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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글 코너 스크랩 수필 코흘리개가 사랑한 선생님의 팔순 잔치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74 10.11.30 00:41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선생님의 옆에 옆에서 환하게 웃는 아이는 선생님을 사랑했더랍니다.

 소년이 청년 장교가 되어 대전 원동 초등학교를 찾았으나 선생님의 자취는 알 수가 없고 청년이 떠난 뒤에 이 학교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청년이 노년이 되어 선생님을 품에 안았습니다.

 선생님께 시 한 수를 올립니다.

 선생님의 팔순 잔치에 제자가 한 마디할 순서가 잡혀있군요.

 그래서 선생님에 대한 러브레터를 읽습니다.

 

아침 시간 휴대전화가 울리면서 액정 화면에 뜨는 이름, 원경자.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십니다. 팔순의 연세이시라 가슴이 뜨끔합니다. 혹시나

놀란 가슴이었다가 선생님 당신 목소리라서 마음이 놓입니다.

" 선생님, 수술받으셨던 무릎 좀 어떠세요. 별일은 없으시고요?"

제 말씀에 별일이 없다시며 이런 청을 넣으십니다.

" 내가 이제 팔순이 됐어. 아이들이 잔치해준다네. 거기서 자네가 한 마디말을 해주었으면 해서. 시간이 있겠나."

있다마다겠습니까.

" 꼭 갈게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그날 뵙겠습니다. "

그날이 올 때까지 가슴이 두근댑니다.

팔순 나이 가족 모임이라 하셨으니 모이는 사람들은 사오십 명쯤 되겠지요.

그 모임 앞에서 선생님 제자라면서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의 57년 전 제자입니다. 선생님 팔순을 축하합니다. 선생님 만수무강을 빕니다."

이런 밋밋한 말씀을 드려서야 참으로 심심하지요.

그래서 모인 분들에게 들려줄 선생님과 저 사이의 추억을 정리하였습니다.

토요일, 이미 어둠이 깔린 여의도 높은 빌딩 4층 선생님의 팔순 잔치에 갑니다.

장소에 들어서니 선생님께서 반기시며 제 손을 잡습니다.

"와줘서 참 고맙네. "

선생님의 삼 남매가 제게 다가와 인사를 합니다.

"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 생각대로 팔순잔치에 축하객은 오십여 명 정도로 오붓한 가족 모임입니다.

칠순 나이에 선생님은 짝 잃은 기러기가 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아들의 친구가 사회를 보며 축하연이 시작됩니다.

가족들 하나하나 헌화하고 나란히 서서 어르신께 절을 드립니다.

그리고서 내빈 중에 제자인 제가 인사를 대표하는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회자가 제게 마이크를 줍니다.

" 원경자 여사님이 여러분에게 어머니시며 할머니시며 고모며 이모이시나 저에게는 그런 인연 없이도 이 자리에 서니 정말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꽃다운 나이에 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뵙고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아이가 이제서야 선생님께 사랑 고백을 드립니다. 그 러브레터를 여러분 앞에서 감히 읽겠습니다."

하면서 저는 준비한 손 글씨 편지를 펼칩니다.

 

 

첫사랑 선생님

전쟁의 폐허 속에 서울에서 대전으로 피난 갔던 어린 제가 다녔던 원동초등학교 1학년 담임 원경자 선생님이십니다.

1학년을 맡으시고 2학년으로 올라가던 때 선생님은 결혼하셨습니다.

사랑을 잃은 어린 저는 예식장을 나와 울면서 걸었습니다.

눈이 내렸습니다. 눈이 눈물 속에 흘러들어 눈물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떠나간 첫사랑처럼 달콤한 슬픔입니다.

 

제 마음의 소년은 선생님을 늘 그리워했습니다. 생전의 아버님 역시 꼭 한번 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자주 말씀을 하셨기에 저는 황혼의 나이까지 선생님을 잊지 못하였나 봅니다. 전쟁 후 폐허 같은 1953년 교정에서 선생님은 나비춤을 가르치실 때 나비 같으셨고 산토끼춤을 가르치실 때 산토끼 같으셨습니다.

 

낡은 사진첩을 가끔 보다가 선생님이 그리워 써 낸 글이 월간지 한쪽에 실렸습니다. 그 글 속에 나온 '원경자' 선생님 함자를 본 조카분이 선생님 소식을 흥부네 제비처럼 물어다 주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잠시 읽기를 멈춥니다.

