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을 위한 맥거핀
최필립
시네마에서, 시네마에서
부러진 부채를 들고 웃고 있었어 넌
바커스와 술을 마시다 진탕 취해서
영원한 치통을 앓게 된 사내와
어깨동무를 했다 반쯤 죽어서
가로등 없는 거리를 배회했고
그래서 거기는 시네마였네 그들은
누아르를 향수처럼 뒤집어쓴 채
각자 쓴 서정시를 들리지 않게 낭송했지
몸에 만트라를 새긴 여자와
매일 다른 반다나를 쓰는 남자가
송곳으로 붉게 쓴 대본을 놓지 않고
서로의 몸을 차갑게 애무할 때
시네마와 시네마 사이에서 배우들은
무곡이 흐르고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울음을 압축해 사탕처럼 굴리며
다음 배우를 고대하고 있었지
그러나 빈 프레임 속에 누가 나타날까
사라지지 말아줘, 불러도 맴돌기만 했어
목소리는 픽셀처럼 웅얼거리며
이명은 빗나가기 위해 존재하니
다이어그램의 모서리마다 누가 매달려 있었다
빙빙 돌며, 검은 연기가 태양열처럼 내려앉으면
뼈대부터 녹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시네마에서, 시네마에서
팝콘 같은 안개가 잔뜩 낀 구석 한편에서
베레모를 뒤집어쓰고 서로 다른 얼굴이 되어
축사가 사라진 결혼식이라 상상하며 우리는
지켜지지 않아도 될 약속을 속삭이자
파형의 빗변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자
실패가 가능해질 때까지
비현실에 현실이 있다고 생각해
끝내 말하지 않음으로써
영원이 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해
⸻월간 《현대시》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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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필립 / 1997년 출생. 캘리포니아대 어바인교 교육학과 휴학. 2021년 상반기《현대시》 신인상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