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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을 앞두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을 통해 마지막 점검도 끝이 났다. 2점 차 승리로 기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과정이 썩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부진했던 경기력에도 꾸역꾸역 승리를 챙겼다는 점이다. 기성용과 이청용의 공백은 예상했던 만큼 컸다. 후반의 경기력은 희망적이었지만 전반의 경기력은 끔찍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선수들의 ‘생각’에 대한 문제다. 선수들이 신체적으로 잘 준비되어 있고 공을 잘 찬다고 해도, 생각이 빠르지 못하면 좋은 경기를 치를 수 없다. 현재 대표팀엔 생각의 속도를 높여줄 선수가 부족하다. 기성용이라는 걸출한 미드필더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만이 팀을 고군분투하며 이끌고 있다. 앞으로도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지 않는다면 아시안컵의 성적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성적도 걱정해야 할 것이다.
(△ 답답했던 사우디 전의 선발 멤버. 그래도 어떻게든 경기는 이겼다는 건 긍정적이다.)
수동적이고 템포가 느렸던 전반
전반전에 출전했던 한국영-박주호 중앙 미드필더 조합은 공격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공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면서 공격 흐름을 번번이 끊고 말았다. 그 이유는 미드필더에서 공격을 수동적으로 전개했기 때문이다. 박주호-한국영 전반 미드필더 조합은 공을 받아둔 후에서야 공을 줄 곳을 찾으면서 계속 상대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공을 받을 때에도 가만히 서서 받는 경우가 많아 압박의 표적이 되고 말았다. 기성용이 처음 공을 터치하는 순간에 다음 어떤 플레이를 할지 그려놓았다고 한다면, 박주호와 한국영은 공을 잡은 후에야 그런 고민들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즉 ‘템포’가 느렸다. 박주호-한국영 둘 모두 공격적인 재능이 없는 선수는 아니다. 후반전에 이명주-남태희가 공격을 풀어내기 시작하자 한국영까지 살아났다는 사실이 그것을 방증한다. 단순히 공격을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팀의 공격 전반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못했다는 뜻이다.
미드필더의 침체로 구자철, 조영철, 손흥민 등 2선에 나선 공격수들 역시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패스의 질이 좋지 않아 이전 좋았던 평가전에서만큼 빠르고 간결한 공격전개를 할 수 없었다. 구자철의 경우 폼이 떨어진 것으로 보기엔 순간순간 번뜩이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경기 중 공이 연결되지 않자, 우리 진영 깊숙이 내려와 공을 직접 연결하려고 했는데, 공격진과의 거리가 과도하게 벌어지면서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엔 팀 전체적인 조화가 깨진 데서 오는 부진이었다.
수비적 측면에서도 팀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그저 부지런히 뛰는 것이 능사는 아니란 것이다. 수비를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당연히 동료 선수들과 함께 상대를 막아내야 하는데, 각자 수비에 임할 뿐 팀 차원의 움직임이 부족했다. 특히 다른 선수들을 컨트롤하면서 수비를 조율해야할 중앙 미드필더들이 볼을 잡는 선수에게만 무질서하게 압박을 가하면서 비효율적인 수비를 했다. 수비를 조율하는 역할은 그 누구도 수행하지 않았다. 한국영-박주호 두 선수는 기본적으로 수비력이 매우 훌륭한 선수들이다. 그럼에도 전반 내내 대한민국 대표팀의 수비는 불안함을 노출했다. 부지런히는 뛰는데 정리가 되지 않은 듯 실속 없는 수비를 보여줬다. 결국 무너진 선수들 간의 간격에서 ‘리더’의 부재를 절실히 느끼게 했다. 오히려 객관적으로 수비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이명주와 남태희가 들어온 후반전에 대표팀은 더 나은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생각의 속도가 중요하다.
전반전의 부진을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1차적인 원인은 박주호-한국영이 경기를 전혀 장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선수 외에도 다른 선수들 역시 부진한 경기를 타개할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경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수 양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중앙 미드필더들이기에 부진이 눈에 띈 것일 뿐, 다른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했다고 볼 순 없다. 전반전의 부진은 선수들의 신체적, 기술적 능력과는 별개로 ‘축구 지능’에 대한 문제로 봐야 한다.
