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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마을을 둘러 본 후 길 건너에 있는 수승대로 향했다.
입장료와 주차비가 있었지만 이슬님이 동네주민이라며 지나가니 덩달아 무료입장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산에서는 마냥 신난다.
수승대계곡을 본 첫느낌은 제법 너른 강 같다는 것이었다.
계곡을 보로 막고 계곡 양안은 잘 다듬은 자연석으로 마감했다. 계곡 양편으론 야영장, 식수대,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되어있고 민박집도 많다.
아이들 데리고 와 물놀이하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다 싶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여름휴가는 수승대로 가자고 했더니 딸아이가 고 3인데 어딜 가냐고 단칼에 잘라버린다.
에휴~~ 큰녀석은 고3 여름방학 때 애비의 야영장비를 다 줘서 서해안일대를 일주일 동안 돌게 했는데도 대학 잘만 가더만....
아내도 이젠 늙어가나보다,
전에 없던 조바심을 한다. 공부는 애들이 알아서 하는거지 부모가 하랜다고 하나?
각설하고.....
어느 지역을 가면 그 지역이 변하기 전 옛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꼭 있다. 그런 이들을 만나 그 곳의 옛날 얘기를 듣는 것도 여행
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그런데 이슬님도 그런 사람들 중 한분이었다. 거창 사람은 아니지만 근 30년 전에 황산리 신씨가문의 꽃다운 처자를 만나 결혼하
여 예쁜 색시 덕에 수승대를 자주 드나들었는지 수승대의 옛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수승대계곡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나있던 오솔길, 그 오솔길 바로 옆으로 흐르던 물들은 집채만한 바위와 작은 돌들을 따라
굽이치기도 하고 졸졸 흘러도 갔더랜다. 계곡을 두고 마주한 백제와 신라의 국경지대였기에 계곡 양편으로 신라백제군의 초소로
짐작되는 흔적들도 남아있었더란다.
이슬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 아득한 옛날 오랜 시간 계곡 하나를 마주하고 살았을 백제처녀와 신라총각의 애달픈 사랑얘기도 있었
음직하다는 상상을 하며 계곡길을 올라간다.
구연서원의 녹음
요수 신권선생과 다른 巨儒 두 분 신위를 모신 구연서원이다.
수승대는 오래 전 삼국시대에는 수송대라 불리웠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기에 양국의 사신들을 수송대에서 잔치를 베풀어 환송하며 양국의 근심을 보낸다 하여 수송대라 했는
데, 조선의 퇴계 이황선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근심을 보내는 수송대라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수승대란 이름을 붙여줬
다고 한다.
여기까지 왔을 때 날도 흐리고 늦어 카메라 셔터스피드가 잘 나오질 않아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수승대를 대강 주욱 돌아보고 나
왔다.
이슬님 집으로 가니 형수님이 저녁상을 내오셨다. 장에도 못 가 있는 반찬뿐이라며 어쩌냐고 하시는데 사실 이건 산에서가 의도
한 바였다. 미리 연락을 드리면 형수님은 낯 모르는 남편후배에게 뭘 해먹이나 뭘 어떻게 해야하나 고심할 게 뻔하기에 갑자기 쳐
들어간(?) 것이다.
더구나 못 먹는 음식 두 가지, '없어서 못 먹고, 안 줘서 못 먹는' 이 둘만 빼고는 뭐든지 잘 먹는 산에서는 어딜 가나 음식 염려
는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형수님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분명 평소에 먹는 반찬 그대로임에도 왜 그리 맛나던지....상추쌈을 먹다가 조금 부족하자
집앞 텃밭에 나가 상추를 뚝뚝 따다가 씻어서 먹는 그 맛이란!
뚝딱 두 그릇을 비웠다.
이슬님은 장가 잘 드신 겁니다.^^
불타는 대팻밥(임영태)
맛난 저녁을 잘 먹고 이런저런 세상 사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오카리나모임에서 만난 '불타는 대팻밥(임영태)'이 일을 끝내고 왔
다.
고가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송계사 아래 소정마을에 살고 있는 올해 서른 네 살 된 목수총각이다. 자기 일도 열심히 하고 음악을
사랑하며 세상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친구다.
