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장례식장의 규철이 모친상에 얼굴만 내밀고 세무소에 가서 단체 등록에 대해 문의한다.
이리 게으름을 피우다가 올 안에 고유번호증이 나올지 모르겠다.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제석산 줄기를 걷다보면
봉우리 오르는 앞 사거리에 구기마을 이정표가 나타났기에, 구기마을에서 얼른
바우에 서서 벌교만과 여자만을 보고 오기로 한다.
구기마을은 길에서 금방이다.
회관 마당에 독립운동가 마을이라고 몇개의 안내판이 서ㅓ 있다.
사진찍고 길을 따라 비탈을 더 운전한다.
여러 갈래 중 차가 갈만한 길을 골라 오르니 대추밭 끝에 작은 공터가 나타나 차를 주차한다.
추석 성묘객들의 벌초한 묘소가 연이어 나타난다.
밤도 보이고 도토리도 보여 주우며 길을 따르는데
어느 묘지에서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는다.
골짜기와 정상을 가늠하고 숲속으로 접어든다.
낙엽 쌓인 흙은 자주 미끌린다.
가시달린 잡목에 말라 썩어가는 가지들이 얼굴을 할킨다.
다리에 힘을 주어도 자주 미끌린다.
잡목을 헤치고 나가면 암반이다.
가끔 작은 물길도 나타나 바위가 미끄럽다.
금방 끝나 사거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만날 줄 알았는데 한시간을 지나도 여전히
길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여 능선이다 하면 또 골짜기다.
팔은 긁히고 칠부바지 아래 정갱이도 긇힌다.
겁이 난다. 아직 해는 나무 사이로 강한 햇살을 보내온다.
배낭을 풀고 나무 사이 바위에 옹색하게 캔맥주를 마신다. 너무 빠르나?
다시 힘을 내어 동쪽으로 산을 올라간다.
산을 헤맨지 한시간 반이 지나 등산로에 닿는다.
긴 숨을 내쉬며 보이지 않는 정상쪽을 바라보며 구기마을로 내려온다.
사람 다닌 흔적이 없고 임도길은 잡풀에 덮였다.
몇 차례의 갈림길에서 망설이다 내려오니 길 위에 알밤이 굴러다닌다.
어둑해지기 시작하는데 배낭을 벗고 밤을 주워 담는다.
스마트폰 지도로 구기마을회관을 찾아 내려간다.
차로 올라간 듯한 길을 내려간다.
어두운 길에 자신이 없다.
회관에 이르러서야 내가 많이 내려온 것을 알겠다.
다시 올라가 차를 찾는데 마지막 산아래 가니 차가 안 보인다.
이미 어두워져 차를 포기하고 바보에게 데려오라 전화하니
막 퇴근해 피곤하다면서도 나오겠다 한다.
한번 더 찾아보겠다 천천히 나오라 하고 다시 시멘트 길을 가파르게 내려와
농가 옆을 지나 올라간다. 대추밭이 보인다.
바보에게 전화하여 차 찾았다고 말한다.
팔과 다리가 긇혔다고 말도 못하고 술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