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음 전 통도사 관음전(通度寺 觀音殿) 관음전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시는 건물이다. 관음보살은 원만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기 때문에 관음보살을 모신 곳을 가리켜원통전(圓通殿) 이라고도 한다. 관음보살은 세상을 구하고 생명이 있는 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아무런 인연이 없는 중생이라도 “관세음보살” 을 염송하고, 항상 마음속에 새겨서 공경하고 섬기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민간 사회에서 널리 신봉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관음신앙이 유행 하였으며, 지금도 보살을 모신 불전 가운데 연꽃이나 감로병(甘露甁)과 같은 물건을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모양은 본래 깨끗하지만 “욕심. 성냄. 어리석음”의 삼독(三毒)에 물들어 있는 중생의 마음을 이 감로수로 씻어 준다는 뜻이라고 한다. 여러 형태의 관음보살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경주 석굴암에서 볼수 있는 열한개의 얼굴을 가진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 양류관음(楊柳觀音), 스물일곱 개의 얼굴과 천개의 손, 천개의 눈을 가진 천수천안관음(千手天眼觀音) 등이 가장많이 나타나고 있다. 관음전은 통도사의 세 개 영역 가운데 중위 영역(中爐殿)에 있는 세 불전 중에서 가장 위계가 낮은 건물로, 일직선상의 맨 앞에 위치하고 있다. 통도사 관음전은 1725년(영조 원년)에 용암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중수 되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사각형 형태로, 다포계 (多包係) 팔작(八作)지붕이다. 다포계이기는 하나 보살의 불전이라는 위계(位階)에 맞추어 화려한 장식은 하지 않았다. 불전 내부에는 중앙에 등불을 들고 중생들을 부처의 세계로 안내하는 관세음 보살을 비롯하여, 남쪽으로 구도행각을 하는 선재동자가 반복하여 그려져 있다.
통도사 석등
봉 발 탑 지정번호 : 보물 제 471호 소재지 :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재료 및 규모 : 화강암, 높이 300cm 시 대 : 고려시대 통도사내 용화전 앞에 서 있다. 대석(臺石)과 석발(石鉢)의 두 부분으로 된 특이한 모양의 석조물로 탑이라고 하기는 어색하나 다른 적당한 이름이 없으므로 봉발탑이라 불려지고 있다. 네모난 지석대 위에 복련이 새겨진 둥그런 하대석을 얹고 사각의 석주를 세웠다. 그위에 앙련의 상대석과 육중한 뚜껑을 덮은 석발을 얹어서 대략 석등과 비슷한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석주가 사각으로 된 것과 연꽃잎의 양식으로 보아서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석발은 높이 1m, 직경 90cm이며, 탑 전체의 높이는 3m이다. 화강석으로 된 봉발탑은 미래에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는 뜻에서 부처의 신표(信標) 로 법기(法器)를 조서해 용화전 앞에 안치했을 것으로 보인다. 불보사찰인 통도사에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인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청정도량인 사찰에 잡스런 것들의 접근을 막고 구도자들이 번뇌와 잡생각을 떨쳐버리게 하는 사천왕의 무서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머리 한번 조아리고 천왕문을 지나면 밝은 황토 빛 바닥이 눈이 부신 통도사 경내의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경내를 기웃거리며 조금 가다보면 불이문(不二門)이 나오고 불이문을 지나 대웅전 (大雄殿) 조금 못 미쳐 우측으로 작은 규모의 관음전(觀音殿)을 앞에 놓고 나란히 서있는 용화전(龍華殿) 이 보입니다. 관음전을 돌아 용화전 앞으로 가면 그릇처럼 생긴 모양의 큰 돌그릇이 연꽃 받침돌 위에 둥그런히 놓여 있고 탑이라고 말하기엔 탑 같지 않은 특이한 모양의 탑을 만날수 있습니다. 사실 지나치면서 이탑(처음보면 탑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을 보고 문화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3m 정도의 높이에 밥그릇에 뚜껑이 덮여있는 이 돌그릇을 석조봉발(石造奉鉢)이라 부르며 이런 형태의 문화재로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불교문화재이며 그것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奉鉢塔)입니다. 봉발이란 스님이 밥을 얻으러 다닐 때 들고 다니는 그릇이란 뜻입니다. 이는 발우(鉢盂 : 부처 또는 비구가 소지하는 밥그릇을 말함)를 모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가 하고서 평생 동안 가지고 다닌것이 헌옷 한 벌과 밥그릇 하나뿐이었고 평생을 무소유로 살았으니 입적 하실 때 수제자에게 물려줄 것 또한 밥그릇 밖에 없었으니 부처님이 입적을 하기 전, 제자인 가섭존자에게 "발우를 보관하고 있다가 미륵불이 출현하면 물려주라"는 유언을 하며 발우를 맡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륵불이 출연하면 물려주라는 부처님의 유언에 따라 석조발우가 미륵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용화전 앞에 설치된 것입니다.그리고 이런 전통은 큰스님이 입적할 때 받는 발우를 제자로서는 큰 영광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무소유로 살아가기가 힘들것 같습니다. 봉발탑은 사각 지대석 위에 하대석을 놓았고 , 팔각의 중대석에는 마디를 넣어 조각하였으며, 연잎이 조각된 상대석 위에 돌그릇을 놓고 큰 뚜껑으로 덮어 놓았습니다. 고려 공민왕 18년(1369)에 초창된 용화전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不二門에서 본 하로전~~~
不二門에서 본 하로전~~~
不二門에서 본 대웅전과 관음전
不二門(불이문) 사찰로 들어가는 三門 가운데 사찰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이다. ‘不二’는 진리 그 자체를 달리 표현한 말로, 본래 진리는 둘이 아님을 뜻한다.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또한 不二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佛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 여기를 지나면 金堂이 바로 보일 수 있는 자리에 세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문을 ‘解脫門(해탈문)’이라고도 한다.
|
출처: 공간(空間) 원문보기 글쓴이: 허공(虛空)
첫댓글 감사합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