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삼손에게 나타났던 생생하고 강렬하며 기이한 역사들마다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그러한 삼손 뿐 아니라 모든 믿음의 선배들에 있어서, 또한 구약과 신약 성경 속에서, 더 나아가 2000년 교회사,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에 있어서의 크고 작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직접적, 현상적, 실질적으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러한 성령님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분인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중심과 근본과 실체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사실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변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통찰할 때 그 삼손은 오늘날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했던 자가 아닐 수 없는 것으로 다만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이었기에 구약의 다른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면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일 뿐 아니라 그와 같은 방법과 통로로 오늘날의 우리들이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을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이듯이 마찬가지로 삼손 또한 그렇게 죄악들과 싸우며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인데..
바꾸어 말해 삼손에 있어서의 그러한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에 있어 큰 틀에서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다양한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깨어진 반석, 회막, 지성소, 제사장, 선지자,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나 잘 살펴보면 사사라는 위치와 역할 또한 그 자체부터가 아담과 하와 때부터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케 되며 영적으로는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에 빠진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하나님 아버지와 직접적으로 교통할 수 없었던 실정과 현실 속에서 실질적, 실제적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온갖 응답과 역사와 이적들을 생생히 누릴 수 있게 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그와 같은 구주 예수님에 대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에 있어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으로 인한 시대와 나라들을 넘는 모든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또한 그에 있어서의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들에 있어서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본질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러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고, 특히 성령님께서야 말로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기에 삼손에 있어서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 있어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심이 생각 이상으로 중요했고 직결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 삼손은 사사기 13장 3~5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처음부터 구별된 나실인이었던 것으로 포도주를 마시지 말아야 했고 부정한 것도 먹지 말아야 했으며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하는 등과 같이 특별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에 놓인 자였고, 사실상 그 정도까지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심과 함께 그렇게까지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생생하고 강렬하게 역사하셨던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케 하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으나..
실상 사사기 16장 19~20절에서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고, 21~22절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라고 증거되어 있으며, 28~30절에서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들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참으로 삼손의 머리카락이 잘리게 되는 것, 또한 반대로 그 머리카락이 자라게 되는 것 등은 말씀 신앙의 유무, 또는 정도를 암시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상징하는 것으로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누구에게 있어서든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의 모양과 집중, 정도와 강도 등은 직접적인 면에 있어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충만하심에 있어,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에 있어 생각 이상의 기준과 관건과 통로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
(사사기14:6)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9월 4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