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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시대 전환과 하나님의 최신 움직이심
인간 역사(Human history)에는 여러 큰 시대적 또는 역사적인 전환들이 있어 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성한 역사 (Divine history)에서도 시대적 전환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시대의 전환은 하나님의 최신의 움직임 때문이며, 또한 최신의 움직임을 위한다. 영적 시대 전환은 어떨 때는 비밀스럽게 오고 어떨 때는 공개적으로 오기도 한다. 이 지면을 빌어 영적 시대 전환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활을 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오늘날의 움직이심에 함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1. 창세기에서의 시대의 전환
창세기에서는 몇 번의 전환이 있어 왔다. 창세기는 시대 전환의 씨앗들이 뿌려진 책이다. 이 책에 기술된 시대 전환을 안다면 오늘날도 어떻게 전환이 되어 가는지를 배울 수가 있다.
a.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지어졌다 (창 1:26-28). 그가 먹어서는 안되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먹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은 가죽 옷을 준비하셔서 입혀 주셨다 (창 3:21). 이것은 하나의 전환을 의미한다. 가죽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짐승이 죽어야 한다. 이것은 분명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한다. 아담이 만들어진 후 바로 그리스도의 구속이 예견된 것이다. 아담은 죄를 지었고, 죄를 세상으로 가져온 첫 사람이 되었다 (롬 5:12). 그러나 그리스도는 죄를 세상에서 가져가실 다른 한 사람,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 (요 1:29, 롬 5:8, 고전 15:45하). 아담 시대에 한 번의 시대 전환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담의 시대에서 이런 전환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하는 가죽옷을 입었어야 했고, 아벨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증표인 가축의 희생제물을 여호와께 드렸어야 했다. 그 당시의 희망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가인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전혀 관련이 없는 농산물을 여호와께 드렸다. 그는 천연적이였고 시대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였다. 그는 잘못된 사람이었고 잘못된 제사를 드렸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다리는 것이 옳고, 이런 행위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b. 노아 시대는 더욱 더 죄가 확산되고 사람은 더욱 타락하게 되었다 (창 6:5, 7). 그리고 폭력이 난무했음을 본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런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로 전환하시고자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 종류와 천사의 생명이 섞인 네피림이 이 땅에 퍼지는 것을 막고 그들의 죄악을 끝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통치 체계를 세우시고자 하신 것이다.
노아의 시대는 생명의 혼합이 있었다 (창 6:1-4). 하나님은 혼합된 생명을 싫어 하신다. 제 3의 생명이 이 땅에 나타나는 것을 용납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종류가 다른 생명을 섞고 싶어하시지 않는 분이시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첫 번째로 한 일은 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드린 것이였다 (창 8:20). 번제를 드린 것은 시대의 전환의 표이다. 아담의 가죽옷보다 더 전진된 구속의 예표이다.
통치의 방면에서도 전환을 하셨는데 대표 권위를 이 땅에 세우신 것이다. 노아 이전에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통치하거나 다스리지 않았다. 아담이나 셋도, 에노스나 애녹도, 무드셀라도 다른 이들 위에 통치자로 주시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노아 이후에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도하고 통치하는 것을 본다. 노아는 노아 가족의 대표 권위였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권위까지도 얻게 되었다 (창 9:25-17). 그는 비롯 술에 취해 실수를 했지만 대표권위를 사용하여 합당한 통치를 한 것을 본다. 자신은 실패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대표 권위의 행사에 있어서는 좋은 본을 보였다. 그가 대표 권위를 사용하는 것까지도 실패했다면 그는 완전히 실패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죄인이 다른 사람의 권위 아래 들어가 사는 것은 더 많은 죄를 짓는 데서 보호를 받게 된다. 남의 권위 아래 들어가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타락을 했다는 증거이다. 이는 죄인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통제이며 보호이고 또한 저주이다. 그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생활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권위에 들어가 자신이 제한받는 생활을 살았어야 했다. 오늘날 정부나 사회는 대표 권위를 갖고 사회나 국가나 국민을 보호한다.
