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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季煥과 세상걷기(海外) 스크랩 베네치아의 곤돌라
5/공석환 추천 0 조회 35 09.08.29 00:48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산마르코 대성당의 부속탑 앞에서

 

 

이탈리아의 지명에 대해서는 영어식으로 통하는 이름도 있고 이탈리아내의 이름으로 통하는 경우도 있다.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내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반면에 영어로 국가 이름인 이태리, 로움, 플로렌스, 베니스 등의 도시 이름이다. 로움보다는 로마가 더 일반적이나 나머지는 영어 이름이 더 익숙한 것 같다.

 

아마 문학의 영향일 것이다. '베니스의 상인', '플로렌스의 개'라는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지 지명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 따라서 베네치아라는 이름을 사용하겠다.

 

 

 

 

 

 

베네치아는 6세기경 서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훈족이 유럽을 침략할 때 그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습지에 있는 작은 섬들을 연결하여 간척을 한 인공섬이다. 옆으로 길어 전체적으로 물고기 모양이라는 것이 흥미있다. 무솔리니가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다리를 만들어 이제는 육지에 연결이 된다.

 

다만 위 지도에서 왼쪽 위부터 다리로 넘어 온 후 걸어서 산마르코 대성당을 가기는 불편하다. 도로가 작은 운하로 분할되어 미로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를 타고 산마르코 대성당에 가까운 부두로 간다. 배를 타고 가면서 베네치아 전체에 대해 더 잘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다리를 건너 배를 타는 곳에 와 보니 큰 크루즈선이 보인다. 베네치아가 유명한 관광지라서 공항도 붐비고 관광을 위한 크루즈의 운항도 많다고 한다.

 

우리는 크루즈 왼쪽에 보이는 작은 배와 비슷한 것을 타고 베네치아 시내 중앙부로 향한다.

 

 

 

 

 

 

 

배를 타고 가다 보니 베네치아 중앙부가 한 눈에 다 보인다. 기대감에 슬슬 가슴이 설레여지게 된다.

 

 

 

배 오른쪽에도 베네치아 섬의 일부가 보인다.

 

 

 

이제 내릴 부두에 가까워지니 산마르코 성당과 유명한 부속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주위의 건물도 아치가 있는 고풍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드디어 배에서 내려서 산마르코 성당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였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이탈리아의 강한 햇빛을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구입한 하얀 천 양산을 쓰고 처가 걸어가고 있다.

 

 

 

 

걷다가 드디어 작은 운하와 그 양 옆에 서 있는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네치아가 드디어 그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옆으로 보이는 이 평범한 건물이 사계로 유명한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가 살던 집이라고 명패가 붙어 있다. 비발디는 신부로서 성가대를 지휘하다 여자들하고 연예를 하게 되어 속세로 나와 본격적인 음악가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베네치아를 와 보니 사계의 가볍고도 쾌활한 선율의 분위기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마르코 대성당 앞에 도착하였더니 평일인데도 인산인해의 관광객들이 몰려 있다.  베네치아는 음악 컨서트가 자주 열린다. 위 포스터의 오른쪽 사진이 맹인으로서 유명한 테너인 '안드레아 보첼리'이다.

 

 

 

 

산마르코 대성당은 동로마시대의 양식인 비잔틴 양식으로 건축한 것이다. 앞에서 본 밀라노 대성당이 고딕양식으로 뾰족한 첨탑 모양을 한 대신, 비잔틴 양식은 돔과 원의 곡선이 주가 된다.

 

 

 

성당 상반부를 가까이 사진을 찍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석회암으로 정성스럽게 부조를 만들었고 다시 밀라노 대성당은 대리석으로 화려한 구조를 만들었는데, 이제 산마르코 대성당을 보게 되니 화려함이나 정교함에서 한수 더 위다.그리고 벽면에 붙은 금이 도금이 아니라 실제 금덩어리라고 그런다.

 

내부에도 들어가 보았는데 외부 못지 아니하게 화려하였다. 다만 내부는 사진 촬영 금지라서 소개를 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동방에 무역을 다녀 와서 무사히 다녀 온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증한 금덩어리나 귀중한 도자기, 예술품을 성당에 부착 내지 보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마르코 대성당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오른쪽에 부속탑이 일부 보인다. 이 부속탑은 1910년경에 지진으로 밤사이에 광장으로 무너져 내렸다고 한다. 그 때 다행이도 밤이라서 다친 사람은 없었고 다시 복구하였다고 한다.

 

  

 

광장을 지나 곤돌라를 타는 곳으로 가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나하고 처만 타고 아이들은 이 다음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신혼여행으로 와서 타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부모만 타는 것은 불공평하다. 자기들도 먼저 경험해 보면 다른 사람들하고 와서도 더 여유가 생긴다고 하여 반란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서 다섯가족이 다 타기로 하였다. 곤돌라 30분 타는 요금이 일인당 약 9만원 정도이니 만만치 아니하였다.

 

 

 

 

드디어 가족들이 환한 표정으로 곤돌라를 타게 되었다. 나는 곤돌라에 연인이나 부부 등 2사람만 타는 줄 알았더니 하나의 배에 6명까지 탈 수 있다고 한다.

 

 

 

작은 다리 밑을 지나기 위하여서는 물론 고개를 숙여야 된다. 이러한 곤돌라를 젓는 것이 숙련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베네치아에서는 곤돌라 사공도 인기있는 직업이고 자격시험에 합격하여야 한다고 그런다. 젊은 사공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계속 일하는 사람도 보인다.

