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
홍 목사가 설교대에서 신도들을 향해 기염을 토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고,
거역하는 자는 죄를 짓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이 꼭 해야 할 일을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여러분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새로운 성전을 짓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 성도 여러분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약속드린 성전 신축공사를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나갑시다.
성령이 불붙어 활활 타오르는 교회를 세웁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립시다.”
영수는 시종 눈을 감은 채 홍 목사의
애타는 절규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홍 목사가 은근슬쩍 자신에게 내비치는 속마음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지금까지 교회의 매달 전기세, 수도세에다 때로는 홍 목사의 교통비까지
그의 봉급으로 충당해 왔다.
그는 생각하기를 교회에 내는 헌금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당연한 의무로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영수는 기쁜 마음으로 교회를 도와 왔다.
종숙은 남편의 행동을 빠뜨리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자신의 인내심을 잃어갔다.
이제부터 영수는 실질적으로 교회에 헌금을 내기가 어려워져 갔다.
학교 서무과 일을 그만둔 후로,
자신이 저축해 둔 돈이 야금야금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라져가던 자신의
귀중한 돈에 대해 별 관심조차 없었다.
미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하나님께 헌신하고 기도하는 일에만 신경을 써왔기 때문이다.
다른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볼 의욕도 잃고,
하루 종일 교회에서 성경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인왕산에 올라가 자신이 지정해 놓은 바윗등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곳에서--- 주님이 구름을 헤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즐기며,
식구들의 구원을 직접 간구 할 수 있어 좋았다.
산 아래 풍경은 마치 예수님이 시련을 겪으며 걷던
황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영수는 인왕산을 무척 좋아했다.
그의 영혼은 이미 자신이 믿고 있는 절대자와 혼연일체 되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성전 신축헌금의 거의 전부를
자신 홀로 마련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다시 종숙을 속이려는 궁리를 했다.
그러나 아내의 얼굴 표정을 떠올리자, 기발한 착상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무모한 모험은 영원한 이별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내와의 냉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남편의 신앙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학교일과 사업에만 몰두했다.
종숙의 사업은 순풍에 돛 단 듯 계속 번창하여
남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였다.
그러나 그녀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다는 굳은 다짐을 하였다.
영수는 점점 가정으로부터 소외되어 이방인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아들들조차 그와 함께 대화하기를 꺼려하며 슬슬 자리를 피하는 눈치였다.
영수는 자신의 고독한 심정을 이겨 내려 무진 애를 썼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홀로 빈둥대다 점심시간도 잊은 채
소파에 누워 깜박 잠이 들었다.
백일몽 속에서--- 영수는 천국에 가기 위하여 어느 깊은 산속
높은 바위 꼭대기에 앉아 중얼대며 백일기도 중이었다.
“내일이면 기도가 끝나고 백일승천 허는 날이란 말여.
오늘 하루만 참으면 된당게.“
99일 동안 단지 물만 마시며 버티어온
그의 심신은 너무 지쳐 있었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하늘은 청명하고 솔솔바람은 그의 콧잔등을 간질였다.
영수는 마침내 훨훨 날아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의 영혼은 수억만 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석림 지대를 잠자리처럼 날아 다녔다.
각고의 노력 끝에 영원히 살고 싶은 아름답고 드넓은
어느 거대한 돌기둥을 발견하고, 정상에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돌산 꼭대기를 이미 차지하고 있던 다른 영혼들의 반격이 대단했다.
그들이 소리쳤다.
“여기는 우리들이 영원히 쉬고 있는 아름다운 천국이란 말요.
어서 물러가 다른 곳을 찾아보시오.“
그러나 영수는 꼭 그곳에 내리고 싶었다.
난공불락의 아름다운 천국을 꼭 차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혼자 힘으로는 어림없음을 깨닫고 아쉬워하며 중얼댔다.
“저 높은 곳에 아름다운 교회를 지어놓고 주님께 기도허며
영원히 살고 싶은디·····.“
영수는 잠깐 잠에서 깨어나 무엇을 생각 할 듯 머뭇거리다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색다른 꿈으로 이어졌다.
