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옥은 당장에 울산으로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사 수빈
이를 찾지 못하더라도 동생이라도 만날 수 있으니 섭섭할 것은 없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작정을 하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조
급해졌다.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면 지금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던
수빈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조바심이 났다.
"누님, 지금 몇 시쯤이나 되었습니까?"
"수빈 씨 소식에 혼이 나갔군 그래! 그 팔목에 낀 건 뭐고?"
선영의 말에 정신이 들어 자신의 시계를 보니 새벽 5시가 채
안 되고 있었다. 통금이 풀린 지 불과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누님, 저 울산에 다녀와야겠습니다. "
'지금?"
'네 !"
벌써 십 년 전 일인데 지금까지 그곳에 있을까?"
"그거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안 가 볼 수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
상옥은 급하게 일어나 허둥지둥 옷을 주워 입고 여관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손님 , 어디로 모실까요?"
'기사님, 경남 울산에 가 보신 일 있습니까?"
"울산이라면 자주 가지요. 현대자동차가 울산에 있지 않습니
까?"
'지금 울산까지 가 주실 수 있습니까?"
"울산까지 말씀입니까? 요금이 괴 나올 텐데요."
"요금 걱정은 하지 마시고 가십시다. "
"바쁜 일이 있으신가 봅니다. "
택시 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상옥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상옥은 바쁜 마음에 앞뒤 챙겨볼 겨를도 없이 택시를 전세 내
어 울산 방어진항을 향해 질주하였다. 택시는 제3한강교(한남대교)
를 건너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마음은 급한데 달리는 속도는 상옥
의 마음을 따라주지 못했다
"기사님, 울산까지 몇 시간이나 걸립니까?"
"글쎄요, 대략 다섯 시간쯤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
택시는 톨게이트를 지나 남으로 남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하느님! 제발 수빈이를 붙들어 주십시오. 울산에서 수빈이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상옥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빌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차창을 여니 싸늘한 바람이 밀려들어와 조롱하듯이 상옥의 뺨을
후려치고 지나갔다.
'오,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나는 천 년을 산 것보다도 더 많은 추억을 지니고 있다
보들레르. 우을 2J에서
포승에 묶여 버린 순정
달리며 상옥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옥은지갑 속
에 돈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확인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밤 요정에서 자신이 술값을 계산했기 때문에 정확히 얼마가 남았
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얼른 지갑을 꺼내어 헤아려 보니 5만 원이 채 안 되었다. 좀 모
자라지만 동생에게 잠시 빌려 쓰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상옥이 탄 택시가 울산에 도착하자 일단 매제가 근무하는 울산
정유공장으로 갔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이 비번이
어서 매제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상옥은 동생이 결혼
하여 울산에서 살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가 본 적도 없
었고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다. 총무과에 사정을 말하여 가까스로
전화번호와 자택 주소를 알아내고 전화를 해 보았지만 받질 않았
다. 상옥은 할 수 없이 택시 기사를 데리고 동생집을 찾아가 보니
재수 없는 여자 시집 가던 날 등창 난다고 가족들은 경주로 관광
을 떠나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택시 기사는 사기라도 당한사
람처럼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자꾸만 재촉을 하고 상옥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기사 아저씨, 염려 마십시오. 시간이 지체되는 만큼 충분한 보
상을 해드릴 테니 안심하시고 동생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
십시오. 미안합니다. "
상옥은 다방에서 운전 기사를 안심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
다. 그런데 안절부절하던 운전 기사가 어디엔가 전화를 했다.
운전 기사의 전화가 끝나고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패트롤카의
삐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순경 두 사람이 다방 안으로
들어섰다. 상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운전 기사가 신
고를 하여 자신을 잡으러 온 것이 아닌가 해서였다 상옥의 의혹
은 적중했다. 상옥은 두 명의 순경에게 연행되어 파출소로 갔다.