 

 

 

 

지나다 보니 다른 관광객으로부터 우리가 사진을 찍히는 신세가 되었다. 곤돌라의 외부는 검은색으로 통일된다. 위 좁은 물길을 서로 반대방향으로 피해가자면 기술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작은 물길에서 베네치아 중간을 흐르는 중앙로에 해당하는 'Canal Grande(대운하)'로 나오게 되었다. 멀리 19세기에 지어진 유명한 리알토 다리가 보인다.

 

 

곤돌라에는 악사와 가수가 타서 노래를 불러서 흥을 돋구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배마다 악사와 가수를 태우지는 아니하고 3배에 하나씩 중앙에 가수가 타서 노래를 불렀다. 위 사진 중앙 배에 서 있는 사람이다. 풍부한 성량의 바리톤으로 이탈리아 가곡과 민요를 아코디언 반주에 맞추어 분위있게 노래를 불러 주었다. 더 많은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노래를 듣다가 팁을 더 주어야 한다.

 

 

 

대운하에서 가족들이 노래를 들으며 흥겨운 표정으로 포즈를 취했다.

 

 

출발지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운하에서도 오른 쪽에 보이는 가수가 다시 여러 곡을 불렀다. 당연히 작은 골목이라 목소리가 더 잘 들렸다.

 

 

곤돌라를 내리고 나서 골목길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가족이 맛있게 먹었다. 날씨도 덥고 여행 분위기에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 꿀맛이다.

 

 

 

 

 

 

 

산마르코 광장에 돌아 와서 시간이 남길래 옆에 있는 카페에 들려서 처와 함께 카푸치노 두잔을 주문하였다(주의할 것은 이탈리아에서는 그냥 커피를 시키면 약처럼 독한 에스프레소를 주기 때문에 카페라테나 카푸치노로 주문해야 한국사람이 마실만 하다).

 

그런데 카푸치노 두잔의 가격이 17유로로서 물도 같이 가져다 주는 웨이터의 팁까지 합쳐서 20유로를 내었다. 카푸치노 한잔에 만팔천원을 낸 것이다. 내 인생에 가장 비싼 커피를 마신 것인데 커피 맛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특별한 것은 없고 광장 옆에서 쉬는 자리 값이라고 보면 된다.

 

 

 

베네치아는 유리 공예가 유명하고 숙련된 기술자가 즉석으로 유리병을 만드는 시범을 보았다. 시범을 본 후 사람들이 부담없이 기념품으로 살수 있는 커피잔과 컵을 보았다. 위 사진이 그 것이다. 화려하고도 잘 깨지지 아니한다.

 

 

 

 

이제 베네치아 관광을 마치고 배를 타러 가는 도중 마지막으로 처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도중에 오히려 뒤에서 딸에게 사진을 찍혔다.

 

 

말로만 듣던 베네치아를 다녀 와 보니 사람이 역경을 이겨 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할 수 있는 가를 다시 생각해 본다. 서로마가 망한 후 서유럽은 혼란 상태에 빠진다. 처음에는 게르만 용병들이 약탈을 하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몽골족인 훈족이 서유럽을 휩쓸고 다닌다.

 

지금도 훈족의 아틸라는 유럽사람들에게 악명이 높다. 우리는 '훈남'이 좋은 의미인데  우리나라 사람들 영어이름에 'Hoon'이 들어가는 것은 별로 인상이 좋지 아니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하에 베네치아 부근에 살던 사람들이 훈족이나 다른 게르만 족의 침입에 방어를 하면서 무역을 할 본거지로 작은 섬들을 연결하여 간척을 하여 지금의 베네치아 섬을 만든 것이다. 위에서 사진으로 보여지듯이 사람들이 섬을 만들고 건축을 한 정성은 대단한 것이다.

 

베네치아는 11세기 십자군 운동의 중심지로 16세기까지 동방과의 무역의 중심지로 번성을 한다. 산마르코 대성당의 화려함이 그 것을 보여 준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도 그 시대에 나온 것이다.

 

다만 베네치아인들은 장삿군으로 야비한 짓도 하였다. 십자군 운동 때 소년들을 십자군으로 모집하여 노예로 팔기도 하고 동방무역의 경쟁자인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기 위해 용병들을 사주하였다. 다만 동로마제국은 이미 터키의 압력을 받아 쇄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동로마제국의 멸망이 베네치아의 책임만은 아니다.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침공하여 이탈리아 왕국에 복속시키고 그 이후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베네치아의 대외 무역은 줄어 들게 된다. 다만 나폴레옹도 베네치아를 들어 와서는 자기가 본 도시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감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베네치아는 수많은 관광객이 쓰는 돈에  의존하는 도시이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수위가 올라가서 베네치아 보존을 하기 위한 댐을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에서도 건물의 아래층은 민물이 오면 물이 들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것을 직접 본바 있다.

 

정리하면 베네치아에서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면서 사람들이 역경을 극복하고 노력하려는 의지에 감명받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아시아 주변의 강국 사이에 끼어 있고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서 망나니 짓을 하는 상황에서 국민이 화합하여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국민이 전세계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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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08.29 00:48

    첫댓글 베네치아 듣던 것 같이 신기하기는 한데 물가는 엄청 비싸다. 물론 반나절 보고 나오기는 문제 안 되겠지.

  • 09.08.29 23:48

    산마르코 대성당은 건물이라기 보다는 조각품처럼 보인다. 모가나지 않은 원형모습이 무언가 넉넉함이 풍기는듯 하다. 부산에서 덕택에 잘 보고 있다. 즐거운 가족여행 부럽구나~ 늘 행복한 가족이길 빈다.

  • 09.09.01 22:26

    베네치아 전체가 관광지이구나. 지도만 보더라도 호기심이 간다. 그런데 저 베네치아가 서서히 물에 잠겨지고있다 하던데... 사실인가? 공박이 답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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