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판금갑옷에 대해 다른의견을 가진분의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판금갑옷(풀플레이트 아머)의 가치
전신을 가리는 판금갑옷은 일단 기술적인 면으로 보면 갑주중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것입니다. 이것은 거의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균질한 두께와 강도를
가진 철판을 제조한다는 것 자체가 고도의 제련기술을 요하며 철판이 가질수밖에
없는 유연성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한 관절부의 입체적인 설계 역시 인간의
신체구조와 각 관절의 운동범위에 대한 깊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흔히 말하는 풀플레이트 아머의 두께는 겨우 1-2밀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무게도 생각보다 그리 무겁지는 않으며(25킬로그램 정도) 활동성 역시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기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풀 플레이트 아머의 방어력은 단순히 1밀리 두께의
철판이 가진 강도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철판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타
종류의 재료(직물, 피혁, 얇은 쇠사슬)에 비해 적은 두께로도 뛰어난 방어력을
제공합니다. 판금갑옷은 여기에 한가지 요소를 더 추가한 것인데, 오늘날의 전차
장갑과 같은 '경사각'의 개념입니다. 예를 들어 화살에 의해 공격을 받을때
플레이트 아머의 경우 정확히 수직으로 맞지 않으면 화살이 미끄러져 튕겨나가기가
쉽습니다. 비늘갑옷(찰갑), 피혁갑옷, 사슬갑옷 등은 그런 경향이 덜하죠.
이는 도검류에 대해서도 유용합니다. 정확히 내려치치 않으면 미끄러져 나감으로서
충격을 최대한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철퇴나 곤봉같은 무거운
둔기류를 상대할때도 유연한 갑주에 비해 훨씬 우수한 방어력을 제공해줍니다.
미끄러지는 효과에 더하여 단단한 철판의 특성상 형상의 변화에 대해 어느정도의
저항력을 가지기 때문이죠.
풀플레이트 아머가 기술적으로 성숙된 시기에 이르러서는 화살이나 도검류에 대한
피탄경사(적절한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현대어를 씁니다 ^^)가 치밀하게 계산되어
제작된, 고도로 과학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풀플레이트 아머가 왜 그리도 무식한 방어구로서 인식되어지는 푸대접을
받고 있는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수 있겠습니다.
1. 제대로 된 풀플레이트 아머는 전적으로 사용자의 체격에 맞추어 주문제작 된다.
더더군다나 그 제작공정이 대단히 까다롭다. 결국 이 두가지 이유때문에 가격이
너무나도 비쌉니다. 이것을 한벌 제작할 비용으로 궁수나 포수를 몇명 키우는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죠. 갑옷 자체가 가지는 방어효과와 기술적인 면은 분명히
뛰어났지만 현대적 개념인 가격대 성능비로 보면 영 아니올시다입니다.
대량생산이란것은 말 그대로 대단히 어렵습니다.
결국 기사계급이 몰락하면서 풀플레이트 아머는 일부 부유계층의 장식물, 혹은
의장용 복장으로 전락하거나 흉갑부분만이 남아서 다수의 병력을 무장시키게 됩니다.
2. 풀플레이트가 기술적으로 완성된 시기에는 이미 화약무기를 비롯한 신무기,
그리고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새로운 전술이 출현하여 갑주의 효력을 발휘할수가
없었다.
대략 풀플레이트 아머의 제작기술은 14세기즈음하여 거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시기부터는 화약무기가 서서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사실 화약무기가
주력병기로 자리잡은것은 한참후의 일입니다만 그래도 판금갑옷같은 값비싼 갑주류의
몰락을 이미 예견하고 있던 시기라고 볼수는 있습니다) 게다가 전술적인 면에
있어서도 전쟁이 더이상 기사계층끼리 모여서 떼거리로 격투하는 로맨틱한 방식이
아닌, 평민출신의 보병이 집단적으로 운용되고 중기병에 대항하기 위한 밀집방진
(물론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 기원만 가지고 따지자면
고대 그리스와 같은 태고적부터 존재했다가 중세 암흑기를 거쳐 재등장한것이죠)과
궁병과 같은 장병기의 집단적 운용으로 인해 갑주를 착용한 소수정예 기사의
효용성이 사라져 가던 시대였습니다.
결국 화약무기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면서 평범한 사람들도 단기간의 훈련을
통해 훌륭한 사수로 거듭날수 있었고, 이는 급속도로 전장에서의 기사의 위치를
격하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됩니다. 활을 쏘는 궁병이나 갑옷을 입고 창검을 휘두르는
기사의 경우 선천적 재능과 함께 장기간의 훈련을 통해야만 쓸만한 전사가 될수
있었으나 화약무기는 평민도 며칠만 훈련을 받으면 상당한 전투력을 가질수
있었으니까요.
풀플레이트 아머의 강화는 대체적으로 이 시기에 잠깐동안, 그러나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로 60킬로, 70킬로에 이르는 엄청난 중장갑까지 등장했지만
(이것때문에 플레이트 아머는 모두 굉장히 무겁다는 잘못된 인식이 박힌 것입니다)
어찌보면 이것은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기사계급의 최후의, 아주 처절한
발악이라고 볼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아무리 철판두께를 늘려도 총알은 막을수가 없었고 둔중한 몸으로 제대로 된
전투도 수행할수 없었기에 기사는 역사의 뒷길로 사라지는 신세가 된 것이죠.
결론적으로 풀플레이트 아머는 기술적인 완성도나 방어구로서의 가치만 가지고 보면
꽤나 훌륭한 물건이라고 볼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전술적인 관점에서 볼땐
완전히 실패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푸대접을 받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출처: <디펜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