그는 개척교회의 강대상 밑에 무릎 꿇고 앉아,
홍 목사의 노기 띤 꾸지람을 들었다.
“영수 네놈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기는 다 틀렸다.
너같이 결단성이 부족한 병신 같은 놈을
믿어온 내가 바보였다.
네 마누라 돈지갑은 침대 밑에 있단 말야.
그걸 집어 와야 돼.
하나님의 명령을 이번에는 꼭 지켜야 한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 이 정도의 시련과 각오는 당연한 거란 말이야.“
영수는 깜짝 놀라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밑을 뒤져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다시 침대 여기저기며
베갯속까지 들춰보았지만 돈다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 소파로 돌아오던 중 전화벨 소리가 울려왔다.
춘천에서 살고 있는 동생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영식이는 자연스럽게 그의 형에게 말했다.
“내일이 아버지 제삿날인디 서울에서 형과 만나 같이 내려가야겠구만.
마침 일요일 이니까 오전 열한 시 반에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허지.”
그러자 인국은 격앙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못 내려간다.
제사상 앞에 절 허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된당게.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행동은 절대 헐 수 없단 말여.”
전화기에서 다시 동생의 신경질적인 큰 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지금 무슨 소리를 허고 있는 거여?
월남에서 살아 돌아온 것도 모두 조상님들이 돌봐줘서
무사 혔다고 말 헐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입 싹 씻고 오리발을 내미는 거여? “
영식이가 형에게 극구 사정했지만 허사였다.
결국 영수는 자신의 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앞동산 양옥집에서 난리가 났다.
영길이는 방바닥을 내리치며 분개하고 있었다.
“만고에 몹쓸 놈 !
세상에 이럴 수가 있어?
절 허기 싫으면, 가만히 서서 고개만 약간 까딱 숙이면 된단 말여.?
극락에 계신 아버님이 머라고 허실지 죄스럽구만.“
종숙 역시 제사 지내러 이리에 내려가지 않았다.
제삿날 밤 종숙은 남편을 비웃었다.
“이제는 별 짓을 다 하는군요.
예수를 믿더니 돌아가신 아버님 제사도 몰라보고 아주 안하무인이 됐군요.
절을 않는다 해도 참석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인데,
아주 꼴좋군요.
알아서 하세요. 이제 나 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니깐요.“
영수는 아내의 빈정대는 말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리어 아내를 꾸짖었다.
“부처님 말씀을 수십 년 동안이나 달달 외우고 있으먼서
넘의 종교를 그렇게 비난 혀도 되는 거여?
부처님이 그렇게 허라고 가르치던가?
어채피 당신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걸 가지고
그런 막말을 허면 못쓰지.
하나님을 모독허는 말은 제발 삼가 혔으면 좋겠구만.”
영수는 가슴이 터질 듯한 분노를 삭일 길 없어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개척교회까지 단숨에 도착할 듯,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가 교회에 도착하자 갑자기 눈물이 솟아올랐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울먹이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홍 목사가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기도는 계속되었다.
그는 호랑이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나님께 빌고 또 빌었다.
특히 아내로부터의 이혼 통고를 거두어 주길 힘주어 기도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결국 영수는 기도하던 중 지쳐 쓰러졌다.
그는 다시 기도를 계속하려고 일어나려 했지만,
깊은 실신 상태에 빠져 꼼짝할 수 없었다.
몽롱한 정신 상태의 꿈속에서--- 영수는 인왕산에서 내려오던 도중에 발을
헛디뎌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철버덩”하는 소리와 함께 메스꺼운 구린내가 진동하는
뜨거운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방은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몸뚱이는 깊은 물속으로 계속 빠져 들다 쏜살같이 수면위로 솟아올랐다.
그는 그런 상태로 계속 허우적거리며 몸부림 하고 있었다.
더구나 몸을 담그고 있던 웅덩이가 뜨거운 열기로
부글부글 끓어올라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영수는 목청껏 소리 지르며 구원을 요청했다.
“살려 줘요 ! 좀 살려 달랑게요 !”
