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휴가도 세 자매가 떠나기로 계획을 세웠다. 여행지 지도를 보고 찾아간 서산의 끝자락 '벌천포 해수욕장, 인터넷에 '벌천포 오토캠핑장'으로 더 많이 소개된다. 미지의 장소를 찾아가는 길은 항상 기대와 흥분을 동반한다. 아침 6시 출발하여 목적지까지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보라, 분홍, 하양, 다홍꽃을 피운 배롱나무 가로수가 초록숲과 어우러진 팔월의 한적한 시골길을 달렸다. 농촌풍경은 언제 봐도 마음이 평화롭다. '벌천포 해수욕장' 팻말을 따라 들어가니 숲길 사이로 나타난 망망대해, 가슴까지 시원한 바다가 나를 맞는다. 서산 끝자락에 위치하여 벌말이라고도 불린단다. 삼 면이 바다인 벌천포 해수욕장 솔밭에는 오토캠핑장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며 늘어 서 있다. 형부 차가 캠핑카여서 우린 텐트칠 자리만 대여를 했다. 아침식사로 먹은 큰언니가 만들어 온 찹쌀김밥이 엄마 생전의 손맛이었다.
가슴이 답답할땐 바다에 갈 일이다. 맺혔던 매듭 풀리듯 마음이 풀린다. 송림과 어우러진 캠핑장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두 바다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 앞바다는 갯벌을 체험할 수 있고, 그 반대편은 몽돌이 깔린 해수욕장이다. 우뚝 솟는 산봉우리 뒤에도 바다여서 섬에 온 것 같다. 앞바다에는 "뭍으로 올라오는 황발이"란 제목의 설치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고향에서는 '농게'라고 하는데 충청도 사투리가 '황발이'나 보다. 막바지 작업 중이던 장경희 작가에게 전시회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무수한 생명이 깃들어 사는 갯벌의 소중함을 표현하여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의 모습을 고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갯벌에 설치된 황발이의 여러가지 형태가 바다의 변화처럼 다채로운 메시지를 들려주며 말을 걸어왔다. 밀물이 밀려올 무렵이면 생명체로 살아난 듯한 게들의 말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그렇다. 자연은 끊임없이 인간과 소통하기를 원하는데 인간은 자연의 처절한 소리를 무시한 채 거침없이 단절해버린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조개를 캐러 갯벌에 나갔다. 썰물을 따라가며 조개, 고동을 줍고, 작은 게도 잡으며 세발나물도 뜯었다. 나고 자란 남도 바닷가 고향마을, 세 자매가 갯마을 아낙으로 변신하여 그 옛날로 회귀하여 뜨거운 햇볕도 아랑곳 않고 달뜬 마음으로 갯벌을 누볐다. 갯벌에서 거둔 수확물은 맛있는 해물찌게로 바뀌어 입속을 들락이며 못다한 고향 이야기를 이어가고.. 어둠이 점점 바다의 얼굴을 가리자 철썩철썩 몽돌에 제 몸을 부비며 파도소리가 귀를 잡아당겼다. 바닷가에 누워 초롱한 별빛을 헤아리다 바라본 건너편, 도시 하나가 떠오른 듯한 발전소의 불빛이 물 위에 무지개빛 긴 기둥을 세우며 별천지를 연출하고. 아름다운 밤이다. 분주하게 달려오던 생각이 멈추고 마음에서부터 '休'자가 내 몸을 느슨하게 이완시킨다.
둘째 날 아침, 낯선 곳의 아침 공기는 상쾌하다 못해 달기까지 하다. 폐부 가득 들여마신다. 전국이 연일 폭염이라는데 바닷가 해송 숲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지난 밤 기침이 심한 큰언니를 모시고 서산병원에 다녀오며 동부시장에 들러 싱싱한 소라를 사왔다. 쫄깃하고 달큰한 소라의 참맛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망둥어 낚시를 하러 간다고 한참을 걸어 개옹(갯벌 수로)으로 나갔다.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는데 큰언니의 결정은 단호했다. 큰언니에겐 낚시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피가 흐르나보다. 작은언니는 도와주러 간다고 따라나선다. 가슴께까지 물이 차오르는 곳에서 낚시를 해야 한다는데 다행히 먼저 가서 낚시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보무도 당당하게 나선 두 언니가 망둥어 아홉마리를 잡아왔다. 나는 아마 눈이 먼 망둥어들일 거라며 웃었다. 형부가 초고추장에 무쳐 내놓으셨다. 방금 잡은 신선한 생선, 아버지가 낚시로 잡아오셨던 고향 운지리(망둥어) 맛은 아니었지만, 추억을 한 점 먹은 기분이다.
참, 한 가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매몰찰 정도로 상업주의여서 주인의 갑질로 기억된 휴가지가 많다. 그런데, 벌천포 오토캠핑장 주인은 카트를 타고 두루 순회하며 여행자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피곤 했다. 무거운 물통을 실어다 주고, 사람들을 태워주기도 하는 친절을 베풀며 한 손이 불편한 데도 싫은 기색없이 불편사항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해결해주기까지 했다. 벌천포 해수욕장에서는 휴가지에서 볼 수 있는 바가지 요금이나 갑의 횡포가 없어 여기저기서 주인을 불러 음식을 나누는 인정스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녁엔 산에 풀어놓아 기른다는 닭을 한 마리 팔라고 주인에게 간청하여 큰언니가 잡아서 압력솥에 삶았는데 육질이 고소하여 다들 지금껏 먹어 본 것중 최상의 닭고기라고 격찬이 쏟아진다. 첫날 형부 운동화를 잃어버렸다가 다음 날 찾았고, 사이드 밀러 거울이 감쪽 같이 사라졌는데 청소하다 주운 사람이 주인을 가져다주어 난감한 상황이 마무리 되었다. 돌아오는 길, 우린 휴가지에서 생긴 일을 재미있게 나누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깃든 벌천포 해수욕장, 굴을 따서 먹을 수 있는 늦가을에 한번 더 오자고 약속했다. 아직 휴가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서해의 아름다운 바다 벌천포 해수욕장에 가보시라. 그곳에 그리운 바다가 있고 몽돌을 연주하는 파도의 노래가 있으며, 인정미 넘치는 주인이 기다리고 있다.




















섬집아기
엄마가 섬그늘에 굴따러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곤히 자고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