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리자
장재섭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 짝사랑 타령을 하려니 등이 좀 간지럽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마음이다.
짝사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없이 많은 사랑 중에도 어버이의 사랑, 가족간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등 많을 터이지만 지학의 나이에서 약관으로 살짝 넘긴 시기에 세상물정
잘 모르고 철없이 순박한 때였다.
이 시기에 나는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했던 모나리자라는 아가씨를 만
났다.
이 친구는 키가 나의 젖가슴에 머리가 와 닿을 정도이니 그리 크지 않
았고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모습에 예쁘장한 얼굴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한 여자였다.
하기야 그때는 나도 하얀 가죽운동화와 목이 긴 배이지색 털 쉐터를 입
고 폼을 잡으며 여자 앞을 지나다닐 때였다. 식물로 치자면 물이 한참
오르는 절기였음이다. 어떤 친구들은 애인이 있어 어두운 골목길만 찾아
서 데이트를 즐겼고 유달산 중턱쯤에는 사랑하는 남녀들이 여기저기 모여
밀월을 속삭였다.
이즈음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함박눈이 내리던 추운 겨울밤이었다.
흰눈이 펑펑 내리는 쓸쓸한 야경이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서나 봄직한
저녁 고향친구 양임이 한테서 영화나 한편 보자는 연락이 왔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함박눈은 그칠 줄을 모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머리 위에 흰눈이 사뿐히 내려앉아 하얀 솜털모자를
만들던 날 극장 앞에서 우리는 처음 만났다. 보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모나리자와 비슷한 그녀는 남해의 고도 완도에서 뱃길로 한시
간 정도 푸른 파도를 헤쳐나가는 섬중에 섬 청산도란 곳에서 바다가제를
잡으며 자란 아가씨였다.
단발머리에 해풍과 바닷물에 약간 절은 듯한 검붉은 색의 피부가 보기
에 당차고 아주 건강해 보였고 남쪽의 넓은 바다와 함께하면서 소녀시절
을 보냈기 때문인지 마음씨까지 천해의 넓고 맑은 물결을 닮은 그녀는 나
에게 짝사랑을 가르쳐준 여자이다. 생김새로 보아 전형적인 맏며느리 타
입인 그녀는 고향의 향기를 가득 담고있는 동백꽃 같은 여자였다.
내가 항상 동경하는 어머니의 모습처럼 인자한 모나리자는 웃는 모양과
말소리가 시골 또순이같이 우락부락 둔탁하지만 달콤한 솜사탕 같은 포근
한 인정미는 나의 가슴을 용광로 같이 뜨겁게 하였으며 짝사랑을 알 수
있는 착한 남자로 만들어 주었다.
친구 양임이와 양재학원을 같이 다니면서 나와는 서로 살고 있는 집이
지척에 있어 이삼일 건너 한두 시간쯤 만나 볼 수 있는 날이 계속되었지
만 짝사랑이란 단어만 나의 심금을 울려줄뿐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 때는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 그녀만 보면 그냥 좋았고 헤어지면 그리운 감정
만 쌓여 며칠이나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이면 속이 타서 이리저리 배회
하였고 찬물을 한 그릇 들이키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날짜가 하루 이틀 지나갈수록 짝사랑의 감정은 더해가고 사랑을 해본
사람이 상대의 마음을 알듯이 짝사랑이라는 열병 속에서 왠지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은 그녀에게만 가 있어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토요일 오후, 그녀가 시골에서 고구마를 가져왔다고 삶아서 들
고 우리 집에 왔다.
피곤 끼가 돌고 나른한 오후에 모나리자를 보니 절로 기운이 솟아올랐
다.
더구나 밀린 빨래까지 깨끗이 손봐준 그녀를 옆에서 보니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 느낀 나는 “나 솔직히 모나리자 좋아하는데 우
리 서로 친구 합시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다짜고짜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겸연쩍어 하면서 입속에서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그냥
미소만 짓고 있었다.
다그치는 나의 직언에 “안되는데”하면서 말꼬리를 이리저리 감추는 기
색이 보였다.
말은 시작했지만 무안해서 망설이고 있는 나를 보며 그녀의 입에서 흘
러나오는 모기처럼 가느다란 말소리는 나의 작은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
다.
결국은“안돼요”라는 대답이었다.
시름에 잠겨 맥이 빠진 상태로 지루하게 보내던 어느 날 모나리자는 살
짝 나에게 다가와서 미안하고 죄송스럽다는 얘기를 남기고 홀연히 떠나갔
다.
그후 세월이 흘러 삼십 여년!
강산이 세번이나 바뀐 가을 어느 날 고향친구 양임이 남편 회갑잔치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참석한 자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내가 모르는 동안 친구 남동생과 그녀의 여동생이 결혼하여 사돈지간이
되어 있었고, 그간에 간간이 만나 나에 대한 소식은 접하고 있었던 모양
이었다.
하면은 왜 연락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그냥 얼버무리고 아무렇지 않
은 표정이었으며 결국 나혼자 사랑하며 긴 목을 빼고 그녀를 기억하고 살
아왔구나 생각하니 약간 기분은 언짢았지만 그래도 그녀를 만나니 어릴
적 좋았던 감정이 살아나 아주 기분이 좋았다.
자그마한 외형에 수수한 옷차림, 화장기 없는 얼굴에 담겨진 미소는 예
전의 모습과 별반 차이는 없었지만 눈가에 늘어난 주름으로 세월의 무상
함을 볼 수 있었다.
회갑잔치는 종반으로 가고 은은한 부르스 음악이 깔리고 있는 시간이었
다. 그녀의 여동생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언니의 손을 잡고 내 앞으로
와서 내 손위에 언니의 손을 얹어 주고 언니를 쳐다보며 “이 바보야”하
며 사랑스런 눈빛으로 언니에게 주먹을 쥐어 보이고는 미소를 지으며 총
총히 사라졌다.
그녀는 살며시 나의 품에 안기어 가볍게 떨고 있었다.
요사이 잘 지내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미소만 지었고 생전처음 그녀를
안아 본 나도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서울로 와서 펜팔로 연이 됐던 남편과 민생고 해결을 위해 안
해본 일없이 다하면서 또순이라는 별명도 얻었다며 웃었다. 지금은 애들
도 잘키워 행복하다는 말을 듣고는 그래도 정말 다행이구나 하는 마음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였고, 축하연이 끝나고 그녀와 헤어질 때는 지나
간 나날들의 그리움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잘 가세요. 하며 내미는 손을 꼭 잡아 주었고, 나를 보고 미소 지으며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그녀 나름대로 보람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기에 나도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핸들의
묵직함을 느끼고 나서야 흐트러진 감정을 추스를 수가 있었다.
모나리자의 옛 모습을 다시 한번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1999.
첫댓글 첫사랑 이야기 감동입니다.
첫사랑은 언제나 가슴 설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