그 순간, 어디선가 헤죽헤죽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놈도 참 한심한 신세가 되었구만 !
이 곳에 꽉 차있는 똥물을 이승의 호숫물로 착각허면 큰 오산이랑게.
그런 아름다운 곳이 아니고 끝없이 넓은 지옥이란 말여.
땅위에 사는 인간들이 겁나게 무서워허는 진짜 지옥이랑게 그러네.“
이제야 정신을 좀 차린 영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햇빛도 전혀 없는 어둠침침한 이 곳 똥물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혼들이 아무 말 없이 허우적대고 있었다.
여기 지옥의 영혼들은 대부분 무뚝뚝하여,
그가 묻는 말에 좀처럼 대답 하지 않았다.
한 영혼이 겨우 입을 열어 영수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내가 여기 지옥에 온지도 벌써 이천년이 다 되어 가는 구만·······.
그러니께 뭐냐 우주에 창세기가 열리고 얼마 지나서 일이었지.
에덴동산의 낙원이 무너지고 뜬금없는 죄의 기원이 첫 출발허던 때였어.
나는 아담의 집에서
양치기로 머슴을 살며 되게 괄시 받으며 살았었지.
억수 같이 비가 퍼붓던 어느 날 밤,
바로 옆방에서 아담과 하와가 잠자리에서
한창 재미 보는 소리가 훤히 들려 오드랑게.
이 때가 딱 절호의 기회다 싶어,
부엌으로 달려가 찬장 속에 숨겨 둔 하와의 금화 주머니를
훔쳐 도망 쳤단 말여.
어디선가 “인간이 저지른 못된 죄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회개 하거라“라는 목소리가 메아리 되어 들려 오드랑게.
그럼에도 불구허고,
빗속을 헤치며 무조건 뛰었지.
나도 꿈이 많었던 젊은이였는디,
다시 돌아 갈 순 없었단 말여.
눈앞에 보이던 요단강 건너 가나안이라는 땅에
무화과 밭을 일구는 것이 내 소원이었거든.
와따 !
그땐 세상 살 맛 나드랑게.
돈주머니가 내 손안에 들어오니까 모든 게 내 것처럼 보이드라고.
요단강 나루터에서 막 거룻배를 저어 거슬러 오르고 있었는디,
갑자기 “꽈다당 !” 허고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왠 배락이 내 온 몸을 덮치더란 말여.
그렇게 혀서 이렇게 된 거랑게.“
영수와 마주하며 허우적대던 다른 한 영혼이 그를 나무랐다.
“영수 ! 자네는 유별나게 방정떠는 툼벙질을 좋아 허는 구먼.
그렇게 온 몸을 자발 맞게 움직잉게 똥물이 다 나 한티 튕겨오잖여?
여기 똥물은 팥죽처럼 걸쭉혀서
몸띵이가 금방 가라앉지 않는당게 그러네.
그렁게 3초 간격으로 두 발을 살며시 차면서
두 팔을 동시에 부드럽게 휘저으랑게.
마치 지상 세계에 있을 때 물에서 헤엄치듯이 말여.
그렇게 허면 좀 견딜 수 있을 거여.
그러고 얼굴에 묻은 똥물을 왜 그렇게 자꾸 닦아내는가?
영원히 함께 헐 똥물 잉게 그냥 놔 두란말여.
참을 수 없는 건 펄펄 끓어오르는 똥물의 열기 허고
지긋지긋한 여기 지옥의 고생이 영원하다는 거여.
이곳 지옥은 시간의 흐름도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단 말여.
자네 첫인상을 보니 여기서 말썽 깨나 피우겄구만.“
그러자 우락부락한 목소리의 한 영혼이
그들 이야기 중간에 끼어들며 말했다.
“어이 참 ! 자네 증말 너무 허는구만.
똑같은 처지의 주제에 지옥에 금방 온 영혼에게
그런 야박한 꾸지람을 허면 못쓰지.
자네가 이곳에 첨 왔을 때,
내가 자상허게 돌봐준 걸 그새 잊었는가? “라고 나무라며 영수를 바라보았다.
