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싶은 계림
이봉기
황사바람이 흙먼지를 몰고 와 뿌옇게 상공을 날고 있다.
펄벅이 그려낸 ‘대지’속의 중국대륙을 떠올리며 여행길에 오른 나는 중
국 땅을 처음 밟는 순간 약간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계림공항에 도착하자 눈망울이 크고 매력적인 조선족 여
자 안내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다.
첫날 중국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계림에서 ‘이강’으로 향했다.
‘이강'은 자신의 어여쁨으로 세계인을 매혹시키고 있었다. 물은 꽃잎처
럼 떠 있는 배를 싣고 산을 실었으며, 배는 우리를 싣고, 우리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활짝 폈다. 살랑거리는 물결을 타고 배가 미끄러지듯 움
직인다. 조용히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그리 깊지 않은 강물은 소녀
처럼 깨끗하고 순수해 강바닥까지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이 강은 그림과
시 그리고 낭만이 흐르고 있었다. 배는 유유히 떠내려가고 가마우지라는
물새가 물고기를 잡으려 날갯짓한다. 물안개가 하늘로 솟지 못하고 구름
이 되어 산 중턱에 걸치니 엷은 면사포에 가려진 신부의 얼굴처럼 신비로
움의 극치를 이루었다.
일찍이 시인 '한유’는
“굽이굽이 흐르는 이 강은 푸르른 비단띠같고, 우뚝우뚝 솟은 산은 초
록빛 옥비녀 같다.”고 말했듯이 백리길이 넘는 이 강을 끼고 있는 수천
개의 산봉우리들은 신이 빚은 천상의 조각품처럼 황홀경을 더해 준다. 선
경과도 같은 매혹적인 경치에 도취되지 않는 이 그 누가 있겠는가?
배의 조그만 창문을 열고 물 속에 길게 드리운 산 그림자를 들여다본
다. 산과 숲, 저 멀리 기암괴석도 강물에 몸을 담근다. 강은 그리 넓지
않아 편안함을 더해 주었으며 한가로이 떠 있는 물오리들이 한 폭의 그림
을 이루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중국의 산수
화가들이 모두 이곳에서 태어났나 싶었다. 강가에서 아낙네가 빨래하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니 나에게도 소중스레 한올 한올 간직하고 있던 소녀
시절, 시냇가에서 발 담그고 빨래하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빨래가 끝나는 요즈음, 그 시냇가의 추억은 꿈같은 이야기
로 생각될 뿐 그때가 그리워진다.
비디오 카메라를 가진 중국인 아가씨가 나를 주시한다. 아름다운 추억
을 만들기 위해 살포시 미소를 띄워 보였다.
‘이강’이 거의 끝나는 곳에서 ‘관암 동굴’로 이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
고 굴 입구로 내려가니, 세월을 뛰어 넘어 태고의 신비를 갖춘 거대한 동
굴이 예술적 분위기가 다분한 석조 박물관 같았다. 길이가 12km나 되는
크고 웅장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굴속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배를
탔을 땐 스릴을 느꼈고, 모노레일로 된 기차를 타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
다.
또 항주에 있는 호수 ‘서호’의 경치는 환상적이었다. 서호가 없이는 항
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만큼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호수는 때묻
지 않은 자연을 품고 있었다. 산과 숲이 그림자로 하나가 된 수면, 멋지게
꾸민 유람선이 넓은 호수를 미끄러지듯 스쳐간다. 눈앞에 스쳐 가는 정
경은 마치 꿈속의 고향을 연상케 했다. 멀리 보이는 작은 섬의 일부분,
작은 배들의 움직임을 보고 있을 때, 그때 내 눈앞을 지나가는 환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잎이 무성한 아름다운 나무들이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보았다. 호수의 중간쯤 일부를 막았기 때
문에 배가 지나갈 때 볼 수 있는 경치였다. 순간 어린 시절 아득한 옛날
에 고향에서 본듯한 정경 같은 황홀감을 느끼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서호에서 발길을 돌려 기차에 몸을 싣고, 아름다운 서호의 경치를 떠올
리며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까 생각했다.
5일간의 여행이 끝나고 안내양은 마지막 선물로 노래로서 보답하겠다고
했다. “잘 있어요 잘 가세요. 이 한마디였었네.” 노래를 잇지 못하고 그녀
의 긴 속눈썹 아래로 이슬방울이 맺혔다. 내 옆에 앉은 박교수 부인이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아 냈고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임교수님이 작별의
인사로 대신 했을 때 버스는 상해 공항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다음에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안녕히.”
“건강하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꼭 한번 모국을 방문하
고 싶다는 눈빛으로 우리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어 보였다.
중국의 상공을 나르며 생각에 잠긴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상해의 임시정부 수립 기념관, 중국의 의사
이자 개혁가이며 '아Q정전’ ‘광인일기’를 쓴 로신의 무덤이 있는 ‘노신’
공원, 아름다운 이 강에서 빨래하던 아낙네의 평화로운 모습, 신비스러웠
던 수 천개의 봉우리 계림산, 환상적인 경치 서호의 모습들이 눈에 어른
거려 가고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다.
1999.
첫댓글 중국의 상공을 나르며 생각에 잠긴다.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상해의 임시정부 수립 기념관, 중국의 의사
이자 개혁가이며 '아Q정전’ ‘광인일기’를 쓴 로신의 무덤이 있는 ‘노신’
공원, 아름다운 이 강에서 빨래하던 아낙네의 평화로운 모습, 신비스러웠
던 수 천개의 봉우리 계림산, 환상적인 경치 서호의 모습들이 눈에 어른
거려 가고 가도 또 가고 싶은 곳이다.
‘이강’이 거의 끝나는 곳에서 ‘관암 동굴’로 이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굴 입구로 내려가니, 세월을 뛰어 넘어 태고의 신비를 갖춘 거대한 동굴이 예술적 분위기가 다분한 석조 박물관 같았다. 길이가 12km나 되는 크고 웅장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굴속에서 구명조끼를 입고 배를 탔을 땐 스릴을 느꼈고, 모노레일로 된 기차를 타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