중계방송 중 이영표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이 인터뷰 중에 '적극적인 모습'을 언급한 사실을 이야기했는데, 주도적인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어느 팀에건 팀의 중심이 되는 선수가 있다. 경기 자체를 쥐락펴락할 넓은 시야를 가진 선수가 보통 그러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탈리아의 피를로가 그렇고, 과거의 스콜스가 그러했다. 하지만 ‘묵직한’ 중심 선수에 맞춰줄 동료 선수들의 역시 무척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패스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받아주는 선수가 제대로 움직여주지 못한다면 공은 투입될 수 없다. 볼을 가지지 않은 선수들 역시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읽고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이번 사우디 전의 전반은 수동적인 축구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공을 주는 선수도, 받아두는 선수도 다음 플레이를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하지 못했다. 공을 받는 순간에야 다음 움직임을 생각한다. 당연히 공격 전개의 템포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생각의 속도가 느린 것은 달리기가 느린 것보다 더 큰 문제이다. 공은 사람보다 빠르다. 생각이 빨라지고 공을 그만큼 빨리 처리할 수 있다면, 달리는 것보다 더 빠르게 공을 연결할 수 있다.
( △ 첼시를 상대로 물 흐르듯 공격하는 토트넘. 빠른 연결이 가능하려면 주는 선수, 받는 선수 모두가 준비되어야 한다.)
팀 전체 그리고 경기 전체를 주도할 선수
우선 선발 출전한 선수 가운데 대표팀을 하나의 ‘팀’으로 묶어낼 능력을 가진 선수가 없었다. 기성용이 출전하여 공의 흐름을 완벽히 주도하면서 팀을 통제할 때와는 달리, 플레이를 주도하는 선수를 전 포지션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간혹 손흥민이나 구자철의 번뜩이는 플레이는 그것은 부분적인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추어 축구판에서 이른바 ‘풀 줄 안다.’는 말로 표현되곤 하는, 경기를 주도하는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 필요하다.
경기를 주도하는 선수들은 경기 전체를 보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공을 받기 전부터 어떤 플레이를 할지, 나를 제외한 동료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심지어 상대가 어떤 식으로 공격하고 수비할지를 예측하여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눈앞에 둔 몇 명의 움직임 뿐 아니라, 10명의 팀원 그리고 11명의 상대의 움직임을 고려하여 플레이한다. ‘나’ 이외에 피치 위에 함께 있는 존재들을 잘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0.5초 사이에도 공간이 생겨나고 또 없어지는 축구의 세계에서 그것은 엄청난 차이로 나타난다. 생각의 속도가 빠른 선수들은 조금 신체적 능력이 떨어져도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사할 수 있다. 전성기 스페인의 사비처럼.
현재 대표팀에는 팀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능력 갖춘 선수들이 적다. ‘나’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경기 전체를 보는 선수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영리한 선수들은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팀의 모든 움직임에 관여하고 주도적으로 경기를 통제한다. 이러한 선수들을 바로 경기장 내의 리더, ‘보스’라고 할 만하다. 기성용이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보스 기질을 갖춘 선수이고, 소속팀인 스완지시티에서의 경기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기 전체를 주도하는 선수의 존재는 팀에 안정감, 일관성 그리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우리나라 대표팀에서는 기성용이 바로 피치 위의 동료들에게 안정감, 플레이의 일관성 그리고 동시에 자신감을 불어넣는 리더이다. 현 상황에서 기성용은 대체 불가능한 선수이고, 그를 수동적으로 서포트하는 선수들은 사실상 기성용을 도울 뿐 경기 전반에 독자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은 현저히 작다. 기성용처럼 능동적인 선수가 빠지고 나면, 이번 사우디전의 전반처럼 팀 전체가 무너져 버리기도 한다. 팀은 ‘사공’이 없는 배가 되어 산으로 가버렸다.
사우디와의 전반전에는 우리 대표팀은 11명이 각자의 축구를 했을 뿐이었다. 팀 차원에서의 공격도, 수비도 없었다. 박주호와 한국영은 ‘수동적인 선수’들로 기성용과 같은 선수를 ‘지원’하는 역할에 적당한 선수들이고, 차라리 이명주가 기성용을 대체할 옵션으로 꼽을 만하다.
