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 편력기 -其10-

[동우]

2003년 쯤, daum의 어떤 카페에 ‘나의 영화 편력기’라는 글을 아홉번에 걸쳐 올린 적이 있었다.

중학시절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영화를 보고나서 간단하게 메모를 하여둔 노트가 있었는데 쉰 무렵에 펼쳐보니 소년과 청년시절 가히 나는 영화광이었던가 보았다. (십수년 남짓동안 천여편이 넘는 영화들이 기록되어 있었으니.)

그 노트의 메모에다가 조금 살을 붙여 나열하였던 것이 ‘나의 영화 편력기’라는 어줍잖은 글이었다.

제법 인기가 있었던지 조회수가 심심치 않아 즐거워 하기도 하였지만, 바야흐로 현란한 영화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영상시대에 고리타분한 옛영화 얘기라는데 스스로 맥이 빠져, 어느날 그만 중동무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나고 나니 그 노트에 아직 남아있던 영화들이 똑 변소 다녀와 무엇처리 안한 것처럼 찜찜하기도 하려니와, 빨리 배설하여 정리해 버리는게 예순넘은 정신건강상 좋을 듯도 하여 되지도 못한 썰을 다시 풀기로 하였다.

나의 영화 편력기 -其10-

다시 늘어 놓음세, 옛 영화 얘기들.

나의 영화편력기 -其9-를 쓰고 나서 어언 십여년.

요동치는 세월이었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등 외적(外的)인 환경들 뿐 아니라, 내 주변 것들이나 내 내적(內的)인 것들 역시.

아이들 서른을 버얼써 넘어서 큰 아이는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도무지 할비라는 호칭은 내 것은 아닐 듯 하였는데 어느새 우리 부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는 아기들의 귓전 울림이 자못 흐뭇한 지경이 되었으니 주름살 뿐 아니라 늙어가는 의식(意識)이란 그렇게 자연스러운 섭리일 듯 하네.

시대의식의 패러다임이란 역사적으로 지대한 의미가 있을터이나, 백년을 넘지 못하는 시시각각 인간의 연령의식의 패러다임이야말로 정작 우리 실존을 지배하는 리얼리즘의 정수(精髓)가 아닐수 없을세 그려.

*보고 싶은 얼굴* 김기덕감독(요즘 김기덕감독과 동명) 신성일, 엄앵란주연.

가수 현미의 남편(본처는 따로 있다지)인 섹소폰불던 작곡가 故이봉조가 생각나나?

블루스 풍의 느리고 감각적인 곡들을 많이 만들었었지, 아직도 내 입이 흥얼거리는 이 영화의 주제가.

*페니의 환상* 수잔 스트라스버그 출연의 공포영화.

*야망의 대서부* 트로이 도나휴주연, 덩치 커다란 미남배우 트로이 도나휴의 드문 서부극.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마리솔주연, 아, 마리솔을 떠올리면 애늙은이같은 자그마한 소녀, 캐스터넷을 부딪치며 플라멩코를 추면서 부르는 허스키의 노랫소리가 귓전에 아득하네.

*젊은 사자들* 에드워드 드미트릭감독. 말론 브란도, 몽고메리 크리프트, 딘 마틴 출연.

당시 노만 메일러와 쌍벽을 이루었던 소설가 어윈 쇼우원작의 흑백영화.

웅얼웅얼 중얼거리듯 구사하는 나치장교역 말론 브란도의 대사법은 이 영화에서도 여실하였지, 좌우간 말론 브란도는 언제나 멋있었고, 몬티라고 불리던 미군병사 몽고메리 크리프트 역시 매력적이었지.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폴 뉴먼, 로드 스타이거등 60년대 미국 메소드스쿨 출신의 연기자들의 독특한 매력이란 어딘가 아웃 사이드적인 짙은 외로움이 뿜어져 나오는 연기..

*황야의 3상사*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출연. 프랭크 시나트라의 패거리들 기억나나? 딘 마틴, 세미 데이비스 주니어등..

*황금벌판의 혈투* 김석훈, 김명희출연. 옛날 배우 김석훈도 미남배우였었지.

*욕망의 결산* 신성일, 최남현, 김혜정출연. 욕망의 결산이란 언제나 비극적 결말..

*신촌 아버지와 명동 딸* 김승호, 방성자, 김혜정출연. 고지식한 아버지와 개방적인 딸의 갈등을 그린 영화인데 희극영화였지.

*나갈길이 없다* 김승호, 최지희, 박노식출연의 한비(필리핀)합작영화, No way out하면 무슨 실존적 구호 같지만 영화는 일제시대의 남양의 정글 전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클레오파트라* 린다 크리스탈출연의 삼류 오락영화.