노아 시대에 이런 전환에 맞추어 살려면 사람은 반드시 노아의 대표 권위 아래에 들어가야 한다. 오늘날도 많은 권위를 우리 위에 주셨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는 권위가 없다고 하셨다. 우리의 의무는 그런 대표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대표 권위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우리의 참 권위이신 주님께 결코 순종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노아 시대에 세우신 하나의 통치적인 전환이다.
우리는 우리 존재 안에 죄의 본성이 있다는 것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죄의 본성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타인이 대표 권위로 우리 위에 있다는 것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있는 권위들, 정부의 권위, 가정과 교회에서의 권위들은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위들이다. 이는 우리가 방자해짐과 더욱 죄짓는 것에서 보호를 하기 위함이다.
c. 아브라함은, 이삭과 야곱과 요셉이 포함하여, 부르심 받은 새로운 족속이다 (창 12:1-3). 노아의 후손이 또 타락을 하자 하나님은 새로운 출발을 가지신다. 이제 창조된 족속을 포기하시고 부르심 받은 믿음의 족속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 아브라함을 포함한 이삭과 야곱의 일생은 부르심 받아 나온 새로운 족속의 새로운 생활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히 11:8-22). 그래서 그들은 믿음의 족속으로 불리워진다. 그들은 이 땅에 살았지만 사실은 하늘에 속한 족속의 표징이었다. 그들은 여러 곳에서 제단을 세워 제물을 여호와께 드렸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받은 것은 씨와 땅이었다. 그들의 제단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희생제물을 여호와의 만족과 음식이 되시도록 드렸고,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을 상징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렸으며 그분을 찾았고, 개인을 통한 대표권위의 다스림을 보게 되며 또한 오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씨와 땅을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본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씨와 열조에게 약속하신 씨는 이삭 및 그들의 혈육의 후손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말한다 (갈 3:16).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이고 소망임을 성경의 지속적인 계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소망일 뿐만 아니라 온 만물의 바라고 고대하는 소망이다 (롬 1:4, 8:19).
땅은 또한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또한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가 하나님을 분깃으로 나누어 누리는 우리의 몫이다 (고전 1:2, 골 1:12). 그리스도는 우리가 경작할 땅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가야 할 그 땅이시다.
씨는 우리 안으로 들어 오실 그리스도를 말하고 땅은 우리가 그 분 안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이심을 말한다. 이것은 신약에서 말하는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고 우리가 그분 안에 거하는 연합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상은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가 아니라 서로 연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꿈이라고 판단된다. 이 꿈을 우리에게 설명하시기 위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깊은 계시라고 생각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인성과 신성의 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깊은 사상은 씨와 땅이라는 계시에서 이미 암시를 주셨다. 그리고 요한 복음 17장에서 충분하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셨다.
이 세 인물을 통해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더 깊고 세밀한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더 계시하셨음을 보여 준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한 단계 더 전환하여 보여 주신 것이다. 시대의 전환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의 전진된 전환이라고 보아도 된다.
아담에게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노아에게서는 그리스도의 구속뿐만 아니라 대표권위를 세우는 것을 본다. 아브라함의 족속으로부터는 부르심 받음과 제단에서 번제물을 드리는 것과 씨와 땅에 대한 약속을 본다. 시대가 전환될 때마다 전진적으로 그리스도와 가까워지는 것을 본다. 점진적인 시대의 전환은 점진적인 하나님의 목표의 계시 및 성취를 말하고 점점 더 목표에 다가가고 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시대의 전환을 통하여 이루워진다.
2. 출애굽기에서
모세의 시대는 개인적인 사람이 아닌 한 무리, 한 민족을 만들어 한 간증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시대적인 전환이다. 창세기에서는 개별적인 세 사람을 통하여 한 단체적인 사람의 그림을 보여주셨으나 출애굽기는 실제적으로 한 민족을 보여 주신다. 출애굽기는 개별적인 사람의 시대에서 단체적인 시대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출애굽기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백성과 장막이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구별되어 그 땅으로 인도된 것은 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장막을 지어 번제물을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었다.
