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서 남편이 필요한 10가지 이유
첫째, 나이가 들면 등이 가려워진다. 올해 들어 유난히 등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노화의 증거? 손을 뻗어 겨우 등을 긁어보지만, 영 시원하지 않다. 또 효자손이 있지만 등을 긁어주는 남편의 서툰 손만 못하다. 그래서 등이 가려우면 남편 생각이 난다. 남편도 등이 가렵다며 긁어 달라할 때 나름 재미가 있다. 같이 늙어가는 그 느낌이.
둘째, 나이가 들면 산책은 필수다. 몸이 둔해지면서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 나에게 최고의 운동은 산책이다. 산책을 혼자 하는 건 정말 싫다. 남편과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이 편안하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소화도 시키고, 바람도 쐬고. 그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은 어느 것과도 바꾸기 힘들 거다.
셋째, 나이가 들면 집안을 돌볼 손이 필요하다. 이번 겨울 창틀에 생긴 곰팡이들을 못 본 척 지냈더랬다. 거기까진 여력이 닿지 못해서. 주말마다 남편이 곰팡이들과 사투를 벌이며, 청소를 했다. 결로 부위를 손보고, 곰팡이 제거제로 닦았다. 무선 물걸레로 집 청소도 하고. 그렇게, 주말이라도 집안을 돌보는 남편이 있어 든든했다. 앞으로 더 손가는 곳이 많아질 텐데, 다행이다.
넷째, 나이가 들면 비슷한 노화현상으로 서로를 더 의지하게 된다. 모두 안경을 쓰는 우리 부부, 작은 글씨가 안 보여 고개를 빼니 남편이 한마디 한다. '그냥 안경을 올려, 자 해봐!' 슬프지만, 사실이었다. 안경을 벗고 글씨를 보니 더 잘 보였다. 최근에는 각종 영양제를 사다 주기 시작했다. 온갖 유튜브 박사님들의 조언에 힘입어 자신의 것과 내 것을 함께 챙기기 시작했다. 고맙다. 챙겨줘서. 남편이 아니면 누가 챙겨줄까 싶다. 열심히 회사를 다녀야겠다.
다섯째, 나이 들면서 남편의 아재 개그 덕분에 웃는다. 이제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남편의 아재 개그. 아이들의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에도 난 웃게 된다. 며칠 전 남편이 딸아이 방에서 방귀를 뀌었더랬다. 너무나 익숙한 사운드. 방귀대장 뿡뿡이인 남편. 그날 딸아이의 짜증스러운 외침 '아빠~~!!'에도 당당한 남편의 대답 '이 방에서 너만 방귀를 뀔 순 없어!' 정말 빵 터졌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고맙다. 그렇게 웃게 해 줘서.
여섯째. 나이 들면서 편히 술 한잔 할 친구가 집에 있다는 게 좋다. 자꾸만 사람을 만나려, 시간을 내고 외출 준비를 하는 게 귀찮아진다. 또 타인의 일정과 상황이 걱정되는 나이가 되다 보니, 그냥 남편이 편하다. 술 취향도 어느덧 비슷해져 버린 우리. 안주에 따라 와인도 먹고, 치맥도 하고, 막걸리도 마신다. 그 편안한 술자리가 너무나 좋다. 남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맞춤형 술친구다.
일곱째, 나이 들면서 늘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다. 커피 취향도 같다. 따뜻한 카페라테. 매주 주말 남편과 스타벅스에 간다. 사이렌 오더를 하고서. 커피숍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하고, 커피를 들고 산책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도서관에 가 공부를 한다. 그 모든 활동의 시작은 커피다. 남편이 없을 때는 카페에 가지 않는다. 집에서 그냥 캡슐 커피를 마신다. 혼자 가는 카페는 익숙하지 않다. 낯설다.
여덟째, 나이가 들면서 언제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았던 일,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일, 어느 가게에서 받았던 불친절 그리고 나의 진로 고민 등 어떤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다. 물론 충분한 반응과 위로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마지못해 들어주지만, 뒤탈 없는 남편이라는 존재. 그리고 약 20여 년간 살면서 숙달된 청강 자세. 가끔은 내 편이 돼 주기도 하는 그런 익숙함이 좋다.
아홉째, 나이가 들면서 아픈 데가 많아진다. 별것 아니라도 병원에 같이 가주는 남편이 있어 다행이다. 병원에 가면 보호자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들이 많아지겠지? 젊었을 때는 함께 해주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같이 가주니 그 간 섭섭했던 건 모두 용서하리라 ㅋ 막상 나이가 드니 내 몸 걱정해주는 사람이 남편밖에 없음을 느낀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지만.
열 번째, 이제 곧 둘만 남는다. 아이들이 떠나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둘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롭지 않게 내 옆에 있어줄 한 사람이 남편이다. 20년 지기 친구다. 이 보다 더 익숙할 수 없다. 앞으로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친구가 남편이다. 아직도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지만, 이미 부대끼고 살아오면서 적응됐다. 여전히 날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맞춰오느라 애쓴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더 잘해야겠다. 이제 우리밖에 남지 않을 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