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이 되고픈 아이와
사람으로 키우고픈 엄마의 한판 승부
우리 마음속에서만큼은
영원히 멸종하지 않는 공룡들
어엿한 공룡이 되고 싶어
공룡은 정말 멋있어. 웅장한 몸집과 카리스마 넘치는 얼굴, 거대하지만 날렵하고 사납지만 온순하기도 하지. 고슴도치며 토끼, 얼룩말 따위와는 비교가 안 돼. 게다가 멋들어진 그 이름들은 어떻고. 공룡 이름이 어렵고 헷갈린다고? 그건 정말 공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야. 세상에 같은 공룡은 없어. 모두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 하나씩 들여다보고 알아 가다 보면 이름을 줄줄 꿸 수밖에 없다고. 이런 멋진 생물체가 지구상에 사라졌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공룡들이 모두 살아남았다면 아마 우주를 지배했을지도 모르지. 모두들 지구에서 인간이 가장 월등하고 우월한 존재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달라. 공룡들은 사람처럼 두려움에 벌벌 떨며 하고 싶은 걸 조심하는 법이 없어. 고요히 풀을 뜯다가도 공격할 대상이 나타나면 서슴없이 꼬리를 휘두르지. 우물쭈물 망설이지 않는 그 단호함이 놀라울 정도야. 눈치 보지 않고 해야 한다면 해 버리는 실행력은 또 어떻고. 주춤대다가 많은 걸 놓쳐 버리는 사람들과는 딴판이라니까. 공룡은 파도 파도 매력이 넘쳐. 우람하게 멋지게 힘 있게 통 크게 공룡처럼 되고 싶어. 착하고 얌전하고 따분한 사람 따위는 시시하고 밋밋해. 난 정말 제대로 된 공룡이 되고 싶다고!
의젓한 사람이 되어야 해
네가 공룡을 좋아하는 건 이해해. 누구나 한때는 그 매력에 빠지는 법이니까. 하지만 진짜 공룡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행동하는 건 좀 심하잖아. 지하철에서 소리를 내지르고, 동생을 발로 차고, 음식을 통째로 삼키려는 건 안 되는 일이야. 왜냐고? 너는 공룡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되고 싶다고 모든 게 다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제멋대로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공룡처럼 걷겠다고 쿵쾅거리면 아래층 사람들은 얼마나 시끄럽겠니. 우린 초원에서 살지도 않고 목구멍이 공룡처럼 크지도 않잖아. 사람이라면 사람답게 의젓하게 굴어야지. 게다가 공룡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멸종 동물이라고. 결국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잖아. 존재하지도 않는 걸 꿈꾸는 건 허황된 일이야. 허황된 꿈을 꾸다 보면 현실에 부딪쳐 살아 나갈 힘을 기르지 못할 수도 있어. 지구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사회성이라는 걸 익혀야 해. 다 너 잘 되라고……. 너 정말 이럴 거야?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엄마도 공룡으로 변신해서 맘대로 해 버린다!
틀을 씌우는 어른, 틀을 깨는 아이
현이는 공룡을 너무 좋아합니다. 웅장한 몸집도 거침없는 움직임도 카리스마 넘치는 생김새도 멋져 보입니다. 그래서 현이는 공룡이 되고 싶습니다. 어설픈 흉내로 그치는 게 아니라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닮은 진정한 공룡이 되려고 하죠. 하지만 엄마의 입장은 다릅니다.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고 주위 사람이 위험할 정도로 팔다리를 휘두르고 층간소음 따위 아랑곳하지 않으며 쿵쿵거리는 아이를 잡아 세웁니다. 공룡을 좋아한다면 공룡의 장점만 골라 배워서 훌륭한 사람이 되자고 설득하죠.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이지만 공룡은 늘 환상을 꿈꾸는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포효합니다. 자칫 아이들이 공룡처럼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뒤처질까 봐 어른들은 책임감과 의무감에 시달립니다.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서로 다른 엄마와 아이. 올바르고 착한 아이의 굴레를 씌우고 싶은 엄마와 공룡만큼이나 날렵하게 그 마음을 피해 다니는 아이의 한판 승부는 어떤 결말을 맺을까요?
