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2월1일, 일요일.
기축년 해맞이를 다녀온 지, 어느새 한달이 되었다.정초의 바쁜 나날이 허릴없을
백수치곤 비교적 바쁜 일정을 보낸 편이다.딱히 무엇때문에 시간에 쫓긴 것도 아닌데
정초만 닥치면 별수없이 시간에 쫓기는 심사를 어떻게 표현을 할지 모르겠다.
설날연휴의 느긋함도, 동장군의 위세가 대단했던 소한추위 그리고 이름뿐인 대한추위도
달력한장으로 기억의 저 편으로 보내버린 2월 초하룻 날, 함양의 오봉산 산행을
나서는 날이다. 오봉산을 들어서려면 남원과 함양을 잇는 24번국도변 팔령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괜찮아 보인다. 24번 국도는 양 옆으로 삼봉산과 오봉산의 주능선사이의
협곡(?)사이를 달리고 있다. 전북의 남원과 경남의 함양을 넘나드는 고개, 팔령재!
신라와 백제의 영토 공방이 치열하게 벌어지곤 햇던 팔령산성,그리고 흥부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한 남원시 인월면 서두리 성산마을로 드는 곳이기도 하다.
소싯적에는 제법 고개다운 면모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금에는 굳이
고개라고 이름 붙이기가 어색할 정도로 굽이가 낮아진 것은 아마도 문명의 발달로
문화적인 가치가 훼손된 것을 상징적인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
들머리인 성산마을 입구 팔령에는 흥부마을임을 알리는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대리석을 이용한 왁자한 흥부식구들의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마을 입구를 들어서면 연못과도 같은 작은 소류지앞 삼거리를 만난다.
두꺼운 얼음이 덮힌 소류지가 마을의 조용함과 닮았다.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들어서면 비교적 쉬운 길로 접어 들었을텐데 앞서 간 동료들이
모두 우측으로 들어서서 진행을 한 모양이다.
부지런 함을 탓하고 싶진 않은데 여유로움이 다소 아쉽다. 일부러 찿아오기도 어려운
흥부의 성산마을도 둘러보고 그 많은 흥부식구들은 어디가고 한적한 곳이 되었는지도
둘러보고 찿아보고 따져 봐야 하는데 발길만 바쁘다.
그 쪽 길이라고 산행에 큰 영향은 미칠 것같지도 않다. 마을을 벗어난 산길은
이내 산아래 묵밭과 다랭이 논사이로 꼬리를 보이며 山客을 끌어 들인다.
양지바른 하늘바래기 천수답이 쟁기질이 말끔하게 치뤄진 걸 보면 부지런한 주인을
만난 것이 틀림없다. 두길이나 돼 보이는 억새들이 엉성하게 따비밭 둑을 오롯히 지키고
산길은 이내 희미하고 거칠은 길로 변하며 가파른 경사각으로 거친 숨과 땀을 요구한다.
간벌을 했는지 군데 군데 활엽수들이 베여져 있고, 이파리를 홀딱 떨군 장성한 활엽수아래
바짝마른 갈색 이파리를 온통 움켜쥔 어린 수목들이 안쓰럽다.
일찌감치 추운 겨울을 대비한 활엽수들은 대개 이파리를 떨구고 입구를 두껍게 하여
보온에 만전을 기울인다. 그러나 비교적 어린 나무들은 그러한 어른 흉내를 보이다간
얼어 죽기 쉽상이다. 그래서 보기엔 안타깝지만 쉽사리 이파리를 떨구지 않고
보온막으로 재활용 하는 길이 그들이 거치른 세파를 헤쳐 나가는 방법이다.
주능선에 오르니 소나무 일색이다.
엷은 갈색의 솔갈비(松枯葉)가 산길을 뒤덮었고 은은하게 풍기는 솔향이 그윽하다.
삼봉산의 주능선이 거뭇거뭇하고 그 너머 지리산의 식솔들이 희미한 실루엣을 그린다.