출애굽기에서 더욱 선명하게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보여 주신다.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를 더 선명하게 보여 주신다. 출애굽기의 그리스도는 개인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단체적인 그리스도를 계시한다. 개인의 그리스도란 그리스도 한 분을 말하지만 단체적인 그리스도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작은 그리스도, 모든 믿는 이들을 포함하여 말한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는지를 보여주고 장막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장막은 먼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장막은 사람이 그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공급과 풍성으로 누리는 것을 말한다. 장막 안에는 떡(생명 공급)과 금등대잔(빛 비춤)과 돌비(하나님의 율법)과 감추인 만나 (더 깊은 하나님에 대한 체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 (부활 생명)가 있다. 이 모든 항목들은 우리의 누림을 위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갈 수 있는 그 땅이며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장막이다. 사실 장막이 땅이며 장막과 땅은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또한 장막은, 특히 장막의 중심부분인 지성소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말한다. 장막은 세부분으로 된 사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막뜰은 사람의 육체, 성소는 사람의 혼, 지성소는 사람의 영과 같다. 지성소 안에는 법괘가 있다. 법괘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법괘 안에는 금항아리가 있다. 금항아리는 아버지를 말한다. 금항아리 안에는 돌비와 김추인 만나와 싹난 아론의 지팡이가 있다. 이들은 다시 그리스도를 말한다. 즉 사람의 영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리스도 안에는 아버지가 계시며 아버지 안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계시한다. 이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서로 안에 거함의 계시’를 정확히 설명한다. 그리고 장막은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확장인 단체적인 그리스도 즉, 참된 교회에 대한 정확하고 분명한 계시를 보여준다.
창세기에서 보여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인성과 신성의 연합은 장막을 통해 더 분명하게 알게 된다. 이런 연합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이고 그분의 영원한 갈망임을 알게 된다. 신약에 사는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갈망을 분명히 보아야 하고 그 갈망과 하나되는, 동일한 마음의 갈망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어야 한다. 이 꿈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이 만물이 고대하는 바이다.
만물을 볼 때에 그들 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나타나는 것을 고대한다는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집에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볼 때도, 그들이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롬 8:19). 그들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나 이 시대를 종결하고 세 시대를 여는 것이다. 그 시대에서는 그들도 더 이상의 허무한 것들이나 죄악들이나 사망이 없기 때문이다.
3. 사무엘 시대에서
사무엘 시대는 사사 시대에서 왕의 시대로 전환된 시기이다. 사사들은 제 멋대로 살던 시대를 말한다. 왕의 시대를 그리스도가 참된 왕이 되어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사무엘이 세운 왕의 주요 업적은 그 땅을 확장하고 왕권을 이 땅에 견고히 세우는 것이고, 확장되고 견고한 성전을 짓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더 확고하게 말하고 있다.
사무엘 시대에서의 시대 전환은 확고한 교회 생활을 분명하게 말한다. 그런 교회 안에는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다스리고, 그리스도를 분투하여 더 얻어 확대하며, 그리스도와 유기적으로 더욱 연합하는 생활을 말한다. 성전은 장막의 확장이다. 왕권은 노아의 대표 권위의 더욱 확고한 확장이다. 전쟁으로 얻은 그 땅은 우리가 우리의 누림으로 얻는 그리스도를 더욱 분명하게 묘사한다.
왕권 시대로의 전환은 단체적인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더욱 분명한 계시를 알려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움직이심은 시대 전환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전진되어진다.
4. 느헤미야, 학개, 에즈라, 여호수아, 스룹바벨 시대
확고하게 세워진 왕권 시대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후 70년 후 부분적인 회복이 일어난다. 이런 회복의 시작은 다니엘의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단 9:2-3). 당시 포로 생활에서 회복된 무리는 소수이다. 소수가 그 땅과 그 성으로 회복되어 하나님의 간증은 지켰다.
