 안쪽에 걸린 찌그러진 노란 주전자를 챙겼다. 마을 앞 도랑 가에 있는 주막에 가기 전에 물로 한번 주전자를 흔들어버리고 뛰어서 갔다. "*지시오?" "막걸리?" "예." 은순이 아버지는 술독에 든 막걸리를 훌훌 저어 가득 담았다. 넘치도록 담을 게 뭐람? 나는 막걸리 냄새도 맡기 싫어 손을 멀리 뻗어 편치 않는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술 받아왔어라우." "애썼다." "근디 뭔 술을 고로코롬 꽉 채운다요?" "많이 준께 좋제 그냐?" "어디다 둘까요?" "응 *말래다 올려놔라." "예"
마침 아버지 어머니께서 손에 가시를 찔려가며 꺾어오신 두릅나물이 있다. 아버지는 막걸리 한 되로도 부족할지 모르겠다. 물이 끓기 전에 "꿩알"을 삶는다. 적당히 익을 무렵 알을 꺼내 찬물에 담그신다. 다시 끓는 그 물에 "두릅"을 넣고 한번 휘 저어주고는 바로 꺼내셨다. "초고추장"도 순식간에 시큼하게 만드셨다.
침이 "꼴깍꼴깍" 넘어갔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보다 더 급한 게 있었다. 바로 꿩알이다. 삶아도 푸른 기운이 가시지 않고 온통 푸르스름한 꿩알 아홉 개. "아부지 한나 드실라요?" "느그들 묵어라." 하나씩 까서 소금에 찍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엄마 *꽁알." "아가 우리 막내딸이 엄마 줄라고 가져왔어?" "응." 동생은 아직도 재롱과 이쁜 구석이 남아 있다. 무슨 음식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 아버지께 먼저 드리고 먹는 버릇 말이다. 나는 손이 멋쩍었지만 이미 한입에 알을 넣고 씹고 있었다. 굵은 소금을 더 넣어 간을 맞췄다. 형제 둘 차지로 각 2개, 동생 3개, 어머니 2개씩 돌아갔다. 꿩알은 약간 풋내가 나는 듯했고 노린내도 풍겼다. 그 맛은 달걀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곤달걀 삶은 맛이다. 포근포근하기는 더했다. 간혹 삼밭에서도 주워왔던 꿩알은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추억을 안겨주었다.
"한나 묵으께라우." "느그들은 가시에 찔린께 쬐끄만 것으로 묵어." "예." 각자 세 개씩을 먹고는 "더덕" 껍질을 벗겼다. 더덕 뿌리를 칼 없이 긴 손톱으로 둘둘 돌려가며 껍질을 벗긴다. 그래야 진한 향이 날아가지 않는지라 평소 어른들께 배운 대로 벗겼다. 그 자리에서 물에 씻지 않고 바로 드려야 아버지께서는 하나라도 드셨다. "규환아 정말 찐하다." "형 여그 봐봐. 하얀 찐이 질질 흐르네." "글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까치더덕은 없디?" "그것 찾으러 갈 새가 어딨어? 꼬사리 꺾느라 정신없었다니까." "글면 내일 형아랑 같이 가자. 그게 덜 쓰당께. 달짝지근허고." 여동생과 형 그리고 나까지 셋이서 더덕 껍질을 벗기니 금방 끝났다. 귀한 것은 이렇게 몇 개 맛보면 봄이 떠나간 줄 모르게 쉬 갔던 기억이 있다. "딱주"도 벗겨 놓았다.
솥뚜껑이 움직이며 밥 익는 소리가 요란하자 불을 꺼냈다. 밥솥보다 약간 작은 국솥엔 우리 집만의 별미 국이 풀풀 끓고 있다. 다름 아닌 고사리국이다. 고사리국이 우리 집 별미인 것은 다른 집에서 끓여 먹는 걸 아직 보지 못한 때문이다. 고사리국은 한번 삶은 고사리를 남겨뒀다가 물에 우려서 독을 빼서 넣고 고사리 끝에 달린 고사리밥도 떼지 않고 칼로 한두 번 잘라 된장 조금 풀고 고춧가루 넣고 멸치를 싹싹 비벼 넣고 간만 맞춰 푹 끓인 국이다. 고사리 꺾는 보름 동안 우리 가족은 고사리국을 물리도록 먹었다. 그 맛은 뭐랄까 시원했다. 고사리 줄기는 물컹하면서도 날줄만 있는 듯 한쪽으로만 연신 잘게 부서져 찢어지므로 쫄깃함이 더하다. 여기에 고사리 잎으로 자랄 고사리밥은 식물에서 얻는 밥인데 고소함과 감칠맛이 난다.
먹던 두릅, 더덕, 딱주와 삶은 취나물, 생 취나물, 쑥부쟁이와 원추리 순을 고사리국까지 한 그릇씩 차려지니 상다리가 휠 지경이었다. 먼저 고사리국에 밥을 말아 식기 전에 후루룩 떠먹고 온갖 나물을 넣고 고추장 조금에 쪽파로 만든 장을 끼얹고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양푼에 둘둘 비벼서 게눈 감추듯 봄을 질겅질겅 씹었다. 어른들은 더 먹으라 하셨지만 옆에서 주워 먹은 거에다 꿩알까지 먹고 나물 반찬에 비벼 먹으니 무척 배가 불러 아쉬운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밥을 먹고서도 밖엔 습기가 많으니 어머니는 애써 꺾은 고사리가 조금이라도 마르도록 방으로 들여와 한번 더 비벼주고 군불을 넉넉하게 때고 고루 펴 너시느라 잠을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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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보기만 해도 침이 고입니다...ㅎㅎㅎ...초고추장에 두릅도 찍어먹고 싶고, 취나물도 먹고 싶어지네요..^^* 고향의 청보리밭도 생각케 해주는 참 좋은 아침입니다....감사히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