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가슴으로 찾는 섬-욕지도(통영) 글/사진: 이종원
가끔 바다가 미치도록 그리울 때가 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아무도 찾지 않는 섬으로 달려가 홀로 고독을 즐기고 싶었다. 둥둥 떠 있는 섬을 하염없이 보거나 해안도로를 터덜터덜 걷거나 경치 좋은 바위 절벽을 만나면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낚시대를 드리우며 無我를 낚는 즐거움에 몰입해 보고 싶었다. 육지와의 절연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하루쯤은 촛대바위가 되어 자연의 일원이고 싶었다. 이어도마냥 이상향의 섬이 아니다. 배표만 구입하면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는 곳이다. 한려수도의 외딴섬 욕지도가 바로 그런 섬이다. 어쩌면 눈으로만 보면 한없이 지루한 섬일 수도 있다.. 가슴에 달린 눈을 부라리고 섬을 음미해야만 그 진가를 찾아낼 수 있다. 짙은 밤나무숲이 원시림을 이루고 있고 코발트색 바다가 부서지면서 만들어낸 기암절벽, 욕지도를 주변 촘촘히 뿌려 놓은 새끼섬들. 이국적 풍경 덕에 눈과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욕지(慾知)에 가서는 그 섬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아라. 섬에 있는 동안만은 섬에 마음을 내맡기면 그만이다. 1백년전 한 노승이 사자승을 데리고 욕지도 동쪽에 있는 연화도 봉우리에 올랐을 때.. "스님. 어떤 것이 道입니까?" "욕지도 관세존도(慾知島觀世尊島)" 스님은 '욕지도가 세존도를 바라본다' 라고 대답한다. 즉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으면 석가세존을 본받아라. 그렇기에 욕지도는 불가의 섬이다. 근처 연화도 역시 불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39개의 섬은 도를 깨달으려는 제자들의 염원이 아닐까?
욕지도는 통영에서 뱃길로 32km나 떨어져 있으며 통영 최남단의 섬이다. 1시간동안 한려수도의 풍광을 감상하다보면 어느덧 배는 섬에 닿아 있었다. 한산도, 소매물도등 유명세를 탄 섬의 명성에 묻혀 육지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섬이지만 그만큼 한적하고 은근히 비린내가 배인 섬이다. 통영 삼덕항에서 매시간마다 출발하며 버스까지 실을 수 있을 정도로 배가 크다.
1000여가구가 욕지도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면사무소를 갖출 정도로 남해안에서는 꽤 규모가 큰 섬이다. 그러나 60대 이상이 태반을 차지하고 있다. 폐교되어 버려진 학교도 많다. 그러나 쌍용주유소도 있고 시내버스가 운행할 정도로 큼직하다. 동남쪽으로 50km만 내달리면 대마도에 닿을 정도로 일본과 가깝다. 그렇기에 일제때는 어업전진기지로서 수산물 수탈의 현장이기도 하다.
동항은 천혜의 항구다. 복주머니의 가장 안쪽에 자리잡고 있어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하다. 주황색 양철지붕이 쪽빛 바다색과 잘도 어우러진다. 뱃사람의 안식처인 술집도 여럿 있고 섬 특유의 다방도 제법 보인다. 내 친구는 '그 지방의 특색을 알려면 다방에 가봐야 한다.'그는 아직도 전국의 다방을 전전하고 있다. 푹신한 소파에 기댄 채 설탕을 잔뜩 넣은 섬지방 다방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비릿한 포구향을 맡으며... 가끔 트롯 가락에 몸을 흔들어주고 싶었다.
밤이 되었다. 시끌벅적했던 욕지도도 이 때만은 조용하다. 노란 수은 가로등만이 바다를 길게 비추고 있었다. 도심의 잿빛 색깔에 길들여졌던 마음은 밤에 되서야 조금씩 열리며 섬의 다양한 색감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모두들 잠이 들었지만 쪽배만은 쉬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선창가에 풀썩 주저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밑빠진 독인 내 가슴에 바다를 쉬지 않고 퍼 담았다.