바벨론에 머물러 있는 자들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고 포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차이는 돌아온 자들은 하나님의 간증을 지키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익을 위하여 성과 성전을 재건하고 싸우는 자들이다. 남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간증을 지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잡혀간 바벨론은 바벨의 연속이고 동일한 이름의 다른 언어일 뿐이다. 이런 포로됨은 모세가 예언한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신 30:3). 바벨은 바벨탑으로 유명하고 언어가 갈리는 사건을 초래한 도시이다. 그리고 바벨의 뜻은 혼돈과 분열을 뜻한다. 언어가 서로 달라지면서 혼돈이 왔고 혼돈 이후에 분열이 왔다. 바벨론은 바벨의 발전이고 연속이며 확대이다. 오늘날은 확대된 바벨론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는 로마 시대라고 하지만 더 엄밀히 말하면 로마의 근원은 바벨론이므로 바벨론 시대이다. 로마 문화는 바벨론 문화의 확대이고 확장이다. 로마는 바벨론의 혼돈과 분열의 연속이자 확장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혼돈과 분열의 시대이다.
성경에서 바벨론은 물질적인 바벨론, 정치적인 바벨론, 종교적인 바벨론으로 분류된다. 종교적인 바벨론만 언급한다면 오늘날은 분명히 바벨론의 확장이고 발전임을 볼 수 있다. 종교적인 바벨론에는 끝없은 혼돈이 존재하며, 거듭되는 분열이 있다.
바벨론에서 회복되는 시대적인 전환은 오늘날 어떻게 우리가 체험할 것인가는 우리에게 과제로 남아 있다.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느헤미야, 여호수아, 학개, 에즈라, 스룹바벨의 일과 생활에 동참하는지 각자 주님께 묻고 구해야 한다. 성경에서 계시된 것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사무엘 시대의 전환이 성취되었다면 이들 시대의 전환도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지금 어느 한 쪽에서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주위에 오늘날의 회복된 자들이 있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이런 회복의 노선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오늘날의 회복된 자들을 찾아야 한다. 느헤미야는 회복된 대표 권위, 학개는 회복된 선지자, 여호수아 회복된 제사장, 에즈라는 회복된 교사, 스룹바벨은 회복된 왕권을 말한다. 회복되기를 갈망하고 회복의 노선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바벨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시를 받아 조망을 갖어야 하며 이들을 통한 회복의 이상을 보아야 한다. 이상과 계시가 없는 회복의 운동은 그저 운동일 뿐이다.
5. 신약에서의 시대적인 전환
신약에서는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큰 걸음을 걸으셨다. 큰 걸음은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 승천을 포함한다. 하나님이 주 예수님 안에서 사람이 되신 것은 하나님의 큰 움직임이고 깊은 목적과 뜻이 있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의 성육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큰 움직이심이다.
하나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실 때 마다 그분의 갈망하신 마음의 뜻이 한 단계 한 단계 성취되어 간다. 애녹이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했듯이 신약의 믿는 이들의 그분이 움직이실 때 동행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 매우 값진 삶을 사는 것이다. 누구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 어떤 이들은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어떤이들은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많은 이들은 큰 의미 없이 사용된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들은 그분의 최신의 움직이심에 함께 함으로 쓰임 받았다.
a. 주 예수님이 하신 시대 전환은 엄청난 전환이다. 율법에서 은혜로 전환되었다. 구약에서 신약(새로운 언약)으로 전환되었다. 짐승과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리던 시대에서 주 예수를 참제물로 드리는 시대로 전환되었다. 신약은 물질에서 믿음으로 전환되는 시대가 되었다. 물질적인 이스라엘에서 영적인 참 이스라엘로 전환되는 시대로 되었다. 물질적인 장막이나 성전은 주 예수와 교회로 전환되었다. 선지자들 위에 임하기만 하셨던 하나님의 영은 제자들, 믿는 이들 안으로 들어오시는 유기적인 연합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문자의 율법 시대에서 보이지 않는 심비에 새겨진 성령의 시대로 전환되었다. 메시야를 기다리는 시대에서 오신 메시야 시대, 사람 안에 들어오신 메시야 시대로 전환되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모든 적극적인 것들의 실제로서 그분은 왕이시고, 대제사장이시고, 안식일의 주인이시고, 그 씨와 그 땅이며 주와 그리스도이시며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고 다른 보혜사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신랑이시고 선생이시고 의사이시며 푸른 초장과 목자와 문이시다. 이 밖에도 이 한 분을 통하여 많은 전환들이 있었다.
