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후 출근한 바보가 대학동문의 같은 과 선후배가 만나 밥 먹고 온다고 했다.
난 늦게야 조금 더 큰 배낭을 가져 와 깔개를 집어 넣고
음식물 넣을 보온 가방을 챙긴다.
삼겹살을 넣으니 따라 챙겨야 하는 것이 많다.
된장과 마늘 고추만 넣고 술을 챙긴다.
취사도구 가방을 넣으니 요가 매트 깔개가 반을 차지한 배낭은 제법 키가 커졌다.
당곡제 옆에 차를 세우니 기계소리가 나며 입구에 인부들이 서 있다.
당곡마을 상수도 공사중이란다.
다행이 작은 포크레인이 길을 비켜준다.
나이 먹은 일꾼들이 왜 이제 가느냐 집이 어디냐 물으며 별놈이라는 듯 쳐다본다.
배낭이 가벼운데 똥폼을 크게 잡는다.
가볍다는 배낭이 오르막에서는 허리에 하중을 크게 준다.
지리산에 텐트를 지고 오를 때도 있었는데, 이까짓쯤이야 하지만 힘이 든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오기로 쉬지 않고 귀절암 물까지 가 배낭을 벗는다.
크게 늦지 않았다.
연초록의 들판을 한번 내려다보고 능선을 걷는다.
풀이 자라 무릎까지 닿는다.
아이들과 오르려면 조금 걱정이 된다.
내가 면장한테 전화를 할까, 군청에 할까?
내일 월파사업회 모임에서 송사무국장에게 부탁을 할까?
나뭇가지 사이에 거미줄에 걸린 이파리가 모자사이에 붙는다.
떼지 않고 사진을 찍어보며 웃는다.
정상 암봉 아래 철난간 아래 배낭을 두고 정상으로 간다.
방장산에서 주월산릉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뒤로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병풍산 뒤로 금전산의 바위가 빛나고 오른쪽 제석산 뒤로 광양 백운산 줄기가 흐릿하다.
조금 당겨 지리의 반야와 천왕을 찍어보지만 화면에서는 아득하다.
내려와 배낭을 푼다.
돌에 앉을까 하다가 가져 온 매트를 길게 펴고 앉으니 편하다.
여기서 잠자면 좋으련만, 난 내려가야 한다.
물병에 따뤄 온 소주를 컵에 따르고 맥주를 부어 마신다.
삼겹살 한줄을 구워 자르니 작은 코펠 뚜껑이 가득 찬다.
들판 사이 마을에 바닷가 마을과 섬사이에도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동쪽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여 달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고속도로 주변과 순천 광양 쪽의 도시와 큰 다리는 불빛이 휘황하다.
서쪽의 조성 예당 벌판도 불꽃마을인데 골프장의 불빛은 힘이 세다.
득량만 여자만 사이의 덩치 큰 고흥반도 뒤로 구름이 가득하다.
번개가 치며 밝아지곤 하는데 아마 제주도엔 비가 많이 오나보다.
번개를 잡아보려 하지만 스마트폰에 내 손가락은 느려터져 빛을 잡아내지 못한다.
삼겹살에 술은 잘 들어가다가 금방 사라지니 아까워진다.
일어나 맨발로 동쪽 바위에 서 본다.
바람이 시원하다.
순천 앵무산 너머 하동 금오산 귀로 둥근 달이 떠 오른다.
구름 속의 달을 보다가 술 한잔 더하고 다시 동쪽으로 나간다.
달은 구름 속에 있으면서도 순천만의 바다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섬이 또렷해진다.
난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을까?
하얀 철난간에 팔을 대고 남쪽의 번개를 잡아보려 힘쓴다.
고흥방조제 한쪽에 서 있는 선밸리 리조트의 불빛이 빛난다.
봉두산의 삼각꼴 양쪽으로 불꽃이 피었다.
동쪽 바다가 밝아졌다.
불꽃도 제각기 피어 존재를 알린다.
바보가 귀가하기 전에 집에 돌아가야 한다.
전망대에 들러 한번 더 고흥반도와 남쪽을 보고 내려온다.
9시 전에 집에 도착한다.
잠시 후 바보의 차가 들어온다.
산에 다녀왔다는 말을 않다가 페북에 사진을 올려 보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