후덥지근한 남도 날씨에 버틸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물며 술 한잔 걸치면 집이 어딘지 찾아낼 수 없었다. 이국적인 나무밑에서 늘어지게 잠을 잔 아저씨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주섬주섬 신을 신고 자기 집을 찾아간다. 무서운 마누라가 생각났나보다. 그나저나 나의 집은 어디란 말인가?
새벽이다. 길에서 자든, 아내를 품에 안고 자든, 술집에서 나뒹굴었든 간에 욕지도 사람들은 새벽이면 어김없이 바다로 기어나온다. 출어를 준비하기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손놀림이 바쁘다.
아침 해가 산등성이에 걸렸다. 섬에서 본 태양은 유난히 아름답단 말이야.
섬 한 바퀴 도는 드라이브 코스는 가히 환상적이다. 차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섬도 함께 달리기 때문이다. 1시간여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지만 욕지도에 와서 땅만 보고 운전하는 사람은 바보다. 부서지는 파도도 구경해야 되고, 아기자기한 섬 얘기도 들어야 하고 고구마밭에서 일하는 할머니에게도 다가가야 하고...길가는 아이들에게 괜한 참견도 해야하니까 한나절이 모자랄 수도 있다. 벼랑끝에도 길이 놓여 있고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가 앞을 막고 있었고...태풍에 유실되었는지 아직까지 해안도로는 완성되지 않았다.
흰작살 해수욕장이다. 거친 어감의 '작살'에다가 white를 붙였으니 작살끝이 무딜대로 무디어졌으리라. 노송이 총총한 작은 섬을 배경삼아 아담한 해수욕장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두리 양식장. 도난사고 때문일까? 양식장 부포위에 강아지가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4발 달린 세콤이다.
고기를 잔뜩 실은 배가 들어왔다. 왠지 나도 흥분이 된다. 뭍에다 바다의 풍요를 사정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삽으로 퍼담고 퍼담아도 끝이 없다. 욕지도가 고기가 많이 잡힌다는 소문은 들었건만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니 중간고사 답안을 맞춘 기분이다. 한 쪽에는 얼음이 쏟아지고 프라스틱 박스에 퍼담고 퍼담는다.
'애가 메가리가 없니?' 바로 그 메가리란다.
욕지도의 억척 아줌마도 나섰다. 손 바닥 만한 비키니를 가리고 해변을 거닐며 폼잡는 아가씨보다 훨씬 아름답다. 아니 눈부실정도며 숭고하게 받들고 싶다. 비릿내와 힘겨움을 모두 감수하고 억센 노동현장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아줌마의 잔영을 내 가슴 제일 깊숙한 곳에 넣어 두었다.
섬에 가면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성당과 교회다. 뭍과 단절된 섬사람들은 더욱 절대자에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풍랑도 걱정도 되고 풍어도 전적으로 절대자의 손에 달렸으니까... 고기를 낚는 베드로 심정이니까... 성전에 들어섰더니 신자들이 성당 마룻바닥에서 모두들 자고 있었다. 변변한 숙소를 구하지 못한 육지 신자들이 성당에 신세를 지고 있나 보다.
성모마리아는 포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뱃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기도를 대신 해주고 있었다.
해안가에 유난히 짙은 상록수 숲이 바로 천연기념물 343호인 메밀잣밤나무 숲이다. 모밀잣밤나무 100여 그루 외에 항상 푸르른 나무인 사스레피나무, 보리밥나무, 팔손이, 생달나무, 모람, 자금우, 마삭줄, 광나무 등과 넓은 잎이 봄에 돋았다가 가을에 떨어지는 작살, 때죽나무, 떡윤노리, 개서어나무, 검노린재, 굴피나무, 청미래덩굴, 붉나무, 누리장, 두릅나무, 예덕, 칡, 계요등, 인동, 벚나무, 굴참, 쇠물푸레, 멍석딸기, 댕댕이덩굴, 섬덜꿩, 보리수, 국수나무, 진달래, 조록싸리, 팥배나무 등이 있고, 보기드문 식물인 해변싸리, 애기등, 민땅비사리가 있으며 소엽맥문동, 향등골나무, 마, 단풍마, 떡잎골무꽃, 산거울, 억새, 삽주, 하늘타리, 쇠무릅, 산박하, 애기나리 등의 풀들이 자라고 있다. 숲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름들이 참으로
정겹다. 욕지면의 모밀잣밤나무숲은 물고기를 보호하고 숲 가까이로 유인하는 어부림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민
들의 훌륭한 휴식처가 된다.