파출소에서는 상옥이 울산에 오게 된 동기와 인적 사항을 물었
다. 상옥은 거짓없이 울산에 오게 된 연유와 인적 사항 등을 말하
고, 동생들이 외출을 하고 집에 없는 관계로 만나지를 못하여 잠
시 시간이 지연됐을 뿐 결코 사기나 고의가 아님을 열심히 설명
했다. 그러나 순경들은 상옥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충 조서
를 꾸며 울산 남부경찰서로 이송시켜 버렸다. 상옥은 그곳에서도
파출소에서 진술했던 대로 모든 상황을 사실대로 설명하고 자신
의 행위가 절대로 사기성이나 고의성이 없었음을 누누이 설명했
다. 그러나 경찰서 수사관도 파출소 순경이 했던 대로 대충 사무
적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봐요. 당신의 말을 이해는 하겠는데 신고된 사건이니 일단
조서나 꾸며 둡시다. "
"형사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오늘 안으로 운전 기사에게
충분한 보상을 할 것입니다. "
'글쎄, 알았다니까 그러네! 그건 차후의 일이고 우선 조서나 꾸
며 보자구요."
'제발
담당 형사는 윽박지르며 큰소리를 쳤다. 상옥은 마음을 돌려 생
각했다. 담당 형사가 원하는 대로 순순히 조서에 응해 준다 해도
동생에게 연락이 되는 대로 손해배상을 충분히 해주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상옥은 형사가 묻는 대로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조
서 작성이 끝나자 형사는 상옥을 경찰서 보호실로 데려가 보호실
담당자에게 인계해 버렸다.
"야, 임마! 이리 온나!"
'뭐요? 야 임마? 당신 그렇게 욕해도 되는 거요? 내가 무슨 죄
인이라도 되는 줄 압니까?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러자 보호실 간수는 도리어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새끼 웃기는 놈 아이가. 야, 임마! 니 죄 없다 했드나? 그라
모 죄도 없는 자석이 여긴 뭐하러 왔노? 잔소리 말고 들어가그
라
간수는 보호실 철문을 열고 상옥을 떠밀어 철창 안으로 밀어
넣었다. 상옥은 어쩔 수 없이 보호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런지 몇 시간이 지나서야 동생과 매제가 급히 달려왔다.
"형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상옥은 매제와 동생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충분한 사례를 해줄 것을 당부하고 영수증을 받아 담당 형사에게
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안심하십시오.
보상과 합의가 이루어졌으므로 상옥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
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매제로부터 운전 기사를 만나 모든 것을 원만히 해결
했으니 이제 곧 풀려 날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상옥을 담당했
던 형사가 상옥을 취조실로 불러 내었다. 형사는 처음보다는 한결
부드러운 말씨로 위로하듯 말했다.
"사건이 상부에 이미 보고 되어 있으므로 결재를 받아야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상옥은 발끈하여 신경질을 냈다.
"그 말씀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고의적으로 사기
친 것도 아니고 형사범도 아니지 않습니까'? 잠시 시간이 지체되
었을 뿐이고, 또 운전 기사에게 늦은 시간만큼의 충분한 배상금까
지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는 거 아닙니까?"
상옥은 강력하게 항의하고 즉시 석방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으
나 담당 형사는 상부의 결재가 날 때까지 기다리라며 상옥을 다
시 보호실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자정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상옥은 기다리다 못해 보호실 간수에게 항
의를 했다.
"여보세요. 죄도 없는 사람을 이렇게 가둬 두는 이유가 뭡니
까."
"이 새끼야, 낸들 아나 임마? 내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까
주둥이 나불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이 문둥이 새끼야!"
"여보쇼. 당신 경찰이 맞는 거요? 민주 경찰 주둥이는 다 그렇
게 입이 걸어? 그리고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 달
라는데 뭐 잘못한 게 있냐구?"
"너, 좀 맞을 기가? 임마 육신이 온전하고 싶으면 잠자코 있그
라. 내일 아침에 담당자 나오면 알게 될 기라."
상옥은 간수에게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상옥은 자신이 무
엇 때문에 구속이 되어 있는지 이유를 모른 채 경찰서 보호실에
서 일주일을 보냈다.
그날도 동생 내외가 면회를 왔다.
"여보게, 이게 무슨 꼴인가? 무슨 연유인지 알아야 답답하
지나 않겠는데 나를 가두어 두는 연유나 알아봐 주게나."
상옥은 정말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루 속히 방어진에 찾아
가서 수빈이를 찾아야 하는데 영문도 모르고 구속되어 있으니 죽
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상옥의 말을 듣고 있는 동생 내외의 표정
이 침울해 보이는 게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상옥은 갑자기 마음
이 불안해졌다.
형님!"
매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 보게?"
사실은, 지금 담당 형사를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
"그런데?"
