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九萬의 호는 藥泉이다.
동해 망상해수욕장 부근에 약천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그곳이 약천의 유배지였다.
1689년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실각하자, 남구만 역시 강릉으로 유배되었다. 저서에 《약천집(藥泉集)》이 있다.
남구만은, 안용복이 일본 에도 막부에게서 울릉도의 조선 영유를 확인받아 오는 쾌거를 이루었음에도 관리 사칭죄로 사형당할 상황에 처했을때 이는 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큰 상을 내릴 행위라고 안용복을 적극 옹호하여 유배형으로 감형하게 해주었다
개그맨 남희석이 남구만의 11대손이다.
남구만은 조설(釣說)에서 낚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
“낚시하는 방법은 가르쳐줄 수 있지만 그 속에 있는 묘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묘리를 깨닫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오늘부터 아침에도 낚시를 하고 저녁에도 낚시를 하면서 온 정신을 쏟아야 한다.
그렇게 오랜 시일이 지나면 손이 저절로 익으면서
깨달을지도 모른다.
다만 지금보다 낚시를 잘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낚시하는 솜씨가 조금 좋아질 수도 있고 많이 좋아질 수도 있는데, 그건 순전히 당신한테 달렸다.”
나는 낚시를 싫어한다. 아마, 스쿠바 다이빙으로 고기를 쉽게 잡아서 그런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