고개를 넘어 섬 남쪽에 들어섰다. 바다에는 작은 섬들이 두둥실 떠 있었다. 햇빛이 내리쬐어 섬의 뚜렷한 윤곽을 확인하는 것보다 해무에 덮여 희미하게 보이는 섬 모습이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보일 듯 말 듯한 여체가 더 애간장을 녹이듯 섬의 자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한송이 나리 꽃이 되어 남쪽바다에서 몰래 목욕하는 선녀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꿀꺽' 욕지도는 39개의 섬을 아우르고 있다. 북쪽으로는 두미도, 노대도를 깃점으로 하여 작은 섬들이...서쪽으로는 연화열도가 남쪽으로는 좌사리 제도가 섬이 보석을 뿌려 놓은 듯 욕지도를 꾸며대고 있었다.
욕지도 최고의 전망포인트인 삼여도 전망대다. 한 쌍의 촛대바위와 세 개의 바위가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멀리 좌사리군도가 촘촘히 박혀 있고.... 어선까지 뱃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곳은 70년대 한국영화의 대표작 '화려한 외출'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윤정희, 이영하, 이대근등 화려한 배우가 망라하고 있다. 70년대 산업화된 도시공간에 대비되는 원초적 공간을 욕지도로 선정한 것이다.
SBS 드라마 '홍콩익스프레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유동마을이 조재현, 송윤아의 고향으로 나온다. 하얀 바탕에 하늘색 줄을 가지고 있는 유동교회가 드라마에서 인상적이었다. 골뱅이 상호처럼 유동마을은 양쪽으로 바다를 끼고 살아가고 있다. 밭에 나가 고구마를 가꾸고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집집마다 작은 창고가 있었다. "이거이 뭐여요?" 아줌마가 생긋 웃으며 하는 말이 " 옛날 화장실입니더. 지금은 쓰지 않지예. " 화장실도 몸을 낮출 정도로 버람이 무서웠던 것이다. 나는 바람보다 화장실이 무서운데.....하긴 응가하다가 화장실이 날아가면 얼마나 황당할까?
대어를 낚기위해 강태공들은 욕지도에 몰려 든다. 감성돔과 우럭, 가오리, 숭어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 짜릿한 손맛을 잊지 못하는 꾼들은 욕지도를 잊지 못한다. 낚시대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인근 낚시가게에서 빌릴 수 있다.
부녀가 함께 낚시 준비하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밤톨 만한 자갈이 깔려 있는 유동해수욕장이다. 저 자갈이 유동골뱅이고 바다가 진로소주라면 얼마나 흐뭇할까? 바닥이 휜히 들어날 정도로 물이 깨끗하다. 바로 옆의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 해수욕과 낚시를 동시에....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유동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욕지도 최고의 해수욕장인 덕동해수욕장이 나온다. 욕지 특산물인 '욕지 고구매'밭을 지나 바다로 내려오면 보석처럼 반들반들한 몽돌이 파도와 화음을 이루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욕지도에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다.
고무보트를 타고 있는 아이들이 마냥 부럽다. 여행작가란 직업이 참 못난 직업이다. 수시로 여행을 떠나고 눈으로 본 것을 글로 옮기고 ...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직업처럼 보이지만 시간 때문에 이 좋은 곳에 발 한번 담그지 못하고 낚시대도 드리우지 못한 것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두미도, 노대도등 욕지도의 북쪽 바다는 수묵화를 펼쳐 놓은 것 같다. 자연이 빚어낸 절경에 숨이 막혀 차를 몇 번이나 세웠는지 모른다. 가슴으로 찾는 섬...섬이 그리울 때면 떠나야 할 섬...바로 욕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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