다음 날 들른 불밥이의 건축현장.
장애아 여섯 명을 돌보고 있는 비구니 세분의 거처라고 한다. 흙벽돌집으로 불밥이가 열심히 짓고 있었다. 한옥 복원, 현대식 카
페, 향교 수리, 황토집 등 못하는 게 없는 목수다.
장가를 보내야 하는데 우리 카페 회원님들 괜찮은 처자 있음 중매 좀 섰음 싶다.
그 많고 많은 재주 중에 하필이면 연애하는 재주만 없는지 원........
불밥이와 간 도자기공방에서
불밥이가 거창에 오면 꼭 모시고 갈 곳이 있다고 한 도자기공방이다. 선배가 한다는 곳인데 가스가마가 아닌 장작가마를 쓴다고
했다.
장작가마는 화력조절이 쉽지 않아 잘 쓰지 않는데 젊은 친구가 대단하다 싶었다.
산에서가 차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곤 인근 절 스님에게서 얻어 온 꽃차를 내왔다. 향이 진하고 달다.
이슬님 집에서, 수승대 음수대에서, 덕유산 고갯길에서 마신 물맛이 약간 무겁고 차지다는 느낌이었는데 약간 진한 맛의 차가 잘
어울린다.
도자기 공방에서 새로 장만한 茶壺
산에서가 차를 마시긴 하지만 매일 마시진 않고 일주일에 한두번 마시기에 차항아리를 별도로 준비하진 않았는데 분청사기로 만
든 차항아리가 예뻐서 샀다.
사진이 실물 크기보다 조금 작게 나왔다.
젊은 사기장이 선물한 차사발.
찻잔이라기엔 조금 크고 차사발이라기엔 조금 작은 김해사발, 황태옥의 형태를 한 분청사기찻잔이다.
모양이 예뻐 이 차사발로 차를 많이 마실 듯 하다.(자기란 말은 일본식 용어라 잘 쓰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노력한다.)
차도 마시고 이런 저런 우리 그릇들도 보며 얘길 나누다 보니 자정이 넘었다. 10월에 가마에 불을 땐다고 하여 그 때 다시 오기로
하고 헤어졌는데 불밥이가 아쉬운지 '한 군데 더 가보실래요' 하기에 그러자고 했더니 거창읍내로 간다.
거창 어느 학교에서 남자로는 드물게 양호교사를 하고 있는 선배라는데 군청 앞에서 편의점을 하고 있는 젊은 친구다. 이 친구도
음악을 좋아하여 오카리나, 께냐, 팬플륫, 기타 등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룬다.(사공님이다)
편의점 앞 탁자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합주를 했다. 오랫 만에 기타 치며 노래도 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지나가던 사람들
이 신기해 하며 듣다가 캔맥주나 음료수를 내려놓고 가기도 한다.
그렇게 즐기고 놀다 보니 새벽 네시가 다 되어 간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정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산에서가 그런 셈이다.
많이 기다렸을 이슬님이랑 형수님을 생각하곤 허겁지겁 돌아오니 네시 반.
낮에 들일을 하곤 곤하게 잠 들었을 이슬님 부분데 그 잘 생기고 집 잘 지키는 백구가 짖는 소리에 잠 깰 것이 틀림 없다.
아침에 들어가기로 하고 수승대 주차장에 가 하루를 정리하는 메모를 하고 나니 다섯 시다.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깨어나니 일곱시.
아침햇살에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챙겨 나섰다.
거북바위와 요수정
거북이 모양으로 생긴 바위라는데 어느 각도에서 보면 정말 거북이 머리가 보인다.
옛날 이렇게 정비(?)하기 전엔 계곡물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연못이 있었다.
요수 신권선생이 보를 쌓아 흐르는 물을 잠시 멈추게 하곤 龜淵(거북연못)이란 이름을 붙여주고는 거북바위에 앉아 벗들과 시회를
하거나 길 건너로 보이는 거창 제일 정자 요수정에서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거북바위의 銘文들. 왼쪽 아랫부분에 요수선생이 숨어 학문을 닦던 곳이란 글귀가 보인다.