아이들은 아무것도 끼어들지 않은 무의 상태에서 태어납니다. 저마다의 본능과 기질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교육도 제재도 벽도 마주하지 않은 무궁무진한 세계 속에 살죠. 그 세계 안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지닌 이 무중력의 순수를 사랑합니다.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과 좋아하는 것을 향한 순정함은 한때 어른들도 가졌던 것이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두려워집니다. 그대로 두었다가 아이들이 현실에 발붙이지 못할까 봐 걱정합니다. 사회 속에서 폐를 끼치는 존재가 될까 봐 책임감을 느낍니다. 틀 속은 안전하지만 재미가 없습니다. 틀 밖은 자유롭지만 따뜻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는 동안 계속 틀 안팎을 드나듭니다. 쉼 없이 틀을 깨려는 아이와 열심히 틀을 씌우려는 어른들의 팽팽한 공존처럼 말입니다.
한때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던 공룡들
공룡은 지구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동물원에 가도 볼 수 없고 실제로 만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공룡은 유니콘이나 용처럼 상상으로 만들어 낸 동물도 아닙니다. 환상의 존재라기엔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죠. 아이들은 공룡을 왜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요? 그 어려운 이름을 죄다 외우고 피규어를 일렬로 세워 대는 것일까요? 인간보다 먼저, 인간보다 강하게 이 세계를 지배하고 누볐던 존재를 동경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야생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현실에 있지만 동시에 현실에 없는,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공룡이 자신들과 닮아서일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랍니다. 공룡에 열광하던 마음이 식고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공룡처럼 마음속에서만 사는 것들은 힘이 없고 유치하다고 여기는 어른이 됩니다.
상처 입을까 봐 몸 사리는 법이 없는 티라노사우루스,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순간에 최선의 힘을 내뿜는 스테고사우루스, 쩨쩨하게 굴지 않고 뭐든 통 크게 소화시키는 프테라노돈, 판단이 서면 망설이지 않고 새로운 모험을 떠날 줄 아는 브라키오사우루스, 주춤거리다 시작도 못하는 바보 짓 따위는 하지 않는 벨로키랍토르, 필요하다면 정면 승부를 당당히 펼칠 줄 아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 우리의 마음속에도 한때 이 멋진 공룡들이 살았습니다. 알 수 없이 두려울 때, 옹졸하게 뾰족해질 때, 무기력하게 서성일 때, 핑계를 대며 뒷걸음칠 때 이 공룡들을 다시 소환하고 싶습니다. 세상이라는 칼로 곱게 가지치기 당한 정원수 같은 마음을 쥐라기의 대평원에 다시 풀어놓고 달리고 싶습니다.
사랑의 크기만큼이나 서로 다른 우리들
엄마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엄마를 사랑합니다. 하지만 둘은 공룡과 사람만큼이나 서로 다릅니다. 아이는 한 마리 공룡이 되어 엄마에게 놀자고 달려듭니다. 엄마는 사람처럼 놀자고 아이를 꼬드깁니다. 아이는 엄마의 방식이 한심하고 따분합니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화가 납니다. 그래서 오늘도 엄마와 아이는 티격태격 으르렁댑니다. 하지만 둘은 결코 등 돌리지 않고 어느새 서로를 서로의 세계로 다시 초대합니다. 만약 둘의 세계가 똑같아져 버린다면 과연 아름다울까요? 아이가 매번 애늙은이처럼 굴거나 엄마가 세상의 규칙으로 아이를 붙들지 않는다면 더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아무리 공룡이 되고 싶어도 넌 사람이잖아.’라며 찬물을 끼얹는 엄마와 ‘엄마가 원하는 멋진 공룡이 되기엔 난 너무 사람이잖아.’라며 얄미운 말꼬리를 잡는 아이는 어쩌면 서로의 세계에 계속 문을 두드리는 시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너무 다른 우리들이지만 기꺼이 서로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고 매일 서로를 환기시키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이 개구지고 유쾌한 사랑의 현장이 이 책의 매 장마다 펼쳐집니다. 환상과 일상이 경계 없이 버무려진 그림 속에서 어른도 아이도 자유롭게 어엿한 공룡으로 변신할 수도, 의젓한 사람으로 웃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작가 소개
글 조은혜
어엿한 공룡이 되고픈 아이의 마음과 의젓한 사람으로 키우고픈 어른의 마음은 오늘도 이렇게나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서로의 거리를 좁혀 나가려고 노력하는 모든 아이와 어른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그림 진경
2015년 첫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첫 책 『우리, 집』을 그렸습니다. 오랜만에 둘째가 생기고 이 책을 만들었습니다. 임신을 하면 그림 작업이 더 즐거워지는 희한한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셋째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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