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세 총기사 (Yahoo 에서)
김 일성의 권총, 모젤 C 96
북한 전역에 널린 김 일성의 동상들중에 만주에서
김 일성이 유격대 활동을 할 때의 젊은 모습을
모델로 만든 것들이 있다.
길림시 육문 중학교 교정에 서있는 김 일성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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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성이 일본군 군복 비슷한 것에 만토를 걸친 차림인데
이번에 김 정일 부자가 중국 방문 때 찾아 갔다는 길림시
김 일성 모교 육문 중학교 교정에도 젊은 시절의 동상이
서있었다.
유격대 시절을 모델로 한 동상을 보면 예외없이 그가
옆구리에 차고 있는 권총이 보인다.
현대의 군용 권총보다는 크고 총집도 특이하게 각진 것이다.
20세기 전반 만주 군벌들과 비적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모젤 C-96권총이다.
※ 모젤[mauser]의 영어 발음은 마우저고 독일 발음은 모제르다.
그러나 국내에서 오래 알려 진 대로 모젤이라고 표현한다.
모젤 C-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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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권총은 19세기 말에 세계 최고의 명품 군용총
모젤 98 메이커인 독일 모젤 사에서 생산한 것으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독특한 개성들이 보인다.
권총이 크고 총 손잡이도 괴상한 모양이고 소총처럼 10 발
장탄 클립으로 장전한다.
더구나 권총집은 목제로 되어 있어 권총을 수납하기도 하지만
필요하면 권총 손잡이에 이 권총집을 부착해서 개머리판으로
쓰기도 한다.
즉 정밀한 사격을 하고 싶으면 부착한 권총집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사격할 수가 있다.
권총집이 개머리 판이 된 모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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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 권총은 손잡이가 빗자루 같은 모양을 손잡이 같아서
빗자루 손잡이[broom handle]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이 권총은 리볼버가 지배하던 19세기 말에 1890년도에 최초로
출현했던 초기 자동 권총중의 하나이며 19세기에 탄생한
자동 권총중에서 유일하게 장수한 성공작이다.
이 시기는 자동 권총에 대한 컨셉이 아직도 정착되기
전이었으니 생김생김이 독특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생산이 1896년에 개시되어서 1937년까지 장기간 행해졌다.
독일 모젤사에서만 약 100만 정이 생산되었다.
채택된 7.63mm 실탄은 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인 실탄이었다.
7.63mm 구경의 실탄은 탄속이 대단히 빨라서 1935년 미국에서
대형 리볼버 실탄으로 개발했던 357구경이 선을 보이기 전까지
권총탄의 스피드 챔피언이었다.
7.63mm 모젤탄,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실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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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두의 구경은 M 1칼빈 총과 같지만 탄이 조금 짧다.
날카로운 발사음이 특징이다.
긴 총신과 빠른 탄속으로 명중률이 높고 관통력도 좋다.
모젤의 크립 장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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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 권총은 당시 군의 주력을 이루던 기병대를 위해서
디자인 되었다.
무엇보다도 전투 중에 재장탄하기 어려운 리볼버에 비해서
다량의 실탄을 신속하게 장탄 할 수가 있는 장점이 있다.
총신의 길이와 구경,장탄수, 그리고 손잡이 크기 등에
따라 여러 모델이 있다.
모젤 권총은 즉각 인기를 끌며 세계 각국으로 팔려나갔고
원래의 목적인 기병 권총뿐만 아니라 민간용 권총으로도
인기가 있었다.
이 총은 독일뿐만 아니라 스페인과 중국에서도 복제 생산되었었다
모젤 권총은 세계 전역에 수출 되었고 오랫동안 판매되었기
때문에 가장 풍부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권총으로도 유명하다.
이 권총의 애용자중에 제일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일듯하다.
그는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인으로서 일생을 시작했었다.
옴두르만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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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스턴 처칠. 1895년 사진.
그는 글솜씨가 좋아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옴두르만의 기병 돌격'이라는 글도 있다.
그는 모젤 권총을 사비로 구입해서
전장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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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9월.
처칠 수상은 수단 카르툼 부근 옴두루만에서 영국군과
광신자 단체인 수단 더비쉬들의 군대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
영국군 기병 장교로서 참전했었다 .
그는 영국군 21창기병 연대의 기병 총돌격에서
모젤 권총을 휘둘러서 여러 명의 적병을 사살했다.
일반인에게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잘 알려진
T.E. 로렌스도 이 권총의 애용자였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T.E.로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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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 권총은 러시아 내전중 공산계 볼쉐비키들에게
크게 인기가 있었다.
모젤 권총은 1918년 7월, 볼쉐비키들이
에카테린부르그에서 감금하고 있던 니콜라이 2세 가족들과
시종들을 학살할 때 사용되었었다.