이제 주능선에 안착을 했으니 고만고만한 능선을 오르내리는 작업만 남았다.
소나무가 지천인 주능선에는 다른 종류의 수목이 별로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소나무의
위세가 대단하다. 솔향이 가득한 소나무 산길은 군데군데 커다란 바위들이 온갖 형상으로
산길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응달 벼랑으로는 희끗희끗하게 잔설이 용케 햋볕의
날선 공격을 피하고 있다. 오불사에서 오르는 산길이 만나는 삼거리, 이정표가 반갑다.
햋볕에 바랜 이정표가 가리키는 정상은 맞은편으로 휑하니 뚫려있다.
끝 간데 없는 쪽빛 하늘색과 노안을 물들이는 조망의 산길이 山客의 허리춤을 잡아 끈다.
오봉산의 이름을 낳게 한 정수리 주변이 시야를 덮어오기 시작한다. 인월 방면에서
바라보면 다섯개의 봉우리가 신비롭다 해서 붙혀진 이름,오봉산(五峰山)!
흔히 오봉산하면 춘천의 오봉산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소양호반의 보석같은 명산인
오봉산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있지만 함양의 오봉산은 골수 산꾼들에게나 그나마
알음알음으로 그 진가가 서서히 전파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당연히 참석동료들의 면면이 예상대로 골수 산꾼들로만 짜여질수밖에 없다.
이곳 함양의 오봉산은 상고대,흔히 서리라고도 하는 눈꽃이 많이 핀다하여 서리산
혹은 상산(霜山)으로도 불리어 진다. 이따금 만나는 바위능선을 지나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 넓은 공터의 봉우리를 만난다.공터가 비교적 넓은 걸 보면 헬기장으로도
이용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시간은 12시30분가량, 산행시간 1시간30분 가량이 소요가 되었다.
허기가 밀려오고 휴식을 취할 때가 온 모양이다.러쎌의 동료들도 배낭을 내려놓는다.
한 구석에서는 예닐곱분이 한뼘이나 돼 보이는 기다란 삼겹살로 로스구이를 하고있다.
소줏병이 두엇,상추외 갖은 야채며 세수대야 만한 코펠들이 산정에 차린 잔칫상을
방불하겠다. 수다소리를 들어보니 인근에서 거주하는 입산객인 듯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산행에 나선 모습이 느긋하다. 우리 일행도 주섬주섬 배낭을 뒤져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펴놓는다. 대여섯명분의 용량은 돼 보이는 황여사님의
도시락 밥이 호화(?)롭다. 다른 반찬이 필요없을 정도로 정성이 그득하다.
반찬그릇도 여늬 도시락보다 큰 용기에 반찬도 넉넉하고 푸짐한 걸 보면 어지간이
마음 씀씀이가 크지싶다.
오곡에다 밤이며 대추등 갖은 알곡이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그림과 영양이
넘실넘실 거린다. 코펠에 라면을 끓이는 동료의 손길이 또한 바쁘다.
주고받는 술 몇잔이 시름을 풀어 내놓게 하고 묻혀있던 우정을 슬그머니 끄집어 낸다.
마냥 주질러 시간을 느려 뺄 여유는 없다. 점심호사를 마무리하고 정상을 오를 차례다.
그러나 저편의 삼겹살 입산객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 날 기색이 여전히 보이 질 않는다.
오봉의 정수리 주변의 암봉이 지척이다. 잠시 내리막을 내려서서 팔을 느려 뻗으면
이내 툭 불거진 암봉군(群)중의 맏형인 오봉의 정상에 닿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해발871m! 키 높이는 자랑거리가 안되지만 고도감으로 따진다면 여늬 고산준봉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탁월한 능력을 과시한다. 오봉의 맏형인 정상옆으로 아랫식솔 봉우리에
동료들이 산행의 진국인 조망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정상을 벗어나면 산길은 북동방향의 응달받이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각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안전에 신경을 곧추 세워야 할 구간이다. 당연히 기다란 고정로프가
극성맞은 산꾼들을 기다리고 있다.그러나 고정로프가 매여있다 해도 아이젠을 착용해야
안전을 장담할 수 있겠다. 수북하게 눈이 쌓여있는 산길보다 이렇게 잔설과 낙엽속의
숨은 얼음이 기다리는 산길이 더욱 위험한 것은 주지의 사실아닌가,
오는 세월 막을 수 없고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다고 하지만, 봄의 전령이 묻어있는
산길의 이면에는 아쉬움의 동장군이 낙엽속에 이미 무디어 진 날을 애써 감추고
호시탐탐 산꾼들의 방심을 엿보고 있다.
