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기를 조심하라 고전 3:10 ~ 15 18/4/22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하와를 유혹할 때 하나님은 아셨을까 몰라셨을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다 보고 계셨다. 그 상황을 다 알고 계셨다.
그런데 왜 말리지 않으셨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 상황을 모르신다면 어쩔 수가 없지만
죽을 짓을 하는 것을 아시면서도 왜 주의를 주지 않으셨을까?
여러분 같으면 자녀가 사기를 당하고 있는걸 알면서 내 버려두겠는가?
그런데 하나님은 그걸 다 아시면서도 그냥 내버려두셨다. 그때 하나님이 “하와야 속지 말아라”고
한 마디만 해주셔도 인간이 이렇게 불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른 척 내버려 두셨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자유를 주셨다. 아담과 하와에게 단 한 가지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6,17)
이런 경고의 말씀을 딱 한 번 하시고 말았을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느냐 안 먹느냐는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매일같이 반복해서 주의를 주지 않으셨다.
이런 말씀을 자꾸하면 그건 잔소리 밖에 되지 않는다. 여러 번 하면 하나님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자유나 믿지 않을 자유를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자유도 주셨고, 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대로 살 자유도 주셨다.
그래서 그들을 막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롭게 행한 일에 책임을 물으셨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몰라서 죄를 짓는 것도 아니다.
알면서도 불순종의 영에 매여 죄를 짓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해 주셨다. 이미 주의를 주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경고를 무시하고 자기 욕심대로 행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는 벌을 주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본보기로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고 저주와 죽음과 비참한 인생을 살게 하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해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벌을 주시지 않으신다.
아브람이 하갈을 씨받이로 취하였다고 하나님이 벌을 주시지 않으셨다.
하갈을 씨받이로 들인 것은 아들을 낳게 해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못 믿는 불신앙적인 행동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에게 경고하시거나 꾸짖거나 벌을 주시지 않으셨다. 그냥 저들이 하는 대로 내 버려두셨다.
결국 여인들끼리 불화가 일어나서 아브라함은 아내의 말대로 하갈을 쫓아낼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서자지만 늦게 얻은 자기 핏줄을 쫓아내는 아브람의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내라고 하신 것은 아니다. 사라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한 것이다.
다윗의 범죄와 고통
하나님은 다윗이 유부녀를 성폭행하고 그 남편을 죽일 때에도 하나님은 모른 척, 못 보신 것처럼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하루는 다윗이 성루에서 밧세바가 목욕을 하는 것을 보고 내시에게 누군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내시가 와서 보고하기를 우리야장군의 아내입니다. 그러나 한 번 발동이 걸린 욕망을 정지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시에게 그녀를 궁으로 데려 오라고 지시하였다. 하나님은 그 때 너 왜 그녀를 데려오라고 시켰냐? 라고 엄중하게 물어보셨더라면, 다윗이 큰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셨다, 물론 하나님은 속이 상하고 화가 나시지만 그냥 내버려두셨다.
범죄의 결과 여러 명의 아내를 둔 결과
다윗의 맏아들 암논이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성폭행.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 압살롬의 반역.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 열 명을 백주대낮에 성폭행하는 일들이 있었다. 하나님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도록 시키지 않으셨다. 그냥 자식들끼리 욕망과 감정대로 행한 것일 뿐이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도록도 막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를 지어도 그냥 내버려두신다.
김일성이나 스탈린 같은 것들은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쳐서 죽여 버리셔야 사람들이 정신을 번쩍 차리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조심할 것인데 그냥 내버려두신다. 심지어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은 죽었다”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못들은 척 내버려 두신다. 그냥 내버려두면 정말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되어도 하나님은 그냥 내버려 두신다. 나아가서 온갖 못된 짓을 하면서도 오히려 잘 되는 경우도 흔하니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처음에는 두렵기도 하지만 감정과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범죄한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혼을 내시지도 않고, 벌을 주시지도 않는다. 그러니 차츰 차츰 용기를 내어 점점 더 못된 짓을 하게 된다.
그러다간 나중에 양심에 화인을 맞은 것처럼 죄책감도 없이 죄를 상습적으로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후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으셨다.
너 그러다간 큰 일 난다. 너 그러면 혼난다. 너 조심해 라고 경고하지 않으셨다
뒤통수를 때리며 너 정신차려!라고 하시거나 벌도 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시다가 죽은 후에 심판과 벌을 내리신다.