*스팔타커스* 스티브 리브스라는 근육질배우가 출연한 오락영화

*자렌에서의 탈출* 율 부린너주연, 사하라사막을 횡단하는 혁명가 얘기인데..

*유성과 같은 사나이* 커크 다글라스주연의 서부영화. 쇠줄이 없는 곳으로 별과 같이 떠도는 서부의 사나이..

*브라크 힐의 결투* 로버트 테일러출연의 서부영화. 목장을 지키는 사나이.

*서울에서 제일 쓸쓸한 사나이* 최무룡출연. 출세를 위하여 사랑도 뒷전.

*십년세도* 신영균출연, 정조를 임금으로 만들었던 윤국영의 권불십년의 이야기.

*마도로스 박* 박노식출연. 가수 오기택의 노래 ‘마도로스 박’이 이 영화 덕으로 유행하였지.

*성 베드로* 하워드 킬, 존 삭슨출연, 70밀리 종교영화였지, 아마..

*빗나간 청춘*

*미스킴의 이중생활* 집을 사기 위한 거짓 취직 행각

*나는 속았다* 문정숙출연. 여간첩 이수임과 그녀의 연인 윤강국을 소재로 만든 반공영화.

*순간에서 순간으로* 스티브 매퀸, 로버트 와그너출연. 전투기 조종사를 그린 전쟁영화. 참, 미남 로버트 와그너는 나탈리 웃의 남편이었었지.

*죽자니 청춘 살자니 고생*

*다시는 놓지 않으련다*

*이중생활* 장폴 벨몽도, 안토네라 루알디출연. 뜻밖의 좋은 영화였던 기억은 있지만, 드넓은 푸른 농토를 앞에 두고 가상의 교향악단을 지휘하던 장면이 기억속 뚜렷할뿐.

*태양은 외로워*

*정사*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화.

두 영화 모두 알랭 드롱과 모니카 비티가 출연하였었지.

빈틈없이 아름다운 사나이 알랭 드롱, 우수에 가득찬 에메랄드 눈빛에 아마 그 시정 여성들 헤어나오기 힘들었을 거네.

작년인가, 칸느영화제에서 이창동감독의 ‘밀양’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 전도연의 시상자로 무대에 오른 그를 TV로 보았는데, 늙어 버렸지만 예전의 그 품위있는 아름다움의 흔적은 여실하였네.

모니카 비티, 그 초점없는 멍한 눈동자가 떠오르네. 권태와 불안이 가득한듯한.

‘태양은 외로워’에서는 어떠한 동기도 설명도 없이 모니카 비티는 약혼자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증권거래소의 금속적인 청년 알랑드롱과의 정사를 벌이지만 그 정사 역시 추호의 사랑도 개입되지 않은 것이고 이유도 없었다네.

‘정사’에서 친구의 연인과 감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섹스.

그 정사는 그러나 뜨겁지 않았다네, 생각건대 애정이란 뜨거운 것일세만 애정이 개입되지 않은 섹스란 어쩌면 그 느낌이 차가운 금속성의 정사란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도 싶네만.

알랭 드롱과 모니카 비티의 섹스란 오로지 감각 속에서 실존을 확인하는 어떤 절차가 아니었을까.

흑백 스탠다드 스크린에 가득찬 이유없는 고독과 권태와 불안.

당시로서 정사장면(요즘 영화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충격적이었지만 안토니오 미켈란젤로의 영화는 당시 사춘기를 갓 벗어난 나를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네.

내게 익숙하엿던 헐리웃영화들이 죄 아리스토텔레스적 드라마트루기에 충실한 패턴이었다면 미켈란젤로의 영화는 전혀 새로운 영상문법으로 접한 내게는 최초의 영화가 아니었을까.

시작도 없고 결말도 없는 실존주의의 표상 프로메테우스적 인식이랄까, 그 단편들이 영상적 이미저리로서 아직 뇌리속 가득하다네.

커무니케이션의 철저한 단절.

아아 인간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가.

홀로 고독하게 한세상 살다가, 오로지 홀로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흔적도 없이 가뭇 사라져 버리는 허망한 존재일 뿐이런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데 다른 생각의 길은 없는가.

사람은 여전히 ‘섬’인가.

나의 신앙은 어디 숨어 있을까.

흐음, 나이 먹으니 때로 새벽이 슬프다네.

오늘은 안녕.

[꿈지기]

참으로 대단하시단 말 밖엔 ㅎㅎ

[백만송이장미]

동감입니다^^

[허공꽃]

영화에 대하여 정말 전문가수준이신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어째 마지막이 너무 슬프고 쓸쓸하네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