한참 후,
그 영혼이 다시 영수에게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나는 말여~ 이승에 살아있을 당시,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부르던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왔는디, 내 신세타령 좀 들어보게나.
내 나이 열아홉 살 때 였구만·····.
동구 밖 주막에서 한 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디,
서낭당 언덕 밑 디딜방앗간에서 ‘쿵덕 쿵덕’허는 방아 찧는 소리가 들리더란 말여.
야밤에 누굴까 허고 문 틈 새이로 훔쳐봉게,
내가 열여섯 살 때부터 연정을 품어온 무당집 둘째딸
떡순이가 보리방아를 찧고 있더라고.
당장 입에 풀칠 헐 식량도 없었던 모양이여.
갸 얼굴이 이쁜 건 조선 천지에서 다 아는 사실이었고,
버들가지처럼 후리후리한 몸매가 항상 내 애간장을 태웠거든.
얼큰히 취한 김에 잽싸게 방앗간 안으로 뛰어들어,
순식간에 떡순이 옷을 홀랑 벗기고 그 일을 끝냈던 거여.
그런디 불쌍허게도,
갸가 그날 밤 방앗간 대들보에 목을 매고 세상을 떠났더랑게.
아침부터 디딜방앗간 앞에 포졸들이 눈을 부라리며 범인을 찾고 있었는디,
내 양심이 되게 찔리더라니까.
땅바닥에 누워 있는 죽은 떡순이의 삼베 치마 앞자락에
선지 핏자국이 시뻘겋게 물들어 있드라고.
그렇게 죽은 떡순이 모습을 쳐다봉게 억장이 무너지더라니까.
그때 난 이미 건넛마을 최 부자집 첫째 딸 허고 정혼이 되어 있었거든.
그 해 가을 어느 날,
나 혼자 산에 머루 따러 갔다가 호랭이헌티 물려 죽은 후,
극락으로 가볼까 허고 거기로 내친김에 달려갔었지.
극락의 문 앞에서 온갖 수모 다 겪은후,
지옥행 특급열차에 오를 순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허고 미치겄드라고·····.“
이야기보따리가 터지자 영혼들 끼리 서로 자신들의
신세타령을 들어보라며 경쟁이 붙었다.
시종일관 빙긋빙긋 웃고 있던 60대의 한 영혼이 불쑥 말을 꺼냈다.
“자네, 내 말 좀 들어보게.
난 오래전 백제라는 나라에서 대장장이로 꽤나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지.
당시 백제의 이름난 장수들이 차고 다니던 도검뿐만 아니라,
각종 창 까지도 내가 거의 다 맨들었단 말야.
그런데 어느 날 늦은 오후,
쇠망치로 시우쇠를 두들기며 칼을 맨들고 있던 중,
세 명의 병졸들이 내 삶의 터전인 대장간에 들이닥치더니,
강제로 날 꽁꽁 묶어 끌고 나가드라니까.
열흘 후에 황산벌에서 신라 놈들허고 한판 승부를 겨룬다는 거여.
전쟁터에서 치고 박고 싸울 때 뿌러지는 무기를 수리허는
말단직으로 징집 되었던 거라니까.
우리 백제는 오천 명이 넘는 결사대를 이미 조직하여 맹훈련을 거듭하며
적 군사들을 기다리고 있더랑게.
밤새도록 잠도 안자고 황산벌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어.
오만 명의 신라 놈들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몰려오는데 정신이 아찔하더라니까.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던 서로 간의 공방전 끝에,
결국 우리 백제 군사들은 신라 녀석들한테 두 손을 들고 말았어.
아따 참 ! 신라 군사 놈들의 화랑정신을 무시헐 수 없드라니까.
하루아침에 신라의 손아귀에 들어간 내 조국 백제의 백성들은
삶의 희망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던 거여.
나 역시 살맛이 안 나더라고.
시국이 흉흉하게 되니까 각종 사이비 종교단체들이
여기저기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더라니까.
나 역시 죽을 고생하며 마련해 두었던 문전옥답을 죄다 바쳐가며,
어느 이상한 종교에 빠져들었던 거랑게.
전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버렸던 거여.
