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4년3.29(금) 11;00-14;00
★장소;청계천(청계광장-오간수교)
★참가(9명);강ㅇ일, 김ㅇ석, 김ㅇ섭, 서ㅇ식, 성ㅇ경, 이ㅇ형, 이ㅇ영, 임ㅇ택, 차ㅇ근
★점심식사(12;20-14;00);동대문 정육식당(764-1541)
-청계광장 소라탑을 배경으로-
어느새 3월이 지나가고 춘삼월(春三月)이 다가온다. 바야흐로 백화난만(百花爛漫)의 계절이다. 야외에서 활동하기에도 가장 좋은 시기이다. 벚꽃 시즌에 즈음하여 사자중대는 첫 나들이로 서울 한복판을 흐르는 청계천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청계천의 역사 탐방에 나선다. 8명의 사자대원들이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우산을 받쳐들고 청계광장에 모였다. 역사탐방 코스는 청계광장에서 오간수교까지 3km이다. 소라탑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촬영한 후 수변길(산책로)로 향한다. 청계천은 꼭 가봐야할 필수 관광지로 꼽는 곳 중 하나다.
600년 서울의 역사가 녹아든 청계천은 서울 도심의 하천으로 조선시대부터 근대화까지 서울의 역사가 담겨있다. 청계천은 수도 서울의 대표적인 하천으로 서울의 역사와 문화가 흐르는 곳이며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이자 휴식처이다. 그러나 청계천은 한국전쟁이후 피난민들이 청계천변에 정착하면서 청계천은 더욱 빠르게 오염돼 갔다. 결국 신속하고 간편한 해결책은 전면 복개뿐이었다. 그리고 1976년 8월 성동구 마장동에서 남산 1호 터널을 잇는 총 연장 5,7km의 청계고가도로도 완공됐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청계천은 서울의 얼굴이며 상징이므로 꼭 복원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03년에 청계천 복원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나서 청계천이 서울의 얼굴이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청계천의 환경개선과 변화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역할을 했다. 청계광장에서 바라본 경치가 어느 외국 못지않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청계천 수변길로 들어서면 용의초리가 우렁차다. 한강으로부터 하루 최대 12만톤의 물이 방류된다.
폭포수 아래에 팔석담이 있다. 팔석담(八石譚)은 우리나라 팔도의 기운과 정기를 한 곳에 모은 영험한 곳이다. 이곳에 서서 고향도 느끼고 간절한 소망도 빌어볼 수 있다. 그 소망이 이루어 지도록 천지간의 모든 것들이 뜻을 모아준다. 아름다운 경치를 조망하고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걷는다. 일상의 피로가 씻겨나가는 듯하다. 청계천 상류의 첫번째 다리인 모전교가 반긴다. 모전교(毛廛橋)는 1412년(태종 12) 석교로 조성했다. 다리 모퉁이에 과일전이 있다고 해서 모교 또는 모전교로 불렀다. 여기서부터 청계천 다리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조선시대 설치된 다리는 9개이며, 현재는 22개 다리로 200-300m 간격으로 설치돼 있다. 두번째 다리는 광통교(廣通橋)이다. 광통교는 청계천 다리 중 길이보다 폭이 넓은 다리이다. 원래 다리 이름은 대광통교였다. 명륜동과 혜화동 두 방향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합쳐지던 곳으로 넓은 다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58년 청계천 복개로 난간은 창경궁과 창덕궁, 탑골공원 등으로 옮겨지고 본채는 땅으로 사라졌다. 45년 후 청계천이 다시 햇볕아래 모습을 드러내면서 광통교는 원래 위치에서 서쪽으로 155m쯤 옮겨져 복원됐다.
숭례문과 경복궁을 잇는 중심 통로에 위치한 가장 큰 다리어서 상징적인 의미가 컸다. 임금이 행차할 때마다 광통교를 지났고 명나라 사신들도 서쪽의 동대문 대신 남쪽의 숭례문을 지나 이 다리를 건너서 궁궐로 입궁하도록 안내하였다. 한양의 랜드마크였던 셈이다. 광통교는 처음에는 흙다리였는데 1410년(태종!0) 대홍수로 도성안 종로거리가 모두 침수되고 다리가 붕괴되자 태종은 신덕왕후(태조의 계비) 무덤에 있는 병풍석을 가져와서 다리를 만들라고 명했다. 백성들이 밟고 다니는 다리에 왕비의 무덤에 있던 석재를 쓰게 한 것이다.
친어머니처럼 따르던 태종이 신덕왕후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때문에 만들어진 다리가 바로 광통교(석교)다. 신덕왕후 강씨의 능을 장식했던 정교한 구름 무늬와 한가운데 두손을 합장하고 머리에 관을 쓴 신장상은 그 문화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세번째 다리는 광교(廣橋)다. 옛 광통방 인근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라는 의미에서 광교라 일컬어졌으며 현재 광교 사거리가 이 위치에 해당된다. 광교를 지나면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가 나온다. 수백 마리의 말과 군사가 이동하는 장면을 벽면에 그려져 있다. 끝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그 길이가 무려 186m에 이른다. 반차도의 중간중간에는 바닥에 그림의 의미와 설명을 새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반차도에 등장하는 인원은 1,779명이며 779필의 마필이다. 엄청난 규모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반차도는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대왕이 아버지 묘소에 행차하고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을 수원화성행궁에서 모시러 가는 200리 길의 행차 장면을 그린 것이다. 김홍도 등 당대의 화가들이 그린 이 반차도는 왕실의 위엄과 질서를 장엄하게 표현하였다. 왕실의 기록화이자 한 폭의 커다란 풍속화를 연상시키는 이 반차도는
왕실 행차의 격식과 복식의상, 악대구성 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반차도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장통교(長通橋)로 향한다. 장통교 다리 근처에 장찻골로 불리는 마을이 있었다 하여 이 부근에서는 장찻골다리라 부르기도 하였으나 원명은 중부 장통방에 있던 다리이므로 장통교 혹은 줄여서 장교라 하였다. 반차도는 삼일교 전에서 끝난다. 삼일교는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삼일로 인근에 위치하여 삼일교라고 하였다.