오늘날 믿는 이들은 구약에서 신약으로 무슨 항목들이 전환되었는지, 전환을 통하여 없어진 항목들이 무엇인지, 강화된 항목들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안식일과 활례는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과 내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매우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혼돈과 분열 속에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즉, 바벨론의 연속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만일 어느 누가 시대 전환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늘날, 죄를 씻기 위해 황소나 양을 제물로 바친다면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구원 받기 위해 짐승의 가죽옷을 만들어 입는다든지, 노아의 방주를 짓는 것과 같은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날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의식적인 할례를 받는다든지 어떤 요일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오늘날 참 믿는 이들은 시대가 어떻게 전환되었는지 알아야 하고 그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b. 사도 시대는 육신 안에서 계셨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제 부활하시어 그 영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시대이다. 하나님은 먼저 육신 안에 계셨던 예수님 안에서 말씀하시고 일하셨으며 사도 시대에는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사람 안에서 말씀하시고 일하시는 시대로 전환 되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하여 성육신의 원칙에 따라 일하신다. 이천년 전에는 한 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사셨지만 지금은 많은 믿는 이들 안에서 사시고 말씀하시고 행하신다. 이것은 사도 시대 이후의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원칙이다.
c. 암흑시대: 콘스탄틴 대제가 기독 신앙을 국교로 인정하면서(AD313년) 외부의 핍박이 제거되자 기독 신앙은 하향길을 가게 된다. 이런 하향길은 200여년 동안 지속되다가 급기야 암흑 시대로 접어든다. 영적인 암흑 시대란 교회의 하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없어지고 말씀이 닫힌 시대를 말한다. 약 천년 동안 암흑 시대가 지속된다. 이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과 같으며 성령의 시대가 아니라 사람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d. 종교 개혁 시대: 일반적으로 종교개혁 시대라고 불리우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진리의 회복 시대로 표현하고 싶다. 진리의 회복 시대는 영적 거인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암흑 시대 동안 닫혔던 성경을 열어서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 성경 말씀을 번역하고 해석하여 모든 이들에게 말씀을 접할 기회를 갖게 했던 시대이다. 이 시대의 주님이 하신 일은 많은 영적 거인들을 일으켜 성경의 진리들을 하나 하나 밝힌 것이다.
주님의 마음은 모든 이들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딤전 2:4). 영적 거인들은 이 일을 충분히 해냈다고 본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 진리를 시작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많은 방면의 진리들, 그리고 교회와 왕국과 새예루살렘에 관한 진리들을 밝혀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 구원론, 거룩케됨, 변화됨과 생명의 체험등과 같은 항목들을 상세하고 정확하게 밝혀냈다. 그리하여 이런 진리들을 토대로 많은 믿는 이들이 생겨났고 또한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시대를 통하여 교회가 분열되고 많은 이름으로 나누워지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고 믿는다. 영적 거인의 시대의 폐단은 정치적인 요소로, 국가라는 태두리로, 영적 거인이라는 인물 중심으로, 교리나 실행에 의해 많은 다른 교회들이 세워져 분열적인 실행을 하게 된 것이다. 영적 거인들은 주님에 의해 사용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많은 영적 업적을 남겼다. 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저나 여러분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영적 폐단은 실로 작은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한 단체적인 사람,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한 간증을 말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시간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하여 얻고자 하신 것은 한 진주, 한 등대, 한 백성, 한 신부/아내, 한 교회, 한 몸, 한 장막/성전이다. 이 모든 것은 교회의 다양한 방면들이다. 만일 주님이 이 땅에서 시간이라는 일시적인 통로를 통하여 얻고자 하신 것을 얻었다면, 이 우주를 재편성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무한한 영원 안으로 전환하실 것이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시기 위한 임시적이고 일시적인 환경일 것이다. 그분의 목표가 얻어지면 그분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라는 일시적인 것들을 떠나 다시 영원 안으로 그 진주와 함께 들어가실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그분의 마음의 갈망을 성취하시기 위해 시간이라는 환경을 만들어 나오시고 많은 시대들을 만들어 점진적으로 그분의 목표 성취에 접근해 가고 계시며, 그 목표가 완전히 성취되면 그분은 성취물과 함께 영원 미래 (eternity future)로 다시 들어 가실 것이다.
