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빛 금계국이 한창이다. 흰빛 마아가렛꽃과 어우러져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다. 꽃송이가 작으면서 줄기가 길고 가늘어 모여서 피어나면,
들꽃처럼 연약하게 흔들리기라도 하면 그 자태에 마음을 홀딱
빼앗기게 된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그립다. 혼자 보기에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꽃들처럼 함께 흔들려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단풍나무 그늘이 길어지는
어스름 저녁에 마주앉아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로 고개를 끄떡거리고
싶어진다.
특히 수많은 꽃봉오리 중 반 정도 피어난 때가 더욱 그렇다. 싱그러움의
절정기는 바로 이때여서 덩달아 고요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 꽃들 앞에서는 누구와라도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지난주에 그랬다.
이번주에는 우르르 전부 피어나 노랑 물감을 부어놓은 듯
장관이지만 우리네 마음을 지나치게 들뜨게 한다. 속엣말보다는 겉말만을
쏟아낼 것 같다. 차라리 이런 날은 혼자인게 적격이다.
햇살이 지나가고 노을이 지고 어둑한 저녁이 되면 그 꽃들도 무대를 벗어나
화장을 지운 배우처럼 수수해 진다. 한결 가까워진 느낌으로 편안하고 위안이 되는
저녁.
그곳에서 저녁을 먹는다. 상추 한 주먹, 찬 밥 한 공기, 라면.
그리고 그가 주먹만하게 기르겠다고 누누이 약속했으나 새끼손가락
마지막 마디만한 딸기 한 주먹, 간소한 저녁이지만 무리지어 피어난 금계국
꽃들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나란히 앉아 먹는 저녁.
오랜만에 그 글이 생각난다. 처음 종자골에 땅을 샀을 때 감사의 글.
집은 손바닥 만해도 뜰은 운동장 만해
사방팔방 푸른 나무 자라나 살랑이고
맑은 바람 마음대로 들락거리고 꽃향기
줄지어 마실 다니는 곳 어디에 없나요
어린 이는 텐트치고 산속에서 살자하고
도시 사람은 공원 옆에서 살자고 하네
농부 아들은 자신에게 시집오라 말하고
부자는 큰 집에 큰 정원에서 살자하네
가난한 남자는 빙그레 빙그레 빙그레
이십여 년 흐르고 흘러 오십 줄에 서서
오두막 한 칸 지어 놓고 너른 뜰에 나
앉히고 그 남자 빙그레 빙그레 빙그레 빙그레
지금도 그는 빙그레 빙그레 빙그레 나도 빙그레 빙그레
무엇과 비교하랴. 무엇에 견주랴. 무얼 더 바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