 

" 앞쪽 오른쪽 두 번째 테이블에 앉아 계신 조카분. 손 번쩍 들어주세요. 바로 저분이 제 사랑을 찾아주셨답니다. "

선생님의 조카가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박수가 터집니다.

 

세월이 갈수록 선명한 기억 속에 그리움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전화 통화를 하고 을지로 입구에 있는 한 장소에서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벌써 8년 전이되었군요.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가 선생님께 여쭙지도

"자네가 아무겐가? "

묻지 않으셔도 세월의 강 건너 스승과 제자는 단박에 알아보았습니다.

초등학교 6살배기는 50이 훌쩍 넘었고요, 20대 청춘의 선생님은 칠순의 할머니가 되어 계십니다.

 

만나 뵈니 반갑고 기뻤습니다. 교직 생활을 끝내고서 당신을 찾아준 제자가 저 혼자랍니다. 3년 동안만 교편을 잡으셨기에 제자들도 얼마 아니되어서 였겠지요. 그러나 저 말고도 다른 아이들도 선생님을 기억할 것입니다.

"잘한다. 착하다"

하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으니 제게만 그러지는 않으셨던 분이었으니까요.

 

선생님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선생님, 뵙고 싶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는데 참으로 길게 봄바람 가을비에 세월이 지났습니다.

" 아버님께서 생전에 자주 선생님에 대해 말씀을 하셨어요. 한 번 꼭 뵙고 싶다고요. "

" 그래, 아버님께서 내게 잘 해주셨어. 내가 아이들에게 율동을 가르칠 때 아버님께서 자네를 기다리시다가 나를 지켜보시는 모습을 본 적도 있었지. 내가 결혼 후 교직 생활을 그만둔다는 소문을 들으시고는 내게 찾아오셔서는 선생님 같은 분이 아이를 가르치지 않으면 누가 하느냐고 말리기까지 하셨단다"

그때 제 어머니께서는 바로 제 아래 태어난 갓난아이를 보시느라고 학교 출입을 아버지가 어머니 노릇을 하셨었지요.

30대 청년 아버지가 아들의 학교에 찾아 와서는 나비처럼 춤추는 선생님을 홀린 듯 보던 모습이 제게는 그림처럼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때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의 눈빛 초롱초롱한 소년이 되며, 선생님은 빛나는 청춘이 되십니다.

 

편지를 읽으면서 선생님을 뵈오니 눈가를 손수건으로 누르고 계십니다. 떠나간 당신의 청춘 과 어린 학생들이 추억의 눈물 속에서 그리우시겠지요.

 

일본 작가가 쓴 한 줄짜리 시 하이쿠 가운데 선생님께 딱 맞는 시 한 수를 뽑아 올립니다.

 

반딧불을 쫓는 이들에게 반딧불이 불을 비춰주네

 

반딧불처럼 불 밝혀 힘들고 어려운 아이들을 가르치시고 자녀분을 키워주신 선생님은 세상의 반딧불이셨습니다.

 

이제 건강이 염려되는 연세에 예전만 건강이 못하십니다.

어느 날 아침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첫눈이 왔어. 자네 생각이 났어. 눈이 눈에 들어가서 눈물이 난다는 말이 생각나서..."

선생님께서는 눈을 보면 어린 제자 생각이 나시듯이 늙은 제자 역시 눈이 오면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선생님 눈 오는 날 조심하세요. 언 땅 밟을 때 조심조심하세요.

어린 시절에 소년의 첫사랑이셨으나 이젠 선생님을 제 품에 안아드리면

"네게서 아기냄새가 난다. "

하시던 어머님이 되셨습니다.

 

2010년 11월 27일 선생님 제자 황종원이가 올립니다.

 

선생님에 대한 러브레터를 다 읽었습니다.

선생님을 품에 안습니다. 어린 제가 안고 싶었던 사랑이었고

이미 세상을 떠나가신 제 어머니 같은 향기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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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2.01 11:17

    첫댓글 감동입니다. 황동기! 여여하시지요? 홀해가 저무는 마지막 달입니다.

  • 작성자 10.12.01 22:02

    여포 선생 또한 여여하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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