이제까지 제가 본 바에 의하면, 영적 거인들의 역활은 충분히 이루워졌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성취할 발판은 형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발판의 역활이 완성되었으므로 그분은 다른 단계로, 다른 시대로, 다음 단계로 전환하실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제가 그동안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영적 서적들을 추구한 것들의 종합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음의 시대 전환은 영적인 거인의 시대가 아닌 마지막 목표를 이루시기 위한 시대가 될 것이다. 이 시대는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 자신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단계일 것이다 (마 16:18). 주님은 이 시대에 이 땅에서 반드시 그분의 한 교회를 세우실 것이다. 이 교회는 건축된 교회일 것이다. 다음 시대로의 전환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영적 거인의 시대가 아니고 많은 밀알이 떡으로 되는 시대일 것이다.
e. 몸의 시대로의 전환 (건축된 지체들의 시대)
20세기에 들어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진리가 계시되기 시작하였고 몸의 생활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으며, 또한 몸의 건축이라는 진리가 가르쳐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몸이 서서히 건축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21세기에 들어 와서는 이런 움직임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물론 제가 사람이기 때문에 확신을 하거나 장담을 할 수는 없다. 단지 느낄 뿐이다.
자, 몸의 시대로 전환되었다는 말은 작은 말이 아니다. 몸의 시대로 전환되었다는 말은 영적 거인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실로 오늘날 기독교의 상황을 보면 영적 거인들이 끝난 것이 확실하다. 오스틴 스팍스나 다른 영적 거인들이 세상을 떠났고, 대형교회의 실행을 선두했던 한국의 조용기 목사가 영적인 영향력이 잃었으며, 미국의 크리스탈 교회, 한국의 사랑의 교회등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이 하향길을 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영적 거인들이 한결같이 하락의 길을 가고 있다. 지금은 제가 배우고 싶은 영적 거인이 없는 것 같다. 제가 교만해서가 아니고 (사실 저는 교만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영적 거인의 자질은 갗춘 분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이제 영적 거인의 시대는 끝이 났다.
영적 거인의 시대가 끝이 났으므로 기독교 안에 있는 많은 성도들은 방향을 못잡고 있으며, 그들은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마치 사사 시대로 되돌아온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소견대로 행동한다. 많은 이들이 왕을 잃은 백성과 같이 산다. 이 모든 것은 영적 거인의 시대가 종결된 현상들이다. 세상은 기독교회들의 평가를 갈수록 부정적으로 한다. 그리고 개신교 신자들의 숫자는 줄어가고 있다. 이는 기독교계 안의 영적 거인이 끝나고 시대가 이미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는 현상같다.
기독교의 하락은 주님의 주권적인 역사라고 생각되며, 첫번째 현상은 영적인 것이나 영적인 사실을 물질적인 것으로 대치하는 것이다. 축복이 대표적인 예이다. 신약에서의 축복은 일관성있게 영적 축복을 말한다. 그러나 기독교계 안에 전반적인 인식은 물질적인 축복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하락의 첫 요인이다. 두번째는 영적 거인들이 사라진 것이다. 굳이 세번째를 들라고 하면 기독교계에 있는 영적 혼합이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시대 전환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저는 오래 전부터 시대는 전환되어 가고 있다고 보았고 믿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에게는 이상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두 시대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사 시대와 왕의 시대가 공존하지 않는다. 침례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은 공존하지 않는다. 신약 사역 시대에는 구약의 사역과 함께 공존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면 옛시대는 끝나는 것이 성경의 전례들이다. 몸의 시대가 도래했다면 영적 거인의 시대는 끝나는 것이다. 다만 대다수 기독인들이 모를 뿐이다.