니코라이 2세 부부,에카테린부르그의 감금된 가옥
지하실에서 자식들과 함께 학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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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의 탄속과 명중력 그리고 관통력에 감동을 받은
볼쉐비키들은 소련이 건국된 뒤 구식이 된 나강 리볼버를
대체할 토카레프 권총을 개발할 때 이 7.63mm 실탄을 거의
그대로 채용하였다.
7.62mm 토카레프 탄으로 명칭이 붙은 이 소련의 권총탄은
오랫동안 서구 군용 총기계에 모젤 탄과 꼭 같은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미세한 차이가 있어서 토카레프 권총에
모젤 탄을 사용하면 발사는 되나, 탄피 걸림 현상이
자주 일어나서 제대로 작동 할 수가 없다.
토카레프 TT-33 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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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젤 권총의 최대 사용국은 20세기에 들어와
군벌들이 지배하던 아시아의 중국이다.
중국은 대량의 모젤 권총을 수입했을 뿐더러
자체 복제품까지 만들었다.
중국이 얼마나 많은 모젤 권총을 수입/제조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1990년도에 미 중 화해로 교역이 자유롭게 된
중국이 퇴역 무기로서 보관하고 있던 모젤 권총 중 일부를
미국 총기 시장에 풀었을 때 나타났던 한 현상으로 소개가 된다.
높은 콜렉터의 가치가 있는 이 모젤 권총은 희소해져서
그 무렵의 미국의 콜렉터 시장 판매가가 1,500달러까지
치솟았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대량의 모젤 권총이 수입되자 이 희귀했던
모젤 권총의 가격이 300달러 수준으로 급락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시 옛 희소성을 회복하여
2-3,000달러를 호가[呼價]한다.]
모젤 권총은 장 개석 군과 모 택동 군에서도 사용했었다.
가장 유명한 사용자는 중국 해방군의 아버지인 주덕으로서
남창 봉기 때 사용했던 그의 모젤 권총은 북경 전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중국 해방군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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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이 권총을 ‘싸창’이라고 부르기도 했었고
총집이 목제인 것에서 유래한 목갑총[木匣銃]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목갑총은 중국어로 무쟈 총이라고 하니 결국 뜻과
발음이 상당히 현실과 일치한다고 하니 외국 발음을
표기하는데 한계가 있는 한자를 사용해야 하는 중국인들의
재치가 보인다.
일본에게 제거되었던 장 작림이 지배하던 만주에서 모젤 권총은
군대나 경찰 에서도 사용되었지만 마적들이니 범죄조직, 그리고
자위단체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만주는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울 때까지 일종의
무법지대로서 미국 서부 개척기의 서부를 연상케 했었다.
이곳에서 애용 받던 모젤을 미 서부에서 인기 있었던
콜트 45 리볼버 권총에 비유할 수가 있다.
[서부에서 윈체스터 라이플이 유행했었다면 만주에서는
독일제나 체코제 모젤 98 소총이 인기를 끌었다.]
GEWEHR 98 군용소총[1923년에 생산 된 전기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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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적들은 마상에서 한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모젤 권총을 모젤 라이플보다 더 좋아해서 전투에서도
라이플 대신 이 권총만 가지고 임하기도 하였다.
모젤 권총은 한국 전쟁 때도 전장에 얼굴을 내밀었었다.
한국 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군인의 수기에서 토카레프
권총보다 이 모젤 권총이 더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기록을 본 기억이 난다.
장진호 혈전에서 미 해병이 이 권총을 휘두르는
중공군 장교를 사살하고 권총을 노획하기도 했다.
이 모젤 권총은 만주를 무대로 투쟁하던
한국 독립 운동가와도 인연이 있다.
봉오동의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소련의 연해주로
이주하여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후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었고 레닌과 회견을 하게 되었다.
역사는 레닌이 홍범도 장군을 치하하고 권총을 선물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 권총은 모젤 권총이었다.
홍 범도 장군은 말년에 강제 이주힌 카자크스탄 크질오르다에서
동포들의 배려로 극장 관리인을 했었는데 불량배들에게
이 권총을 탈취 당하고 무척 비통해 했었다.
홍 범도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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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범도 장군이 소련 적군[赤軍] 군복을 입고
찍은 사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이 사진에서 차고 있는 권총은 나강 권총이다.
1920년 청산리 전투 때 간부들은 러시아제 나강 권총을
사용했었지만 김 좌진 장군은 이 모젤 권총을 사용했었다는
말이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여러모로 노력했었지만 아직
결정적인 입증 자료는 찾지를 못했다.
모젤 C 96이 김 일성이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의 동상만 보고도
잘 알 수가 있으나 이 사실이 그의 졸개들이 그를 미화하는
미사여구로 가득 찬 ‘항일 빨치산들의 회상기’에도 나온다.
김 일성은 물론 그의 아들인 김 정일까지도 섬기며
나중에 국방상까지 지낸 오 진우는 '수령님'의 권총이
모젤 권총이었음을 증언했다.
1932년 10월 25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