이 걸 찍고나니 더 찍을 것이 없다. 요수정 관수루 구연서원은 단청공사 등 보수 공사로 철골 안전망을 쳐놓았고 운치 있었을 오솔
길도 일직선으로 뚫어 우레탄포장으로 차 다니기에만 편하게 해놓았다.
옛 우리 선인들은 길은 길 따라 내었다.
요즘 사람들이야 개발이란 이름으로 길을 뚫지만 우리 선인들은 산짐승이 다니던 길 따라 사람이 다니고 그 길을 조금 넓혀 우마
차가 다니게 했다.
그래서 길이 둥그렇게 흘러가면 둥그렇게 따라 갔고 길이 올라가면 가쁜 숨 몰아쉬고 길이 내려가면 한숨을 돌리며 그렇게 길 따
라 걷고 자연에 순응하며 물 흐르듯 우기지 않고 그렇게 순하게 살아갔다.
그렇게 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에는 미움도 있고 다툼도 있었지만 사랑도 있었고 인정도 넘쳐 흘렀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우리 세대들이 유난히 인정에 목말라 하는 것도 그런 연유이리라.
건너 편 장한 소나무들에 가리워진 곳이 거창 제일의 정자인 요수정인데 보수공사가 한창이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수승대계곡의 이른 아침은 상쾌한 솔향기를 맡으며 유장한 물의 흐름을 따라 걷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수승대계곡엔 유난히 다람쥐가 많았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걷는데 뭔가 쪼르르 달려간다.
다람쥐다!
달려가는 다람쥐를 보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간이 거의 아홉시가 다 되어 간다. 이슬님집으로 갔다. 대문 앞에 세워져 있던 이슬님 차가 없다. 전화를 했다. 들이란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걸 마다했다.
할 수만 있다면 강아지손길도 빌리고 싶다는 농번기에 다시 오라고 할 순 없었다. 그래도....형수님의 맛있는 아침도 못 얻어 먹고
집으로 향했다.
운전 중 너무 졸려 금산휴게소에서 커피 두 잔을 마시곤 냅다 달리다가(일요일이라 조금만 늦으면 차가 심하게 막힌다.) 안성휴게
소에 들러 호두과자를 샀다.
우리 아이들에게 줄 아빠의 여행선물이다.
어릴 적, 오래 전 돌아가신 선친께서 노회 참석 차 며칠 있다 오실 때 꼭 책 몇 권과 과자 몇 개를 사오셨었다.
가난한 시골목사였던 선친께서 쥐꼬리만한 출장비를 아끼고 아껴서 사오셨으리라.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우리 형제들 마음에는 책과 과자에 대한 기대도 대단했다.
그렇게 작지만 소중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지니게 하고픈 아빠의 마음이다.
주마간산 격으로 다녀온 거창길이지만 아름다운 산천과 그 속에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거창은 참으로 매력적인 곳으로
다가왔다.
거창으로 향한 발길이 잦아질 것 같다.
첫댓글 오잉?
이거 언제 다녀오신거에요?
대패밥 장가간지가 언젠데......ㅋㅋㅋㅋ
1부를 안봤군. 거기다 4년 전이고, 불바비가 인자는 아애비라고 썼걸랑.^^
산에서님 사진은 정말로 시소하게 여겨지는것 까지도 작품입니다!
거기에다 글까지....
고맙습니다.
습한 장마에 건강관리 잘하시구요.^^
작년에 수승대 3번가서 3번을 물놀이를 했네요.
물이 좋더만요.
거북바위 옆에서 엄마와 언니와 조카들과 물미끄럼틀을 많이도 탔지요.
근데 넘 멀데요~~~
거창 구경 잘했습니다.
수승대 물에 발도 못담궜는데.... 부럽네요.^^
고맙습니다.
산에서님! 이렇게도라도 소식 접하니 정말 반갑습니다
와! 민들레님도 만나네요!^^
잘 지내세요? 건강하시구요?
이제 사위도 보셨을 듯.^^
앗... 장모님이시닷.... ㅋㅋㅋ 장모님이라 해도 되나요? 훔냐리....
정모참석못한 아쉬움에 카페 이리저리 산책하며 대리위안얻었네요.
맛깔스럽게 정리하신 글에 위로와 감동이~~ 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