영적 거인의 시대란 무엇일까? 영적 거인이란 한 사람이 많은 영적 능력과 권위와 제량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고 개인적이고 단독적인 원칙으로 일하고 사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영적 거인을 중심으로 성직자 제도가 자연스럽게 생겨났고 종교제도가 생겨난 것이다. 소위 교회 안에 상하 관계가 형성되고 인간적인 조직이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영적 거인이 존재하면 교회는 건축될 수 없다. 교회가 건축되기 위해서는 성지자 제도나 인간적인 제도가 제거되어야 한다. 이럴 때 유기적인 교회가 사랑 안에서 성령에 의해, 조직적으로가 아닌, 유기적으로 건축되기 때문이다. 교회 건축은 영적 거인을 끝내고 많은 지체들을 세우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다.
몸의 시대란 그리스도 몸 안의 있는 모든 지체들이 기능을 발휘하고 살아 있는 지체들이 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은, 전문적인 기능을 발휘하는, 특정 임명된 조직이 없다는 뜻이다. 즉 조직이 있는 한 몸은 없다는 말이다. 이는 엄청난 기독교의 개혁과 혁명을 요구한다. 아마 이는 기독교계 안에서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몸의 시대는 먼저 많은 밀알들이 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 밀알들이 부드럽게 갈리어 하나의 떡이 되는 생활과 삶이다. 몸의 시대에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잘 익은 밀알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 잘 익은 밀 알들을 십자가를 체험함으로 자아가 파쇄되고 잘리어 다른 이들과 건축되는 것이다. 몸의 시대란 모든 중심 진리들이 회복이 되고 진리가 실행되는 것을 말한다. 즉 진리를 사는 자들, 살아 있는 진리를 갖고 있는 자들이 있어야 가능하다.
몸의 시대에는 서로 같은 레벨에서 서로 형제라고 부를 것이며 어떤 조직체의 실행은 사라질 것이다.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길 것이며 다른 이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사는 자들일 것이다. 이들은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의 영적 복지 (other’s spiritual welfare)를 생각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사람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기독교보다 성경에 계시된 교회를 더 사랑하고, 목사나 총회장의 호칭보다 형제라는 호칭을 더 존중하는 이들일 것이다. 이들은 각 지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머리되심을 존중하며 각 자 안에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때문에 각 지체들을 그리스도로 여길 것이다. 이들은 인간 존중이 무엇인지를 참으로 아는 자들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워지길 바라기 때문에 언제든지 순교할 준비가 되어 있고 자기의 혼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다. 이들은 종교 조직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어린양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는, 주님과 긴밀히 연합하여 사는 자들이다. 이런 무리가 이 땅에 반드시 생겨날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생활을 사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 그분이 무엇을 얻고자 하시는지를 분명히 아는 자들이고,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 자들이고, 건축을 위하여 종교적인 바벨론을 떠나 몸 안의 생활로 회복된 자들이다. 아는 것이 먼저고, 떠나는 것이 뒤따라아야 하고, 그리고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자들이 이 시대, 새로운 시대에 사는 이기는 믿는 이들일 것이다. 분명 전환된 시대에 동참하는 것은 희생이 필요하다. 자신을 부인해야 하고, 자신의 미래, 자신의 과거의 성취들을 버려야 하며, 자신과 맞지 않는 많은 다른 지체들과 섞어야 한다. 이는 문화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 생각과 생활의 변화를 요구한다. 즉, 자신 안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새 시대에 들어갈 수 없다.