옥녀봉과 천령봉이 아득히 먼곳처럼 바라다 보인다. 파란 하늘아래 녹색의 까운을 걸치고
신기루처럼 이웃집 새각시처럼 山客의 일거수 일투족을,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가,
오매불망(寤寐不忘) 첫님이 부르시는가, 휘적휘적 오가는 산꾼들도 몇 안되는
산길을 꿈속을 더듬듯이 이어간다.희뿌연 연무가 내려앉은 지연재너머로 거대한 몸집의
지리산 천왕봉이 슬며시 거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산길은 다리품이 버거운 이들에게도 여유를 부릴 틈을 내주며 고만고만한 고도차이를
보이며 이어간다. 해발750m의 봉우리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있고 한켠의
커다란 소나무아래에서는 입산객들의 점심식사가 한창이다.
소나무 숲 아래의 산길주변으로 진달래가 무성하다.
꽃잎을 떨군지는 십여달 전 쯤, 이파리는 서리가 내리기 전 쯤에 감행 됐을 것이다.
외부의 강요와 협박으로 이파리를 모두 떨군 것은 분명아니다.
계절변화에 따른 온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 선제 대응 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비교적 작으마한 덩치에 자진해서 월동장비로도 재활용이 가능한 이파리를
떨군 행동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척박한 토질과 환경속에서도 자신있게 살아갈
힘과 능력을 갖추지 않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더군다나 소나무처럼 침엽수는 자체적으로 독특한 가스를 배출하여 다른 수목들의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에 침엽수 근처에서는 살아가기가 고달픈 것이다.
그러한 악조건에서도 모세혈관을 닮은 잔가지까지 짱짱한 진달래 모습이 가상하다.
솔갈비가 여전하고 진달래도 추위에 아랑곳 않는 산길은 옥녀봉으로 山客을
유인한다.
해발571m! 일명 고추봉이라 불리기도 하는 봉우리, 정남향으로 S자형의 구불구불
연무로 희끄므리하게 보이며 고개를 넘는 도로는 건교부와 도로교통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산길 지안재로, 지리산 제일문으로 통하는 오도재로
오르는 길이다. 그리고 오도재는 법화산과 삼봉산을 오르 내릴 수 있는 산길이
산꾼들을 기다리는 곳이기도 하고, 남해안 하동지방과 함양을 연결했던 물물교환의
교역로 노릇도 톡톡이 하기도 한 길이다.
오도재를 넘어서면 한 걸음에 닿을 것처럼 천왕봉이 다가와 있고, 남원에서 팔령재를
넘어서 함양으로 이어지는 찻길이 허연 뱀의 등허리를 닮았다. 옥녀봉을 벗어나면
고즈넉한 산길은 우측너머 남향받이 대형 밤나무 단지 옆을 지나게 된다.
능선 정수리 근방까지 올라온 임도, 산길은 임도 좌측의 능선 정수리를 따라 이어지고,
부챗꼴 모양으로 우측 계곡에 펼쳐진 대단위 밤나무 단지에는 한 가운데 농가 한채와
부속 건물 서너채가 농한기때문인지 쓸쓸하기만 하다.