( △ 훈련중인 기성용. 리더는 묵직해야 한다고 하더니, 정말 묵직한 리더가 되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선수
해외 빅리그로의 진출이 많아지면서 손흥민, 기성용 등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많은 유럽팀에게는 여전히 박지성에게 볼 수 있던 성실함과 희생적 움직임이 한국 선수들이 갖는 장점으로 비춰지는 듯하다. 하지만 단순한 차원에서 팀의 숨은 영웅Unsung Hero 역할에만 치중해서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해외로 진출한다고는 하지만 경기를 능동적으로 해결하는 역할은 남미나 유럽의 선수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파트너 역할에만 만족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력자’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주하면 안 된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박지성은 자신이 경기를 주도적으로 조립하진 않았지만, 늘 다른 선수들과의 움직임에 민감했다. 자신의 움직임으로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창출해 주기도 하고, 동시에 공격수들이 움직인 공간으로의 침투로 직접 공격을 풀기도 했다. 헌신적인 플레이와 더불어 언제나 동료들을 고려하여 영리한 플레이를 펼쳤기 때문에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특별했던 것이다. 박지성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선 헌신적인 움직임으로 큰 찬사를 받았지만, 필요할 때에는 얼마든지 팀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것으로 기억되는 울버햄튼 전이 그러했고, 우리가 국가대표에서 만나는 박지성이 언제나 그러했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경기 전체를 읽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선수들이 점점 많아져야 한다. 2010년 월드컵과 2011년 아시안컵 당시 우리 대표팀이 선전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상 팀의 리더는 박지성이었지만, 기성용, 이영표 모두 팀을 주도적으로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으며, 이청용과 박주영 역시 동료들을 고려한 영리한 움직임으로 팀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살려주었다. 현재 대표팀의 선수들의 개인적 능력이 절대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체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잘 준비되어 있다. 다만, 본인의 플레이에 집중하는 것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경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팀의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 개인의 발전에도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더 높은 수준의 팀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선수들이 능동적, 주도적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어느 팀이든 경기를 주도하는 ‘사공’은 한 명이다. 팀 전체가 사공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노 젓는 사람도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주도적으로 노를 저어야 배에 진정 힘을 실을 수가 있고, 사공이 배에 못 탔다면 다른 누군가는 사공 역할을 맡 역량을 맡아야 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말했던 것처럼 선수들이 더욱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 선수들의 역량을 발전시킬 것이고 기성용이 없어도 강한 대표팀을 유지하는 기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뱀다리. PLAN B는 이명주
후반전에 이명주와 한국영이 자리를 이루고 박주호를 왼쪽 측면으로 돌린 것으로 보아 이번 경기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박주호를 기성용의 대체자로 생각하고 기용한 듯하다. 특히 축구팬들 사이에서 박주호가 분데스리가에서의 꾸준한 활약으로 미드필더로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서 꾸준히 뛴다는 사실이 박주호가 훌륭한 미드필더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건 아니다. 눈에 띄는 실수는 없지만 좋은 미드필더가 아닐 수 있다. 주도적인 공격 전개와 수비 리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훌륭한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의존적, 수동적인 미드필더가 될 수밖에 없다.
박주호가 나쁜 선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기성용의 파트너로서는 가치가 높지만 한 명의 미드필더로서는 그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다.(물론 박주호는 무척 견고한 왼쪽 수비수이기도 하다.) 미드필더로서의 박주호의 부족한 점은 마인츠05의 분데스리가 경기에서도 익히 목격할 수 있다. 사우디와의 평가전 및 지난 요르단과의 평가전에서 기성용의 부재, 수동적 선수들로 중원 조합 때문에 경기력 침체를 경험했다.
개인적으로 구자철을 기성용의 대체자로 고려해 볼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는데, 현재 슈틸리케 감독은 구자철을 2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후반전에 투입되었던 이명주는 좋은 대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홍명보 감독 시절 기성용의 파트너로는 부족함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나, 그의 대체자로서는 충분한 가능성을 보였다. 무르익은 공격전개와 조율 능력은 기성용과는 다른 스타일로 대표팀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 실제로 사우디와의 후반전은 이명주의 활약으로 완벽히 주도권을 찾아올 수 있었다. 기성용은 부상, 경고 누적 등이 없는 한 전 경기에 출전하겠지만, 부상 시 혹은 체력 안배를 위한 교체 시에는 이명주가 훌륭한 대체자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댓글 팀웍을 맞출시간이 부족하겠지만 위 짤방처럼 물흐르는듯한 유기적인 패스를 보고싶네요
진짜 요즘 축구에서는 미드가 중요하죠..토트넘이 저렇게 할수있는것도 미드에서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선수인데..그게 가능할수 있게 만드는게 기성용이고 이명주도 충분히 그 역할 할수 있을꺼라 봅니다..다만...박주호는 머가 부족해보이고..수비력과 패스는 안정적이지만....그닥 미드 특화된 선수가 아니라고보고..한국영은 그냥 필요없는 선수네요 아무리 도그파이팅 중요하더라도....강팀상대로 그나마 효과있을뿐이지..약팀에게는 전혀 필요없는 선수...........원래 패스능력 안좋게 봤찌만..사우디전보고...진짜 앞으로 대표팀에서 안봤으면 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