이 세상에서 죄지은 사람이 망하고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벌이 아니라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일 뿐이다. 김생민의 몰락. 내가 못된 것을 심었는데 바로 거두지 않는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때가 되면 후회하고 눈물을 흘릴 일이 일어나게 된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죽은 후에 하신다.
살아 있을 동안에는 모른 척 하시지만 결코 그냥 넘어가지는 않으신다.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오늘 말씀에도 보면 성도가 여섯 가지 재료로 집을 짓는다고 하셨다. 풀과 나무, 짚, 금과 은과 보석.
성도가 무엇을 선택하여 무슨 짓을 하든 간섭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감시감독하지 않으신다.
너는 왜 풀로 집은 짓느냐? 너는 왜 나무로 집을 짓느냐고 지적하거나 꾸짖지 않으신다.
넌 금으로 집을 지으니 참 잘한다. 너는 보석으로 집을 짓느라고 수고가 참 많구나! 참 잘한다라고
칭찬과 격려도 하시지 않는다. 말없이 지켜만 보신다.
때로는 혼도 내고 벌도 주고 가끔 정신이 번쩍 나도록 때려주시면 좋으실텐데, 모르는 척 내버려 두신다. 칭찬과 격려도 해 주신다면 더 잘 할텐데 그런 것도 모르신 것처럼 내버려 두신다.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그 날이 있다
그 날이 — 공적을 밝히는 날이 있다. 준공검사를 하시는 날이 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엉성하게 지은 사람은 겨우 구원만 받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 성도는 상을 받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인천방주교회 박보영목사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난 후에는 그는 바울처럼 하늘의 상급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누가 상을 가장 많이 받는지 늘 궁금해 했다. 자기를 위해 기도하던 여집사가 가끔 입신하여 천당에 들어갔다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가 하늘에서 상이 많이 받는지 예수님께 물어보고 오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그 집사가 갈 때마다 그걸 잊어버리고 와서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집사가 소천하기 전에 자기가 며칠 후면 천당에 갈 것인데 자기 장례식날은 눈이 많이 올 것이라고 예언을 하였다. 그리고 예수님께 누가 제일 상을 많이 받느냐고 물어보니 주님이 보여주시는데 의외의 사람이 큰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남해안의 작은 섬에 있는 조그마한 교회당 앞마당을 쓸고 있는 목사님을 보여주시더란다. 주님은 그 목사가 상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하시더란다. 그 목사도 사람인데 그 섬에 박혀 자기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야 갈 때가 없어 갔든지, 섬선교에 꿈을 가지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섬의 인구도 몇 명되지도 않고 주일학교 학생들은 중학생만 되면 뭍으로 유학을 떠나고 노인들 몇 명과 예배를 드리고 있자니 희망도 없고 아무리 기도하고 노력해 보았자 달라질 것도 없으니 도회지로 나가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여 큰 교회를 섬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단다. 그런데 자기가 뭍으로 개척하러 나가면 그 교회에 올 후임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고 떠나자니 목사의 양심이 허락지 않는 것이다. 이런 곳이야 교회가 없어져도 가까운 곳에 교회가 많으니 찾아가서 신앙생활을 할 것이지만, 교회가 있는 인근의 섬까지 한참을 가야 할 형편인데 그곳까지 가서 예배를 드릴 사람도 없어 보인다. 몇 명의 주님의 양들을 버려두고 자기 꿈과 야망을 찾아 차마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꿈과 야망을 내려놓고 몇 명의 영혼을 사랑하고 돌보는 모습을 주님이 귀히 보신 것이다. 사람들이 볼 때는 보잘 것 없는 목사, 무능한 목사로 보았을 것이다. 노회에 나가면 무시나 당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그 목사님을 아주 귀하게 보시고 큰 상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박보영목사님은 사도바울처럼 자기 것이 없이 오직 오갈 때 없는 아이들을 자녀처럼 여기고 한 집에 살면서 주님을 위하여 사는 분이 되셨단다.
내 인생을 다 마친 후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잘하였다는 칭찬을 듣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은 유혹이 오고 욕망이 일어나도 넘어지지 않는다.
주님의 책망이나 권면이 없어도, 눈에 보이는 축복과 보람이 없어도 주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묵묵히 충성하며 바르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