단지 주위로는 수십년은 묵었을 노송들이 빙 둘러 싸고있어 방풍 역활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산길은 여전히 솔갈비 깔려있는 소나무아래에
꼬리를 길게 늘이고 이어진다. 밤나무 단지는 좌측으로 둥그스름하게 휘여서 C자모습을
띄고 뻗어나가는 능선을 경계로 개간이 되어있다. 소나무 숲길이 슬그머니 고도를
낮추는 듯 하다가 봉우리 하나를 솟구쳐 놓는다. 뇌산(磊山)마을로의 하산로가 있는
삼거리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곧이어 정수리가 평평하게 생긴 봉우리에 오른다.
천령봉,함양의 옛 이름인 천령(天嶺)을 부여받았다.해발556m, 함양읍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 보이고 대리석으로 조성된 채화대(採火臺)가 이채롭다.
옛날에는 봉화를 올렸던 봉화대 터가 있던 자리로써 함양군민의 물레방아 축제
(옛,천령문화제)시 성화를 채화하는 장소로 탈바꿈을 하였으니 이제는 명실상부한
함양의 성산(聖山)반열에 오른 셈이다. 채화대 뒷편으로는 삼휴마을로의 하산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삼휴마을은 함양군의 토성인 여씨,오씨,박씨등 3동서가
한자리에 모여서 시국을 논했다는 유래가 전해오는 삼휴대가 자리한 마을이다.
러쎌의 하산길은 천령봉 직전 삼거리에서 뇌산 방면의 하산로 표시가 가리키는
남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한마장 거리에다 한시간이내의 발품만 들이면 날머리인
돌무더기 산이라는 이름의 뇌산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삼거리를 떠나면 곧이어 좌측으로 십여미터거리에 천령샘이라고 명명된 샘터가 있다.
이름도 고상해서 샘물 한바가지 들이켜 볼 요량으로 샘터를 기웃거려 보니
샘터로써의 기능은 이미 오래전부터 잃어 버린 듯이 주위가 산만하고 지저분 하다.
천령샘이라는 이정표는 빠른 시일안에 복원이 안된다면 거둬 들여야 하겠다.
가파른 산길은 따뜻한 남향의 햇볕 덕으로 얼어붙었던 길이 해동이 되는 바람에
진흙길로 변해서 다소 미끄럽다.산길은 밤송이 껍질과 갈색의 바싹마른 이파리가
깔려있는 밤나무 밭 가운데로 이어진다. 사과 과수원을 지나면 수백년의 나이를
먹었음직한 느티나무를 만난다. 모든 이파리를 떨군 느티나무 꼭데기에는
까치 두 가구가 둥치를 틀었다.
오봉산 등산안내도와 뇌산 마을 주민들의 생활식수 집수통이 큼지막하다. 마을
고샅길이 검은색 아스콘으로 산뜻하게 포장이 되어있고,산골마을 치고는 가구 수가
꽤 많은 편이다. 그러나 군데군데 빈 농가가 안쓰럽고 우울한 모습을 보인다.
인적은 없고 기계의 엔진 소음만이 한적함을 흔들어 놓는다.마을 앞 작은 소류지
옆으로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회관을 건축중인 모양이다.연못같은 소류지에는
무슨 종류인지는 모르겠으나 양식사업을 하는지 접근을 금지 한다는 사업자 측의
푯말만 요란하다.
동양화에나 등장을 시켰음직한 노송들과 울창한 대나무 숲이 울을 이루고
오봉산 천령봉을 후광삼아 지리산 식솔들의 정기를 품고있는 형상의 돌무더기 산 동네
뇌산마을! 해거름이 서서히 다가오니 산골마을에도 첩첩이 적막만이 쌓여 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적막감을 견디기가 힘겨웠던 모양이다.소류지 앞의 한 농가 삽짝옆에서
누렁이 한마리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짖어대는 소리가 적막을 가르기 시작한다.
컹컹컹! 컹컹컹!
첫댓글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산행후기로 눈요기 할까 합니다.^^*
가보고 싶은 곳은 가지마시고 간직만 하고 있으세요.그리움과 아쉬움이 잦아들면 허전함과 쓸쓸함이 찿아옵니다!^^