사실 영적 거인이 소위 교회를 이끄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들의 조직이 조직적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동일한 목표와 동일한 뜻을 가지고 한 가지를 수행해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몸의 시대에 주님은 이 일을, 건축되고 섞인 지체들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인간 조직이나 종교 조직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몸이라는 유기적인 조성체를 통하여 주님은 당신의 목표를 성취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걸작품이시다 (엡 2:10 원문).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일이다.
6. 교회 시대 이후에는
교회시대 이후에는 천년간의 왕국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왕국 시대는 만물이 회복되는 시대이다. 사탄과 적그리스도가 제거될 것이며 죄악이 떠나고 모든 불의가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왕국 시대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이다. 이 땅에서 믿는 않는 자들도 영생을 갖지 못하지만 열국 백성으로 회복될 것이다. 이스라엘 중에는 이기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신약의 믿는 이들이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이 시대에는 믿는 이들이라고 다 동일한 것은 아니다. 이들 가운데도 이기는 자들과 그렇지 않는 자들로 있을 것이다. 각 시대마다 이기는 자의 무리에 들어간 자들은 왕과 같이 다스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왕국 시대에 사람이 어떤 부류에 들어갈 것인지는 이 시대에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냐에 달려 있다. 시대가 전환되었는데 여전히 구 시대에 산다면 분명 그는 이기는 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에는 몸의 시대로서 몸의 생활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실제적으로 건축하는 이들이 이기는 무리에 들어갈 것이다.
왕국 시대가 끝나면 현저한 시대 전환이 있을 것이다. 옛 땅과 옛 하늘은 사라진다고 하였다.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은 새 예루살렘이 될 것이다.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으로 구성된 하나님과 사람과의 연합체일 것이다. 이것은 신성과 인성의 연합체, 살아 있는 영적이고 인간적인 최고의 인격체일 것이다. 하나님은 안식하시고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하나님을 표현하고 다스리는 생활을 할 것이다.
7. 맺는 말
시대 전환은 크리스챤들께 큰 주제인 것같다. 그리고 큰 도전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다. 노아의 시대처럼 교회 안에 성경적인 것과 세상의 것이 함께 존재하는 두 생명의 공존하는 면이 있으며, 바벨 시대처럼 혼돈과 분열이 존재하며, 사사 시대처럼 각자의 소견대로 생활하는 면들도 있다. 오늘날의 우리의 상황은 바벨론에 포로된 생활이며 참된 유기적인 교회 생활을 보기 쉽지 않다. 제가 본 것들이 맞다면 시대는 이미 전환된 것이고, 저의 바램이 있다면 많은 이들이 새 시대로의 전환에 동참하기를 바랄 뿐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갈수록 성도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교리가 난무하고 사랑이 식어 분열은 가속화될 것이다. 기독교는 갈수록 하향길을 걸을 것이다. 이름 있는 유명한 목회자들은 지속적으로 하향길을 가게 될 것이다. 질과 양의 모든 방면에서 하락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반드시 새 시대에 새로운 무리를 일으킬 것이다. 이들은 익은 많은 밀알들로서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고운 가루로 갈려져 한 떡으로 건축되어 가는 자들일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에서 회복된 자들이 소수였듯이 이들도 아마 소수가 될 것이다.
몸의 시대로 전환되었다면 영적 거인의 시대는 종결되어야 하고 소수가 다수 위에 앉는 시스템은 종결되어야 한다. 두 시대는 결코 공존하지 않는다. 주님은 두 갈래로 역사하시지 않으셨다. 그분은 항상 한 흐름, 한 갈래, 한 길로 걸으셨다. 저는 어떤 특정 무리가 이 땅에 있다고 선전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런 무리를 얻으셔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저는 그런 무리에 속하길 결정했다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저처럼 이런 각오를 가져주실 것을 당부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글쓴이 주) 이 글을 많은 추구하는 믿는 이들을 위해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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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정말로 추구하는 믿는 이들에게 줄려고 작성한 글입니다. 저의 지인인 어느 집사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지금 기독교는 성령님께서 떠나 가셨다". 이런 분들께 이 글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그들도 시대가 전환되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게 하게 위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