다음에 만나는 교량은 유명한 수표교(水標橋)다. 1441년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수표를 만들어 청계천 수위를 측정한데서 유래하였다. 영조는 준천 이후 수표교 교각에 경진지평(庚辰地平)이란 글자를 새겨서 개천 준설의 표준을 삼도록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수표교 건너에 왕의 초상화를 모신 영희전이 있었기 때문에 국왕들은 설, 추석, 단오 등 명절에는 수표교를 지나 영희전을 왕래하였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로는 숙종이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던 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장통방에 있던 여염집에서 문밖으로 왕의 행차를 지켜보던
아리따운 아가씨를 보고 마음에 들어 궁으로 불러들였는데 그가 바로 장희빈이었다. 정월에는 수표교에서 매년 연날리기 행사를 하였다. 원래 수표교는 장충단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다음은 관수교다. 이곳에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濬川司)가 설치되어 있었고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했다는데서 유래한 옛 교량 명칭으로 현 관수동에 위치한다. 그 이후로는 세운교, 배오개다리, 새벽다리가 차례로 나오고 이어서 마전교가 등장한다. 마전교(馬廛橋)는 1420년 (세종2) 당시 우마(牛馬)를 매매하는 마전(馬廛)이 있었기 때문에 마전 앞에 있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버들다리를 지나면 오간수교이다. 오간수교(五間水橋)는 한양도성 안에 있는 다리로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다섯칸으로 된 다리였다. 조선 명종때 임꺽정은 이 다리를 통하여 달아났다고 한다. 이상으로 역사탐방을 마치고 출출한 배를 안고 군침도는 먹거리가 풍부한 음식점으로 향한다. 먹자골목(종로46길)으로 들어서면 동대문 정육식당이 나온다. 성유경 사자대원은 학술토론회 참가로 함께 동행하지 못하고 식사에만 자리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자대원들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니 행복이 따로없다.
오찬 메뉴는 돼지고기 모듬한돈(3인분, 67,000원)에 된장찌개와 누릉지다. 회식자리에 술은 약방에 감초다. 사자대원들은 술을 좋아 하지만 주로 천작(淺酌)한다. 권커니 잣거니하면서 식사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야기가 실타레처럼 술술 나온다 이광형 사자대원은 53년전 OBC(초등군사반) 교육시 겪었던 추억들을 소환하여 경험담을 구수한 입담으로 영화필름처럼 이야기하는데 연신 웃음소리가 그치질 않았다. 김윤석 사자대원은 아! 그런일이 있었구나 하고 그 당시 상황을 잊고 있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듯이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오후 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임ㅇ택 지회장이 큰 마음 먹고 한턱을 쏘았다. 만장생광(萬丈生光)한 마음에 박수로 화답하였다. 4월은 동기회 월례회(올림픽공원 산책)로 대체하고 5월17일(금) 서리풀공원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동대문역에서 각산진비(各散盡飛)하였다. 사자대원들과 눈을 마주하면 마술처럼 마음 속 근심 걱정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사자대원들은 화양연화(花樣年華) 시절 4년 동안 한솥밥을 먹으면서 동고동락했던 절친한 동기생이자 죽마고우 못지 않은 소중한 친구들이다. 사자대원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반갑고 정이 더 든다.
물 맑고 경치 좋은 청계천 수변길을 걸으면서 먹구름이 세찬비를 만나 듯 진한 정분을 나누웠다. 이구동성으로 서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으며, 청계천에서 보낸 시간은 매우 유익하고 낭만적인 시간이었다고 술회하였다. 노년에 우정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모든 순간이 정말 즐겁고 행복했다. 사자중대 브라보!
.청계광장에서 바라본 청계천의 풍경
폭포수를 배경으로
팔석담과 모전교
청량한 물소리를 들으면서 산책
광통교
광교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를 자세히 바라보는 김ㅇ석과 이ㅇ영 사자대원
장통교
삼일교
새순이 돋고 연초록빛으로 물드는 버드나무들
유심히 바라보는 수마리의 잉어떼들
우천시 수문 자동열림을 바라보는 중
우천시 자동수문 열림
수표교
관수교
말발굽 모양의 돌이 왜 여기 있지?
배오개다리
청둥오리 부부
새벽다리
두루미과 새
버들다리
오간수교
청계천을 벗어나 식당으로 향하는 중
먹자골목(종로46 길)
동대문 정육식당
성ㅇ경 사자대원과 만남
돼지고기 모듬한돈(3인분 6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