"형님이 삼청교육 대상자 명단에 올랐답니다. "
"뭐야? 삼청교육대? 삼청교육이 뭐하는 건데?"
상옥은 그때까지 삼청교육이라는 것이 뭐하는 건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대로 깡패들이나 부랑자들을
모아 교육시킨다는 정도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 대상자 명단에 들었으면?"
'저도 확실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심사라는 것을 받아 봐야 석방
의 가부를 알 수 있답니다. "
정말 기막히는 현실이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상옥은 매제를 통
하여 담당자 면담을 요청하여 형사실로 불려 갔다. 상옥은 담당자
의 부당한 처사에 대하여 강럭하게 따지고 들었다.
"여보세요. 형사님. 말을 들으니 내가 삼청교육인지 뭔지의 대상
자 명단에 올라 있다 하던데 도대체 내가 지은 죄목이 뭡니까?"
'지금 입장으로는 나도 뭐라 말할 수는 없소. 그러나 일단 입건
이 되었던 일이고 또 윗분들이 결정한 사항이니 괴롭더라도 며칠
만 참아 주시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여보세요. 내가 이곳에 온 지가 벌써 일주일이 되었는데 또 며
칠을 기다리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나, 한시가 바쁜 사람이라구
요."
형사는 부드러운 태도로 상옥을 달래려 애썼다 상옥에게 미안
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 있어야 합니까? 그리고 어떤 절차를
거치는 것입니까?"
"며칠 후에 지방 유지 분들과 경찰서장, 그리고 군부대 지휘관이
참석하여 조사를 할 것입니다 그 조사 결과에 따라 모든 게 집행
됩니다. "
상옥은 다시 보호실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정말 어이없는 일
이었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말없이 떠나 버린 그 여자를 잊지
못해 실오라기 같은 희망 하나로 천리길을 달려 왔다가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되다니 죄라면 세상 물정 모르고 십수 년 동안 사
랑하는 사람 찾아다닌 죄밖에는 없는데. 상옥은 차라리 죽어 버리
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상옥의 보호실 신세는 어느덧 45일이 되었
다. 그 동안 여러 경로를 통하여 많은 항의도 해보았고 죄가 있다
면 정식으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탄원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
때마다 상옥의 요구는 묵살되어 버렸다. 그들이 말하던 조사라는
것도 받아 본 일이 없었다.
상옥이 보호실에 수감된 지 46일이 되던 1980년 11월 31일 자
정 무렵.
갑자기 전경들과 형사들이 전투복 차림으로 완전 무장하고 보
호실로 들이닥쳤다. 당시 울산 남부경찰서 보호실에는 약 60여 명
이 함께 갇혀 있었는데, 무장경찰 가운데 상급자로 보이는 한 사
람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명심해 주기 바랍니다. 당신들은 지금
부터 인솔자의 지시에 절대로 복종할 것이며, 적극 협조 바랍니
다 만일 인솔자의 명령에 불복하거나 반항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각별히 유념하기 바랍니다. "
인솔자의 설명이 끝나자 전경들과 형사들은 보호실에 있는 사
람들을 두 명씩 보호실 밖으로 불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밖으로
나간 사람들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수갑을 채우고 그것도 모자
랐는지 한쪽 팔과 다리도 묶었다 따라서 두사람이 한마음이 되
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상옥 역시 그들이
지시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포승이 너무 조인다고 불평하다가 시범
적으로 무참한 구타를 당했다 상황이 그런지라 아무 항의도 하지
못하고 모두들 조기 두름 엮이듯 묶일 수밖에 없었다.
1980년 12월 1일 새벽 1시경, 상옥은 수갑을 찬 채 포승에 묶
여 경찰서 정문을 나섰다. 차가운 겨울비가 얼굴을 때렸다. 온몸
이 결박되어 몸은 부자유스러웠지만 가슴은 시원했다. 경찰서 광
장에는 이미 커튼으로 창문이 가려진 관광버스 두 대가 시동을
걸어 둔 채 상옥 일행이 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옥 일행은 버스에 오르자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시트 등받이
에 머리를 박았다. 버스는 일행이 모두 오르자 지체없이 출발했
다. 상옥 일행을 태운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들은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나약한 죄인일 뿐이었다. 상옥은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버스의 차창은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밖을 내
다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계속 끌려가
고 있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버스는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는 것 같았
다. 상옥은 차창의 커튼을 입으로 물고 벌어진 틈새로 밖을내다
보았다.