난 그 당시 마누라와 아들 둘, 딸 하나를 집에 내팽개치고
태백산으로 들어갔던 거랑게.
주문만 열심히 씨부렁거리면 신선이 되어 학의 날개를 타고
승천한다며 교모허게 유혹허드라니까.
혼이 빠진 상태로 그런 미친놈들을 죽자 살자 따라다녔던 거여.
십년 후에 그놈들의 소굴에서 겨우 빠져나와 집에 돌아와 보니,
모든 게 엉망이 되어있더라고.
마누라는 이미 다른 남자의 품안에 안겨 있었고,
두 아들은 넘의 집 머슴질허며 겨우 겨우 연명허고 있드라니까.
내 귀여운 딸은 이웃 동네 김 부잣집 칠십 늙은이헌티
첩으로 팔려갔더란 말여.
참으로 허망한 인생이었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던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무작정 강물로 뛰어들었지.
황천에 도착허자마자,
그곳의 영혼들이 나를 옥황상제님한티 질질 끌고 가더군.
죽은 개만도 못한 대접을 받고 어찌나 서운 했던지
미칠 지경이었다니까.
옥황상제님이 나를 보자마자 화를 벌컥 내시면서,
내 뺨을 여섯 차례나 후려치드라니까.
황천에서조차 갖은 모욕 다 당허고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니까.“
홍 목사가 새벽예배를 준비하려고 교회 안에 들어왔을 때,
영수는 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중이었다.
그는 “지옥이란 증말 갈 곳이 못되는구만.
그런디 내일 아침에는 지발 동쪽에서 해가 뜨지 않었으면 좋겄는디“ 라고 중얼대며 몸을 뒤척였다.
어둠이 걷히고 해가 뜨면,
이혼의 가부를 결정해야 하는 최종 시한기간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홍 목사가 그의 몸을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하나님을 너무 열심히 믿고 있군.”
새벽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마침 아내가 코가 빠진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안방으로 부리나케 들어가 이혼 서류가 들어있는
봉투를 손에 들고 나왔다.
영수는 극도의 피로감에 지쳐 겨우 몸을 가누며
소파 위에 털썩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는 머릿속이 어질어질하고 눈앞에 헛것이 보이며,
시간이 흐르는 감각조차 느낄 수 없었다.
영수는 아내가 하라는 대로 순순히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다른 때 같으면,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고 천국 운운하며 노발대발하여 아내를 꾸짖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예상과는 달리,
그는 말 한 마디 없이 아내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혼조건을 따지지도 않았고,
작별인사도 없이 휘청거리며 대문을 나섰다.
그는 한 푼의 지참금도 없이 종숙과 두 아들 곁을 떠났다.
영수는 신들린 사람처럼 산발한 모습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 희미한 영상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신기한 일은 그와 같이 이성을 잃은 정신 상태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전혀 부딪치지 않고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도착한 곳은 개척교회의 홍 목사 숙소였다.
그가 힘없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홍 목사는 귀찮다는 듯 더 이상 설명을 듣고 싶지 않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홍 목사로부터 갑작스런 푸대접을 받고,
더욱 실의에 빠진 영수는 교회 안으로 들어가 기도하려던 계획을 바꾸고,
밖으로 나와 다시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가 걸어가며 생각하던 것은,
어떠한 고된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하나님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결심이었다.
어느새 그는 인왕산 중턱에 도착했다.
어제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 놀라운
힘과 정신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영수는 산의 정상에 오르자 무릎 꿇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
저는 별 수 없이 가정을 떠날 수밖에 없었구만요.
주님을 포기헐 수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저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복종했을 뿐이구만요.
저의 철없는 아내를 용서해 주겠어요.
마음 변한 홍 목사도 용서해 주겠구만요.
주님 말씀대로 이 세상사람 모두를 사랑허겠어요.
모두가 주님의 뜻이기 때문이어요.
주님 !
지발 저에게 무슨 말씀이든 좀 혀 주시지요.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혀야 헐지 난감허구만요.
저의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마귀들을 물리쳐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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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꿈 이야기 ( 43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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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4.25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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