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29일 여야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즉 국정의 동반자 자격으로 처음 대면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그토록 어렵게 이뤄진 회담에서 합의서 한 장도 내지 못했다. 애초 회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과 목적이 달랐던 데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이다. 우선 윤 대통령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에서 민생, 이태원 특별법·채상병 특검·양평 고속도로·명품백 수수·주가조작 의혹, 정치 회복, 외교 등 12가지의 방향 수정과 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단 하나도 긍정적인 답변이나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총선 참패 엿새 뒤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밝힌 '정책 방향은 옳은데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시각에서 전혀 변한 게 없었다.
대통령실은 영수회담 뒤 의료 개혁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이 대표는,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의료진의 즉각적인 현장 복귀, 공공·필수·지역의료 강화라는 3대 원칙에 입각해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것을 '이 대표가 의료 개혁의 원칙에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두루뭉술하게 해석했다.
의료 개혁은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원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얼마나 증원할 것인가 하는 각론이 핵심이기 때문에 '원칙적 합의'란 말은 하나 마나 한 말이다. 워낙 합의한 것이 없으니까, 이것이라도 끌어들인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이재명 대표가 '피의자 신분'이란 이유를 내세워 만남을 회피해 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번에 만나려고 한 것 자체를 '선물'로 생각한 것 같다. 또 만남을 내세우며 소통에 힘쓰는 모습을 과시하려고 한 듯하다. 의제와 의전 등을 논의하는 준비 회의를 질질 끌다가 민주당 쪽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나는 소통하려고 했는데 민주당이 까다롭게 굴어서 무산됐다'고 책임 전가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윤 대통령 쪽의 기획은 민주당에 두 번이나 되치기당하면서 실패로 끝났다. 오히려 불통 인상만 커졌다. 우선, 이 대표가 지지부진한 준비 회담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만남을 앞세우는 태도로 나오면서 책임 떠넘기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다. 총선 패배 뒤 이 대표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던 윤 대통령이 주도권을 내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대표는 회담 전의 의례적인 덕담이 끝나고 대통령실이 카메라 기자를 내보내려고 하는 순간, 주머니에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15분간 읽어 내려갔다. 총선에서 나온 민심을 요약한 요구 사항들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이런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 웃음기 띠었던 얼굴이 갑자기 잿빛으로 바뀌었다.
어쩌면 윤 대통령이 기획한 '소통 쇼의 파탄'은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에서 예고됐다고 볼 수 있다. 정 실장은 비대위원장 시절인 2023년 1월, 이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야 수뇌 회담을 제의하자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반대한 적이 있다. 여야 수뇌 회담을 목전에 두고 이런 전력이 있는 사람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건 제사(회담 결과)보다는 잿밥(소통 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미리 암시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두 수뇌의 회담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만남은 앞으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다. 단적인 예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이다. 이때도 윤-이 회담처럼 두 정상은 의제 조율도 없이 회담했고 서로 엇갈린 얘기만 했다. 윤-이 회담도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가장 중요한 열쇠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다.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소통하는 척하는 데서 벗어나 진심으로 총선 민심을 받드는 태도로 돌아서지 않는 한 이재명 대표도 민심을 거스르며 회담에 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윤 정권이 2년 동안 해온 정책의 대전환을 바라는 민심이 그런 회담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