버스는 부산 남해 고속도로 진입로 만덕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시간여를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창원에 있는 경남 도경
광장이었다. 그곳에는 상옥 일행이 타고 온 버스 외에도 20여 대
의 관광버스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다른 버스의 차창도 모두 가
려져 있었다. 상옥 일행은 그곳에서 한동안 인원 점검을 마치고
그들이 나누어 준 우유와 빵 한 개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얼마 후, 버스는 다시 시동을 걸고 미지의 장소로 출발했다. 도
대체 어느 곳으로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상옥 일행은 불안과 공
포감에 쉽싸인 채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들처럼 눈만 깜빡
일 뿐 한 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버스는 창원 시내를 빠져나와
어디론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게 분명한데 도대체 방향을 가늠할 수 없었다. 커튼 틈으로 이정
표를 보니 상옥이 타고 있는 버스가 대구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
다. 상옥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기로 하고 시트에 등을 기대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을까. 문득 눈을 떠보니 버스는 추풍령을
넘고 있었다.
커튼 틈새로 보이는 창 밖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고속도로에 쌓인 눈 때문에 버스
가 거북이 걸음을 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수빈의 소식
을 알고 싶어 울산에 내려갔다가, 수빈이 있었다는 방어진 근처에
는 가 보지도 못하고 온몸을 수갑과 포승에 묶인 채 목적지도 알
수 없는 곳으로 마냥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상옥은 자신의 처지
가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상옥은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죽으면 한 번 죽지 두 번
죽으랴! 태산같이 밀려오는 파도 속에서도 온 지구를 통째로 집
어 삼킬 것 같았던 허리케인도 잠재우고 살아 돌아왔는데 그 보
다 더한 고통이야 있으랴! 상옥은 그렇게 억지로 자신을 위로하
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철없는 생각이 천만의 말씀이었다는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인간은 단 일 분, 일
초 후에 전개되는 일마저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나약한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차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무
자비한 현실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서고 있는데도 상옥은 그 몇 시
간 후에 당해야 할 엄청난 고통과 시련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A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서
아! 여기가 지옥
상옥 일행을 태운 버스는 수원을 지나 영동 고속도로로 진
입하고 있었다 여기서 30킬로미터만 더 가면 상옥의 고향집이 있
는 이천이었다. 버스는 상옥의 애타는 마음은 아랑곳없이 고향집
뒷동산을 지나 동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상
옥 일행은 원주의 치악산 밑에 있는 이름 모를 군부대에 도착하
였다
부데 훈련장에도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연병장에는 빨
간 모자를 쓴 군인들이 옆구리에 시퍼런 몽둥이를 차고 눈을 부
라리며 일렬종대로 버티고 서 있었다. 아마도 차에 타고 있는 사
람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듯했다. 상옥 일행은 버스에 태워진
채로 군부대 요원들에게 인수되었다. 인수 인계의 절차가 끝나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버스로 올라왔다. 그리고 상옥 일
행의 손에 채워진 수갑과 포승줄을 풀고는 화물 내던지듯 버스
출입구로 내던져 버렸다. 밖으로 던져진 상옥 일행에게 문 앞에서
기다리던 군인들의 몽둥이와 군홧발이 사정없이 덤벼들었다.
무쇠 같은 군홧발이 턱을 날리고 몽둥이가 등짝을 후려쳤다. 사
람이 사람에게 이토록 잔인박행(殘忍薄行)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몽둥이
와 군홧발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피에
굶주린 야수였다. 상옥은 결국 피를 부르는 그들의 몽둥이와 군홧
발을 견디지 못하고 차가운 눈 위로 선혈이 낭자한 채 실신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실신하여 쓰러진 상옥에게 엄살을 피운다며 또다시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살을 에이는 엄동설한에 상옥은 찬물을 양동이
로 뒤집어쓰고야 의식이 돌아왔다 그러고도 상옥은, 얼마 동안인
지도 알 수 없는 무차별 구타를 당한 후에 연병장에 정렬할 수
있었다.
첫댓글 좋은 글
늘 가족과
해복한 날 되길 ~~꾸뻑
기가차겠네......
잘보고갑니다,
보고 갑니다..........
삼청교육대! 정말 많은 무고한 국민들이
죽거나 장애를 입었지요!
죄없는 무고한 사람들이 고생했던시절..........
즐감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